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명서]
문제의식도 없고, 대책도 없는
이명박 정부의 「공공부문 비정규직 고용개선 대책」
이명박 정부와 한나라당은 한동안 발표를 미뤄오던 「공공부문 비정규직 대책」을 11월 28일 당정협의를 거쳐 관계부처 합동으로 발표했다. “정규직과 비정규직간 불합리한 차별은 없어야 하며, 공공부문이 솔선수범하여야 한다”는 대통령의 얘기와 2개월여의 실태조사를 거쳐 발표된 대책은 실망을 넘어 어이없는 내용으로 가득하다. 차라리 안 하느니만 못한 이번 발표내용은 노동문제 전반에 대한 현 정부의 천박한 인식수준을 드러낼 뿐이며 비정규직 문제에 대한 지나치게 안이한 대응 태세를 가감없이 보여주고 있다.
○ 과연 정부는 공공부문 비정규직에 대한 문제의식이 있는가?
뭔가 대책을 발표했다는 것은 그에 대한 문제의식이 선행함을 의미하는데, 정부의 발표내용에는 문제의식이 없는 것을 넘어서서 심각하게 인식이 왜곡되어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공공부문 비정규직에 대한 정부의 기본적인 인식은 “공공부문도 행정수요가 증가하고 효율적인 예산 및 인력운영에 대한 국민적 요구도 있어 비정규직 활용이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또한 “그간 공공부문 비정규직 대책 시행('07~'08년) 등으로 비정규직의 활용 관행이 일정 부분 개선되고 있”고, “다만, 아직도 처우수준의 미흡 등 불합리한 관행도 상존”한다는 것이 공공부문 비정규직 문제에 대한 정부의 인식이다. 한 마디로, 비정규직 사용은 불가피하고, 비정규직 남용의 문제도 없으며, 다만 일부 불합리한 관행이 있으니 이에 대한 추가대책을 마련하면 된다는 것이다.
2006년 노무현 정부는 “저임금?고용불안 등으로 고통 받는 공공부문 비정규직 근로자들의 어려움”을 개선하기 위해 일련의 대책을 발표했고, 「무기계약 전환, 외주화 개선 및 차별시정 계획」(2007. 6.)을 시행한 바 있다. 당시 노무현 정부의 공공부문 비정규직 대책 역시 문제의식의 불철저함과 대책의 미흡함으로 인해 노동계의 질타를 받은 바 있는데, 이번 정부의 발표 내용 중 공공부문 비정규직 비율이 2006년 당시 20.1%에서 5년이 지난 현재 20.2%(인원은 28,970명 증가)로 별다른 변화가 없었다는 사실에서 노무현 정부의 대책이 실패작이었음이 드러났다. 노동계의 비판에도 불구하고 나름 의욕적으로 실시한 2006년의 대책도 결과적으로 실패했음을 생각할 때, 현 정부의 대책은 의욕은 고사하고 문제의식조차 없기에 그 결과가 어떠할지는 짐작이 어렵지 않다.
○ 과연 정부가 발표한 「대책」에는 대책이 있는가?
11월 28일 이명박 정부가 발표한 공공부문 비정규직 대책은 다음과 같은 내용이 중심이다.
- 상시?지속적 업무에 정규직 고용, 고용개선 컨설팅 및 차별시정 점검 강화
- 맞춤형복지제도, 상여금, 사내근로복지기금 등의 수혜를 확대
- 용역계약제도 개선
- 고용구조 공시제, 매년 실태조사
이러한 대책 내용은 희박한 문제의식을 반영하는 함량미달의 대책일 뿐 아니라, 오히려 문제를 왜곡하는 유해한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다. 정부가 발표한 목차에 따라 내용을 살펴보자.
1) 합리적 고용관행 정착
정부는 “상시?지속적 업무 종사자의 원칙적 무기계약직 전환?채용”이라는 원칙하에 “2년 이상 계속되고, 향후에도 지속되는 업무를 담당하는 기간제를 대상”으로 하여 “직무분석?평가 기준에 따라 기관별로 일정기준 해당자를 무기계약직으로 전환”하겠다고 한다. 이러한 기준의 ‘검토대상’이 9만 7천명이라고 한다.
이러한 정부의 발표내용은 「기간제 및 단시간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 제4조 “2년을 초과하여 기간제근로자로 사용하는 경우에는 그 기간제근로자는 기간의 정함이 없는 근로계약을 체결한 근로자로 본다.”는 법조항을 무시한 채 2년을 초과하더라도 직무분석 및 평가를 거쳐서 “일정기준”에 해당할 경우에만 무기계약으로 전환하겠다는 초법적 발상으로밖에는 해석되지 않는다. 정부 발표자료 어디에도 비정규직을 줄이겠다는 표현이 없는 것으로 미루어볼 때, 이명박 정부가 얘기하는 “합리적 고용관행 정착”이 곧 공공부문 비정규직의 안정적 사용구조를 만드는 것임을 알 수 있다.
