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4일 새벽 5시 50분, 경찰들을 대동한 중구청 직원들이 대한문 분향소에 들어닥쳤다. 분향소를 지키고 있던 류제선, 이현준, 고동민 세 명의 노동자는 사지가 들린 채로 농성장 밖으로 끌어내졌다. 신발도 제대로 신지 못한 채 폭력적으로 끌려나온 노동자들은 중구청 직원들에 의해 20분간 억류되어 있었다.
“중구청 용역들이 끌고 나오는데, 바지가 풀어졌어요. 그래서 일단 바지라도 올리겠다고 이야기 하는데도 듣지 않고, 제가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만들었죠. 20분간 너무 수치스러웠어요. 경찰들에게 억류당하는 거랑은 전혀 달랐어요. 물론 경찰들에게 억류를 당해도 기분은 상하죠. 그래도 경찰은 그나마 신사적이에요. 아마 경찰들이 연행했다면 제가 바지를 올린다고 말을 했으면 보장해 줬을꺼에요. 저희가 연행될 때 주변에 경찰들이 이를 보고 있었거든요. 그런 인권침해의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데도 경찰들은 모르는 척 하더라구요.”
당시 분향소에 있었던 고동민 조합원은 이번 철거에 대한 계고도 받지 못했고, 철거되는 순간에도 절차에 대한 언급을 듣지 못했다. 쌍용자동차 해고자들은 이번 사태를 어떻게 보는지 들어보았다.
이번 분향소 철거과정을 설명해주세요.
저희가 작년 말에 ‘함께살자 농성촌’을 꾸렸잖아요. 이에 대해 조선일보 등의 보수언론에서는 올해 초부터 농성촌이 ‘불법 전문시위꾼들의 불법 농성촌이다.’라며 공격을 해왔죠. 중구청에서도 그 때부터 농성촌 철거를 언급하기 시작했어요. 그런데 중구청 공무원들은 대한문 분향소 철거를 많이 부담스러워했어요. 그렇기에 계고장은 계속 왔었지만 한 편에서는 협의들도 진행했고, 이야기도 잘 되고 있었죠.
그 분위기가 반전된 것이 3월 3일에 있었던 분향소 방화사태에요. 3월 3일 방화가 되자마자 보수언론에서는 우리의 부주의로 화재가 났다는 식의 보도를 했죠. 다행히 오후에 범인이 잡혀서 분위기가 바뀌기는 했지만, 그 날 오전까지만 해도 저희가 할 수 있는 말이 없을 정도로 여론이 가라앉았었어요. 그 날 오후 범인이 잡히면서 저희는 중구청이 3월 8일에 계고한 내용에 대해서 재판을 걸었어요. 행정대집행이 불합리하고, 비법률적인 행동이라는 내용으로. 그 당시 판사가 했던 말이 ‘3월 8일에 계고했던 행정대집행의 대상이었던 천막은 방화로 제소되었기 때문에 새롭게 계고해야 한다. 대한문 앞은 집회신고가 된 것이기도 하니 양자가 잘 협의해라.’였거든요. 판사가 이런 태도를 가지고 있으니까 중구청이나 경찰에서는 ‘법으로는 안 될 수 있겠다.’는 판단을 하게 된 것 같고, 이것이 4월 4일 분향소 철거로 이어진 것이죠.
4월 4일이 되기 전까지 저희를 양치기 소년으로 만드는 일들이 많았어요. 3월 8일 중구청의 철거시도 이후 저희가 연대해주시는 분들께 철거위협에 맞서 함께 해달라고 3번 정도 요청을 했었죠. 중구청과 남대문 경찰서는 연대 단위 수가 줄어드는 것을 보다 결국 4월 4일에 행정대집행을 강행한 것이죠. 본래 행정대집행이 되려면 계고도 해야 되고, 그것에 대한 타당한 절차가 필요한데 이를 싹 무시한채로. 4일 아침에는 행정대집행 하겠다는 이야기도 안했어요. 당일 아침에 저희가 들은 말은 ‘야 끌어내라.’가 전부에요.
이후 저희는 소극적 항의를 했어요. 적극적 항의도 아니고. 저희 물건은 찾아야 하니까 이를 돌려받겠다고 이야기 했던 것이었죠. 특히 문화예술가 분들과 시민들이 만든 솟대를 중구청이 마음대로 가지고 가려고 해서 “이건 우리 것이고, 예술작품이기 때문에 함부로 다뤄서는 안 된다. 우리가 치워가겠다.”고 요구를 했는데 이를 중구청이 그냥 들고 가려고 한거에요. 이에 항의하는 과정에서 11명이 연행되었고, 연행에 항의하는 사람들을 연행하고, 화단에 앉아있다는 이유로 연행하면서 그 날에만 49명이 연행되었죠. 그 이후에도 3명이 추가로 연행되고.
