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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설이 다가 오고 있습니다.
고향에 가셔서 만나게 되는 친척들과 고향 친구들에게도 조선일보가 어떤신문인지 알려주세요.
조아세에서 만든 달력은 친일반민족 조선일보가 어떤 신문인지 잘 말해주고 있습니다.
조아세 (www.joase.org)에 가시면 달력내용을 상세히 보실 수 있습니다.
1월은 제호(신문 첫 면에 **일보,**신문 등으로 신문이름을 크게 쓴 것) 위에 일장기를 올린 일제 때 친일반민족 조선일보 여러 장을 사진 찍어 두었습니다.
일본 제국주의 기념일마다 일장기를 제호 위에 올렸다. 당시 일장기를 제호 위에 종종 올렸던 신문은 총독부 기관기인 매일신보와 친일반민족 조선일보뿐이었던 사실에
비추어 볼 때 친일반민족 조선일보가 얼마나 적극적으로 친일과 부일에 앞장섰는지 확인할 수 있다.
통계자료를 보면 1937년에서 1939년 동안 일제에 의해 신문기사 압수 처분 받은 것이 조선일보가 13번 동아일보가 14번 총독부기관지인 매일신보가 16번 이었습니다.
그 당시 조선, 동아의 친일반민족 행위가 어느 정도였는지 이 사실로 미루어 생각할 수 있습니다.
2월은 임정 국무위원 김승학이 백범 김구의 지시로 작성한 친일파 263명 반민특위 살생부 초안 을 공개한 월간중앙 2001년 8월호 중 명단 일부와 육필 원고를 사진 찍어 두었습니다. 그 살생부 명단에는 조선일보 사장과 동아일보 사장이 들어 있습니다.
3월은 친일반민족 조선일보 사주의 대저택을 사진으로 찍어 두었습니다.
서울시 동작구 흑석2동에 있으며 3,700여 평으로 축구장 면적의 2배입니다.
독립유공자 후손의 60%가 하층민으로 살고 있는 이 나라에 친일반민족 조선일보의 사주가 이런 대저택에 살고 있다는 것은 현대사의 비극이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4월은 친일반민족 조선일보의 폐간사를 사진 찍어 두었습니다. 폐간사 중에 이런 부분이 있습니다.” 더욱히 동아 신질서 건설의 위업을 성취하는데 만의 일이라도 협력하고자 숙야분려한 것은 사회일반이 주지하는 사실이다”
(숙야분려는 이른 아침부터 늦은 밤까지 힘을 내어 열심히 일하다는 뜻입니다.)
이 말의 뜻은 결국 조선일보가 문을 닫는 것은 일본과 무슨 문제가 있어 강제폐간 당하는 것이 아님을 독자들에게 알리고 있는 것입니다. 당시 친일반민족 조선일보는 전투기 1대에 10만원 할 때 100만원 받고 총독부 기관지와 합의 통합을 했습니다. 그때 일본제국주의는 전쟁물자가 부족해서 일본에서도 각 지방마다 신문을 한 가지로 통폐합을 했습니다. 조선일보가 이렇게 문을 닫은 후 조선일보의 많은 간부들이 총독부기관지인 매일신보의 임직원으로 자리를 옮겼습니다.
5월은 독재자 전두환을 찬양하는 조선일보를 사진 찍어 두었습니다.
그리고 조선일보는 “신중을 거듭했던 군의 노
설이 다가 오고 있습니다.
고향에 가셔서 만나게 되는 친척들과 고향 친구들에게도 조선일보가 어떤신문인지 알려주세요.
조아세에서 만든 달력은 친일반민족 조선일보가 어떤 신문인지 잘 말해주고 있습니다.
조아세 (www.joase.org)에 가시면 달력내용을 상세히 보실 수 있습니다.
1월은 제호(신문 첫 면에 **일보,**신문 등으로 신문이름을 크게 쓴 것) 위에 일장기를 올린 일제 때 친일반민족 조선일보 여러 장을 사진 찍어 두었습니다.
일본 제국주의 기념일마다 일장기를 제호 위에 올렸다. 당시 일장기를 제호 위에 종종 올렸던 신문은 총독부 기관기인 매일신보와 친일반민족 조선일보뿐이었던 사실에
비추어 볼 때 친일반민족 조선일보가 얼마나 적극적으로 친일과 부일에 앞장섰는지 확인할 수 있다.
통계자료를 보면 1937년에서 1939년 동안 일제에 의해 신문기사 압수 처분 받은 것이 조선일보가 13번 동아일보가 14번 총독부기관지인 매일신보가 16번 이었습니다.
그 당시 조선, 동아의 친일반민족 행위가 어느 정도였는지 이 사실로 미루어 생각할 수 있습니다.
2월은 임정 국무위원 김승학이 백범 김구의 지시로 작성한 친일파 263명 반민특위 살생부 초안 을 공개한 월간중앙 2001년 8월호 중 명단 일부와 육필 원고를 사진 찍어 두었습니다. 그 살생부 명단에는 조선일보 사장과 동아일보 사장이 들어 있습니다.
3월은 친일반민족 조선일보 사주의 대저택을 사진으로 찍어 두었습니다.
서울시 동작구 흑석2동에 있으며 3,700여 평으로 축구장 면적의 2배입니다.
독립유공자 후손의 60%가 하층민으로 살고 있는 이 나라에 친일반민족 조선일보의 사주가 이런 대저택에 살고 있다는 것은 현대사의 비극이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4월은 친일반민족 조선일보의 폐간사를 사진 찍어 두었습니다. 폐간사 중에 이런 부분이 있습니다.” 더욱히 동아 신질서 건설의 위업을 성취하는데 만의 일이라도 협력하고자 숙야분려한 것은 사회일반이 주지하는 사실이다”
(숙야분려는 이른 아침부터 늦은 밤까지 힘을 내어 열심히 일하다는 뜻입니다.)
이 말의 뜻은 결국 조선일보가 문을 닫는 것은 일본과 무슨 문제가 있어 강제폐간 당하는 것이 아님을 독자들에게 알리고 있는 것입니다. 당시 친일반민족 조선일보는 전투기 1대에 10만원 할 때 100만원 받고 총독부 기관지와 합의 통합을 했습니다. 그때 일본제국주의는 전쟁물자가 부족해서 일본에서도 각 지방마다 신문을 한 가지로 통폐합을 했습니다. 조선일보가 이렇게 문을 닫은 후 조선일보의 많은 간부들이 총독부기관지인 매일신보의 임직원으로 자리를 옮겼습니다.
5월은 독재자 전두환을 찬양하는 조선일보를 사진 찍어 두었습니다.
그리고 조선일보는 “신중을 거듭했던 군의 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