박지후 센터 청년활동가
최근 강남에서 한 배달 노동자가 화물 트럭에 치여 목숨을 잃은 사건이 있었다. 사고의 규모가 워낙 컸던지라 많은 이들에게 충격을 안겼지만, 그 일이 있고 나서 일주일 사이에 서울에서만 두 번의 오토바이 사망사고가 더 일어났다.
배달 중 사고가 사망으로까지 이어지는 일은 노동자가 운이 나빠서 또는 부주의해서 발생하는 특수한 사건이 아니다. 배달 노동자의 사고가 일상으로 자리 잡아 무뎌지기 전에 그 배후에 있는 구조적 문제를 짚어 개선할 필요성을 느꼈다. 이에 라이더유니온 대의원 A씨와 우리동네노동권찾기의 김창수 대표를 만나 대화를 나누었다.
A씨는 전업으로 배달 노동을 수행하며 라이더유니온에서 배달 노동자의 조직화에 힘쓰고 있는 장본인이었고, 김창수 대표는 다른 일을 병행하며 배달 노동을 부업으로 삼고 있는 당사자였다. 이렇게 두 인물을 인터뷰 대상자로 선정함으로써 배달 노동자 내부의 다양한 입장을 파악할 수 있었고, 같고도 다른 경험을 전해 들을 수 있었다.
배달 플랫폼 내의 다양한 목소리
시장의 구조가 플랫폼 경제 중심으로 변모하면서 기존의 노동법으로는 보호받지 못하는 새로운 형태의 노동이 증가하고 있다. 배달 플랫폼 노동이 그 대표적인 예시이다. A씨 역시 배달 플랫폼 노동자가 일반 근로자와 분명히 다른 형태임을 전제하고 있었다.
하지만 배달을 전업으로 삼고 있는 노동자들의 삶을 더 가까이서 들여다보면, 실질적인 종속성의 요소들을 발견할 수 있다. 가령 이들은 매일 같은 시간대에 출퇴근하는 기록을 남기기도 하고, 플랫폼에서 일괄적으로 업무를 지시받기도 한다. 이러한 점들을 고려했을 때, 장기간 근속하고 배달을 전업으로 삼는 노동자들은 특수형태근로종사자를 넘어 보다 안정적인 지위를 보장받을 필요가 있다.
A씨는 이와 관련하여 최근 배달 플랫폼 시장이 비정상적으로 커지고 있는 상황을 문제 삼았다. 코로나19 이후 배달 노동자의 수가 급증하여 현재는 100명이 할 수 있는 일을 2000~3000명이 나누어 맡는 상황이다. 노동이 더이상 나눌 수 없을 만큼 잘게 쪼개어져 '분해'되고 있는 것이다. 코로나19 여파로 주문량은 늘어났지만, 이를 상쇄할 만큼 노동자 수가 늘어 기존에 배달 노동을 직업으로 삼던 사람들은 더 큰 고통을 겪고 있다.
"잘 아시겠지만, 지금 배달 시장이 정상적인 형태로 커진 상태가 아니잖아요. (중략) 누구나 할 수 있게 됐고, 지금은 아무런 제한이 없어요. 그냥 미성년자가 아니면 누구나 할 수 있는 형태로 지금은 됐기 때문에 진입이 굉장히 쉬운 지금 상황이죠." (A씨)
한편 배달 플랫폼 노동자 중에는 일자리의 안정성보다 플랫폼이 주는 자율성을 선호하는 이들도 분명 존재한다. 김창수 대표는 정말 일하고 싶을 때 일할 수 있다는 점을 배달 플랫폼 노동의 가장 큰 장점으로 꼽았다.
김창수 대표처럼 배달 노동을 부업으로 삼는 경우 노동시간이 고정되어 있다면 다른 업무에 시간을 할당하기가 부담스러울 텐데 플랫폼에서는 여유 시간을 활용하여 수익을 낼 수 있었다. 이처럼 배달 플랫폼 내부에는 다양한 양상을 보이는 노동자들이 포진해 있다. 안정적인 수입과 일감을 원하는 노동자부터 플랫폼이 주는 자율성을 선호하는 노동자까지, 이해관계의 스펙트럼이 넓은 상황이다.