분향소 강제철거가 보여준 가장 큰 문제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이 문제는 단순히 4월 4일 철거만의 문제도 아니고, 3월 3일 분향소 방화부터의 문제도 아니에요. 이 문제는 3월 3일 이전, 작년 대선부터 봐야 해요. 박근혜 정부가 출범하기 전부터 김무성 선대본부장, 새누리당 황우여 대표, 새누리당 환노위 간사 김성태 의원 등 새누리당의 주요 당직자 대다수가 쌍차 국정조사를 하겠다고 말을 해왔어요. 그런데 선거가 끝나고 이한구 원내대표가 송전탑에 와서 한 말은 “국정조사 못하겠다.”였죠. 그리고 회사 경영진들을 만났고, 이후 무급휴직자들이 복직을 했어요. 저는 이 과정들이 쌍용차 해고자들에 대한 박근혜 정권의 태도를 보여줬다고 봐요.
박근혜 정부가 이전부터 말했던 ‘원칙과 신뢰’, ‘약속은 지킨다.’등의 이미지가 있잖아요. 그렇기에 저희는 국정조사가 아니더라도 박근혜 정권이 뭔가 안을 내올 것이라고 판단을 했어요. 그 방식이 저희가 원하는 방식이 아닐지라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을 낼 것이라고 판단하였고, 이를 기다려왔죠. 그런데 박근혜 정부가 보인 태도가 바로 대한문 분향소 철거였던 것이죠. 이번 철거는 이런 맥락에서 봐야 해요.
이번 분향소 강제철거가 노동운동에 미치는 여파가 클 것이라고 보는데요.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이번 문제는 단순히 중구청이나 남대문 경찰서에서 한 것이 아니에요. 절차나 과정상의 문제도 많았고, 분향소 철거 이후에도 계속 사회적으로 문제가 비화되고 있음에도 중구청이나 남대문 경찰서의 태도에는 변화가 없잖아요. 이렇게 끊임없이 밀어붙이는 것은 그들도 들은 구석이 있고, 믿는 구석이 있는 거죠.
분향소 강제 철거는 단순한 구청장이나 일개 경찰서에서 시작된 문제가 아니에요. 경찰청 본청, 그리고 정부가 개입되어 있는 문제인거죠. 그렇기에 대한문 분향소를 지켜내지 못한다면, 정리해고의 광풍이 몰아칠 것이라고 봐요. 또한 노동운동에 대한 전면적인 탄압이 벌어질 수도 있죠.
이후 어떤 계획을 가지고 계시나요.
일단 분향소 앞을 지켜내는 것이 핵심이에요. 매일 저녁 미사나 기도회, 규탄집회 등을 통해 대한문 분향소 철거를 규탄하는 목소리를 낼 예정이에요. 본래 저희가 분향소가 철거되기 전부터 매주 금요일은 콘서트 형식의 집중 문화제를 기획했었는데요. 이번 주 금요일(12일)에는 저녁 미사를 짧게 하고, 투쟁문화제를 한 후 민주노총에서 주관하는 규탄 집회를 할 예정이에요. 토요일에는 투쟁하는 노동자들과 함께 하는 ‘희망지킴이’에서 ‘대한문에서 캠핑가자!’라는 이름으로 1박 2일간 여러 가지 행사들을 할 예정이구요.
철거가 있은 후 8일이 지났다. 아직도 대한문 분향소 앞은 시끄럽다. 문화제를 할 때마다 경찰들과 문화제 참가자들 사이의 마찰이 벌어진다. 경찰은 문화제를 하고 있는 이들을 채증하고, 집회에 신고된 물품을 들고 오는 이들을 막는다. 심지어는 유인물을 들고 오는 연대단위를 막아 마찰이 일어나기도 한다. 화단에 들어가 국화꽃을 심고, 현수막을 걸려고 하면 선무방송을 통해 ‘검거할 수 있다.’, ‘경찰들은 화단에 들어간 사람들을 채증하라.’며 집회에 참석한 이들을 협박한다.
대한문은 갓 출범한 박근혜정권의 노동운동과 민중운동에 대한 태도를 가장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공간이 되었다. 그리고 이런 탄압에 맞서 쌍차 해고자들과 연대단위들은 8일째 줄기차게 싸우고 있다. 가장 소외되고 억압받았던 이들이 연대의 마음을 모으던 대한문. 이 곳을 지켜내지 못한다면 투쟁하는 노동자에 대한, 사회운동에 대한 탄압들은 더욱 거세질 것이다. 한국 사회 인권의 보루가 된 대한문 농성장과 쌍차 분향소를 끝내 지켜내야 하는 이유가 시간이 지날수록 분명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