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는 신현대아파트 경비노동자 분신 사건이 재발되지 않도록
전사회적으로 경비노동자 노동인권 보장 운동이 절실하다
결국 어제 오전 우리 모두의 간절한 바램을 뒤로 한 채 분신한 서울지역일반노조 이만수 조합원님이 안타깝게 숨지셨다. 비통한 일이다. 한국비정규직노동단체네트워크는 노동인권 사각지대로 내몰린 경비노동자들의 고통을 한몸에 안고 돌아가신 이만수 조합원님의 영전에 죄송한 맘으로 머리 조아리면서, 부디 고인께서 비정규 노동자에 대한 모멸과 언어폭력 없는 곳에서 평안하게 영면하시길 빈다. 그리고 고인의 죽음이 헛되지 않도록, 다시는 이런 비극이 일어나지 않도록, 산자들로서 최선을 다할 것을 가슴속 깊이 다짐한다.
고인의 분신은 이땅의 20여만 경비노동자들이 어떤 처지에 놓여있는지 극명하게 드러낸 사건이었다. 얼마나 자괴감과 분노가 컸으면 사랑하는 가족을 두고 자신의 몸에 불을 붙였겠는가. 늘 우리 가까이 일해온 경비노동자의 힘겨운 일상이 드러나면서 사회적 반향도 컸다. 우리 사회의 가장 부끄러운 치부가 평범하고 성실한 가장인 한 경비노동자의 극단적인 저항을 통해 드러났기 때문이다. 경비노동자들이 겪는 차별과 무시는 일상에 잠복된, 작지만 집단적인 세월호 참사에 다름아니었다. 무엇보다 부자촌인 압구정동 신현대아파트에서 중고령 비정규 노동자가 입주민의 일상적인 언어폭력과 하대 행위에 왜 속절없이 무너져갈 수밖에 없었는지, 우리 사회의 비인간적 현실에 대한 성토와 자성의 목소리가 높았다. 어떤 고용구조와 사회적 인식 속에서 이런 비극이 일어났는지에 대해서도 전사회적으로 전례없는 관심이 모아졌다.
그럼에도 아직 이 비극적인 사건을 계기로 현실이 개선될 기미는 그리 크지 않아 보인다. 여전히 우리 사회의 전근대적이고 낡은 구조와 인식이 경비노동자들을 단단히 옥죄고 있기 때문이다. 비정규 문제가 개선되어야 한다는 사회적 공감대는 전에 없이 광범위하게 확산되고 있지만, 가장 가까이 접하는 대표적인 비정규 노동자들의 고통에는 제대로 주목하지 않는 한국 사회의 이율배반이 뿌리깊다. 이번 일을 계기로 경비노동자 노동인권 침해를 막고 고용안정과 차별 극복을 가능하게 할 실질적인 대안이 사회적 합의 수준에서 강구돼야 한다. 간접고용 비정규직 문제가 약자인 노동자를 어떻게 사지로 몰아갔는지 극명하게 드러난 만큼, 대증요법이나 임시방편이 아닌 근본적인 처방이 실행돼야 한다. 그럴 때에만 이런 비극이 재발되지 않을 것이다.
우선 신현대아파트 입주민대표자회의는 사용자로서 자신의 책무를 다해야 마땅하다. 개인간 불상사로 보는 건 이 사건의 본질에서 동떨어진 것이다. 실제 강력한 권한을 행사해온 실질사용자로서 이번 사건의 제대로 된 문제 해결과 재발 방지 및 보상 대책 마련에 이르기까지 책임져야 한다. 지금까지 입주민대표자회의는 사태 해결에 소극적이고 미온적으로 임해왔다. 한 사람이 희생된 지금 이런 일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도록 대책 마련에 적극적으로 나설 것을 강력하게 촉구한다. 진심어린 사죄와 함께 간접고용 비정규직 고용구조 개선 및 깎인 정년 회복 등 근로조건 개선을 실행해야 한다.
특히 내년부터 적용되는 최저임금 감액 적용 해소로 인한 10% 임금 인상을 앞두고 벌써부터 전국 아파트에서 인원 감축 및 경비용역 전환이 이뤄지고 있다. 당연한 법정임금 인상 때문에 더 나쁜 간접고용 비정규직으로 전락하거나 일자리를 잃는다는 게 말이 되는가. 2년 이상 정규직화를 회피하겠다고 입법 취지를 거슬러 초단기계약을 도입하고 용역, 파견 등 더 나쁜 간접고용으로 전환해버린 풍선 효과와 똑같은 결과다. 바로잡아야 한다. 상시 지속 업무 직접고용 정규직화는 이미 우리 사회 좋은 일자리 만들기의 원칙으로 자리잡아가고 있다. 최저임금 감액 적용 해소로 인해 경비노동자들에게 불이익이 전가되는 건 철저하게 막아야 한다. 인력 감축은 당연히 있어선 안되고, 심각한 문제가 드러난 용역업체 고용 등 간접고용 비정규직 구조를 직접고용 체제로 근본적으로 바꿔야 한다. 신현대아파트 입주민대표자회의도 고용구조 개선에 나서야 한다. 그리고 이번 일을 계기로 아파트입주민대표자회의의 사용자 책임에 대한 내용을 명시하는 법률 개정도 검토되어야 한다.
신현대아파트 뿐 아니라 입주민들의 경비노동에 대한 인식도 이번 참에 바뀌어야 한다. 전사회적인 경비노동자 노동인권 보장 운동이 절실하다. 가장 많은 수의 중고령 노동자들이 종사하는 대표적인 업종인 경비노동이 이렇게 홀대받고 무시받고 저평가되어서야 우리 사회가 어떻게 한뼘이라도 선진화될 수 있겠는가. 경비노동자에 대한 입주민들의 인식 전환 없이는 1천만명에 이르는 전체 비정규 노동자들의 노동인권 신장은 불가능하다. 구체적인 일상에서 고통받고 있는 이웃을 외면하면서 전사회적인 비정규 문제 개선을 바라는 건 위선이다. 일부이지만 갑질해온 입주민은 이번 사건을 자신의 행위를 반성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입주민에게 삶터이자 쉼터인 곳이 경비노동자들에게는 일터다. 일터에서 존중받지 못하면서 행복할 수도 없고 입주민들에게도 좋을 게 없다. 하대와 멸시는 절대로 용납되어선 안된다. 시민이기도 한 입주민들의 자정 노력이 필요하다. 아파트공동체의 일원인 경비노동자에 대한 따뜻한 말 한 마디가 문제개선의 절반에 다름아니다.
경비노동자 수난시대다. 우리 사회의 어른인 중고령 노동자들이 처한 기막힌 현실을 이대로 방치해선 안된다. 적정한 임금과 쉼터 등 근로조건을 개선하고 고용안정이 보장되는 직접고용 체계로 전환해야 한다. 그리고 경비노동자에 대한 모멸적인 언사와 하대 등 인권 침해는 근절돼야 마땅하다. 다시는 이만수 조합원님과 같은 비극이 있어선 안된다. 한국비정규직노동단체네트워크는 신현대아파트 입주민대표자회의가 사과 및 후속 대책 마련에 진정성있게 나설 것과 우리 사회가 경비노동자들에 대한 노동인권 보장을 위한 실질적인 방책 마련에 나설 것을 촉구하며, 고인의 염원을 가슴에 새기면서 비정규직 차별과 고용불안 없는 세상을 향해 매진할 것을 다짐한다. 다시 한 번 깊숙이 머리 숙여 이만수 조합원님의 명복을 빕니다.
2014년 11월 8일
한국비정규직노동단체네트워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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