"저는 배민에서 "당신 커넥트 정규직 하세요." 그러면 안 할 거예요. 정규직이 되는 순간 관리·감독은 더 심해질 거기 때문에. 저는 굳이 안 할 거고 많은 사람이 그렇게 생각할 것 같아요." (김창수 대표)
노동자라는 공통의 정체성, 그리고 권리
그런데도 확실한 것은 이들 모두가 안전한 노동 환경을 보장받을 권리가 있는 노동자라는 점이다. 전업과 부업 사이의 구분, 오토바이와 자전거 사이의 구분에만 초점을 맞추는 것은 배달 노동자 전반이 겪고 있는 문제의 본질을 왜곡할 가능성이 크다.
어떤 위치에서 어떤 수단을 이용하든 배달 노동자라면 누구나 안전한 환경에서 배달할 수 있어야 한다. 또한 그들의 노동에 상응하는 충분한 보상을 받을 수 있어야 한다.
"투잡이라고 해서 쓰리잡이라고 해서, 반대로 전업이기 때문에, 이런 구분을 두는 게 저는 약간 불편함이 있어요. "투잡이기 때문에 권리에 있어서 조금 손해를 봐도 돼." 하는 논리는 "정규직도 아니고 알바니까 뭐 어때, 최저임금만 받아"와 똑같은 이야기잖아요. (중략) 그거는 옳지 않다고 생각하고, 어차피 자전거를 타든 오토바이를 타든 일을 하는 건 똑같아요." (김창수 대표)
이를 위해서는 우선 AI를 통한 강제 콜 배정을 개선할 필요가 있다. 작년부터 배달의민족, 쿠팡이츠 등 일부 배달 앱은 AI를 통해 라이더에게 주문을 배정하고 있다. 업체 측에서는 가장 빠른 배달 경로와 배달원을 찾기 위해 이러한 방식을 도입했다고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라이더유니온에서 배달 플랫폼의 AI를 검증한 결과 노동 강도가 높아지는 반면 수입은 오히려 감소했다. 배달 앱은 AI 배차와 일반 배차라는 두 가지 선택지를 주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 일반 배차에는 일명 '똥콜'이라고 하여 현실적으로 배달이 불가능한 콜만 뜨는 경우가 허다하다.
결국 라이더들은 불리한 조건을 감수하면서도 AI 배차를 선택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이게 된다. 게다가 AI 배차를 거절하면 그 기록이 업무 평가에 반영되고 영구 배달 정지로 이어질 수 있어 암묵적인 강요가 이루어지고 있는 셈이다.
다음으로 합리적인 배달료 인상이 필요하다. 라이더가 한 번 배달할 때 받을 수 있는 금액은 2900원 정도이다. 특히 일부 배달 앱은 평소에 배달료를 낮게 유지하다가 배달이 많은 피크타임, 즉 점심시간과 저녁 시간에 배달료를 3~4배 올리는 정책을 펼치고 있다. 노동자들은 피크타임에 더욱 무리하여 배달할 수밖에 없고, 그에 따라 사고 위험 역시 급증한다.
게다가 쿠팡이 단건 배달을 내걸고 배달 플랫폼 시장에 진입하며 이러한 문제가 더욱 심각해졌다. 단건 배달은 소비자 입장에서 훨씬 빨리 음식을 받을 수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다. 하지만 우리는 더 빠른 식사가 거저 얻어지는 것이 아님을 기억해야 한다. 그 뒤에는 높은 사고 위험을 감수하고 오토바이를 내달릴 수밖에 없는 사람들의 노동이 자리하고 있다.
혹자는 돈을 많이 버는 것보다 안전하게 일하는 것이 더 중요하지 않냐며 노동자들의 부주의함을 탓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단건 배달 정책으로 시간당 배달 건수가 감소했기 때문에, 노동자들이 이전과 같은 정도의 수입을 벌기 위해서는 더 빨리 오토바이를 모는 수밖에 없다. 따라서 단건 배달 체제를 유지하되 안전 단건 배달료를 책정하여 배달 노동자들의 안정적인 수입을 보장할 필요가 있다.
이제 우리 사회는 노동자의 권리에 대한 새로운 패러다임을 상상해야 한다. 기존 노동법의 틀에 갇혀 '보호할 필요가 없는 노동자'를 가려내는 데만 초점을 맞출 것이 아니라, '노동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노동자의 권리를 보장받을 수 있도록 변화를 꾀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변화는 미국 캘리포니아주의 AB5 법, 프랑스의 포괄적 입법 등을 통해 이미 실행에 옮겨지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배달 노동자를 포함한 플랫폼 노동자가 어디에서나 안전하게 일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