2) 복지 확충 및 처우개선
정부 발표내용에는 복지포인트 지급, 상여금 지급, 학교종사자에 대한 장기근속수당 인상, 교통비 지급, 우편물 구분원에 대한 상여금, 작업복 및 안전화 지급 등의 내용이 담겨 있다. 단편적이고 일회적인 정책을 열거한 이러한 내용은 “당정협의를 거쳐 관계부처 합동으로 발표”한 내용으로는 매우 함량미달이 아닐 수 없다.
처우개선의 핵심은 임금이다. 또한 노무현 정부 당시의 실패사례를 감안할 때 추가 소요 예산에 대한 조달방안이 명확하지 않으면 그나마의 계획도 빛좋은 개살구에 지나지 않음을 경험을 통해 알 수 있다. 이번 발표는 임금에 대한 얘기는 전혀 없을 뿐만 아니라 추가소요 예산에 대한 중앙정부 차원의 어떠한 대책도 마련되어 있지 않다는 점에서 구색 맞추기를 넘어서기 어렵다고 보인다.
3) 청소용역 등 외주근로자 근로조건 개선
외주문제에 대한 정부의 대책은 “청소·경비 등 단순업무 외주시 근로자 보호지침 마련”과 “청소용역 직영 전환 또는 사회적기업 위탁시 지원”이 중심이다. 용역계약시 업체선정?관리 등 준수사항 명시, 표준계약서 보급?활용, 직영 전환 또는 사회적기업 위탁시 민간전문가 경영 컨설팅 지원 등의 내용으로 되어 있다.
외주근로자 문제의 핵심은 외주(민간위탁)의 남용이다. 도급, 용역, 위탁 등의 명칭으로 외주화 하여 운영하지만 상당부분은 발주처인 공공기관이 직접 지휘명령하는 경우가 많을 뿐만 아니라, 외주화에 따른 불필요한 예산낭비(중복 관리비 및 외주업체의 이윤 등)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대책의 중심이어야 하는데, 이에 대한 내용은 전무하다. 직영전환시 경영 컨설팅을 지원한다고 하는데, 이는 민간기업들의 무분별한 간접고용 남용문제에나 적용할 수 있는 얘기이지 공공부문 스스로에게 이러한 대책을 제시한다는 것은 외주문제를 얼마나 안이하게 바라보고 있는지를 드러낼 뿐이다.
외주근로자 처우개선과 관련해서 노무현 정부 당시에는 시장임금(시중노임단가)에 맞추겠다는 계획을 수립했었다. 물론 제대로 관리감독이 되지 않아서 제대로 지켜지지는 않았지만 저임금 문제를 개선하겠다는 의지는 보인 것이다. 하지만 이번 발표는 “시설물청소의 평균임금은 민간보다 다소 높으나 전반적으로 낮은 수준”이라고 하면서도 이에 대한 대책은 용역입찰 과정에서 “예정가격 산정시 적용노임에 낙찰률을 곱한 수준 이상의 임금 지급”이라는 미미한 수준에 그쳤다.
4) 비정규직 고용개선 관리 및 평가 체계 구축
공공부문 비정규직 고용구조 공시제 확대, 정기 실태조사, 차별처우 등 진정? 고충처리절차 마련 등 정부는 일상적으로 공공부문 비정규직을 관리하는 시스템을 만들겠다고 한다. 공공부문 비정규직 문제는 일시에 해결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상당기간은 중앙정부가 중심이 되어 개선 상황을 파악하고 산하 기관을 독려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하지만 이러한 관리 시스템도 문제해결의 방향이 제대로 수립된 가운데 의미를 찾을 수 있다. 앞서 본 빈약하고 왜곡된 인식에 기반한 부실한 정책 방향으로는 여러 관리방안도 실효를 거두기 어렵다. 또한 일상적 관리체계가 제대로 작동되기 위한 강제성 확보 등 실효성 있는 접근이 요구된다.
이상에서 살펴본 것처럼 이명박 정부의 ‘공공부문 비정규직 고용개선 대책’은 부실하기 짝이 없었던 지난 ‘9.9 비정규직 종합대책’에서 한 발짝도 나가지 못하고 있다. 공익적 사용자로서 민간 부문을 선도해야 할 책임이 여느 때보다 무거운 정부가 공공 부문의 비정규직 대책을 이런 문제의식 수준에서 제출하고 있으니 참으로 기대난망이다. 도대체 이명박 정부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고통과 설움을 지금까지 단한번이라도 제대로 이해하려고 노력해보았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우리는 정부가 이번 공공부문 대책을 원점에서 재고하고 비정규직 문제를 실제로 해결할 수 있는 대책을 심사숙고하여 다시 내놓기를 촉구한다.
2011년 11월 28일
한 국 비 정 규 노 동 센 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