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76일 재능 투쟁이 남긴 과제를 함께 책임지자
비정규 최장기투쟁사업장 학습지 재능 투쟁이 26일 노사 합의 조인식을 가졌다. 2007년 12월 21일 본사 앞 농성투쟁에 들어간 지 2076일만이다. 같은 날 하늘 감옥인 혜화동성당종탑 고공농성투쟁을 이어오던 오수영 재능지부 지부장 직무대행과 여민희 조합원도 202일만에 땅을 밟았다. 가족들의 걱정 속에 건강 상태가 썩 좋지 않음에도 악질 자본에 맞선 장기투쟁을 굽힘없이 전개해 투쟁과정에서 암투병으로 운명한 이지현 조합원까지 포함한 해고자 전원복직과 숙원 사업이던 단체협약 원상회복을 쟁취했으니 의미있는 성과다. 투쟁 주체인 재능 조합원들과 지속적이고 헌신적으로 연대한 수많은 노동자 시민의 힘이 모아져 만들어낸 결실이다. 한때 3800여명으로까지 조합원이 확대됐던 재능노조가 자본과 정권의 전방위적 탄압 속에서 고사 직전으로까지 몰렸으나 다시 회생할 수 있는 전기가 마련됐다.
재능 투쟁 합의는 노동자임에도 노동자성이 송두리째 부정당해 헌법과 노동관계법에 정한 노동권을 박탈당한 250만 특수고용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한줄기 희망이 되고 있다. 지금 한국 사회는 사라진 사용자 책임으로 고통받고 있다. 응당 직접고용 정규직화해야 할 노동자들을 간접고용 또는 간접고용이 극단화한 특수고용 비정규직으로 남용하고 양산해온 대기업의 행태가 커다란 사회적 문제가 되고 있다. 대법원 판결마저 묵살하는 현대차나 근로기준법도 위반한 삼성전자에서처럼 실질 사용자임에도 사내하청업체나 협력업체 뒤에 숨어 법적 책임을 회피해온 슈퍼갑들 때문에 사회가 온통 시끄럽다. 법치를 강조해온 박근혜 대통령은 간접고용과 특수고용 문제와 관련해선 뒷짐을 지고 있을 뿐이다. 이런 참에 단협 원상회복 합의를 통해 노조를 인정받고 사업장 수준에서이긴 하지만 노동자성을 쟁취한 재능 투쟁은 한국 사회 사용자들의 고의적인 법적․사회적책임 회피에 경종을 울렸다.
물론 소수 노조인 재능 지부의 내부 갈등이 채 해소되지 않은 안타까움이 크고, 이후 현장복직 후 교섭 재개와 단협 체결까지 재능 사측의 합의사항 이행이 제대로 되기 위해선 넘어야 할 산이 만만찮다. 결국 재능 투쟁은 한 고비를 넘겼을 뿐 다시 현장에서 정상적인 노조 기능을 회복하고 노조 내부 단합을 이끌어내는 숙제가 남아있다. 그렇지만 한국 사회 최초의 특수고용 노동자 파업과 단협 체결을 이뤄낸 상징적인 노조로서 난제를 잘 해결해 가리라 믿는다.
이제 남은 과제는 250만명으로 추산되는 특수고용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는 것이다. 이미 작년 11월 서울행정법원이 재능 학습지 교사들은 노동조합법상의 노동자라고 판결했듯이, 더 이상 노동인권의 사각지대에 방치된 특수고용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법적 지위 문제를 외면해선 안된다. 다종다양한 양태로 확산돼온 특수고용 비정규직 실태의 전모를 밝혀내는 연구조사와 함께, 근로기준법과 노동조합법 개정을 통해 특수고용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노동자로 인정하는 것만이 근본적인 방책이다. 그래서 헌법에 정한 노동3권과 행복추구권이 위장자영인으로 불리며 자신의 노동자 정체성을 묵살당해온 특수고용 비정규직 노동자에게도 적용되어야 한다. 지금도 노동자성 쟁취와 노동 조건 개선을 위해 치열하게 투쟁하고 있는 수많은 특수고용 비정규직 노동자들 어깨 위에 짐지운 무거운 십자가를 내려놓도록 정부와 국회가 앞장서야 한다. 직접고용 정규직으로 채용하거나 전환해야 할 노동자들을 특수고용 비정규직으로 남용해온 사용주들도 최우선 사회적 의제가 된 양질의 일자리 창출에 대해 무거운 사회적 책임을 통감하고 전향적인 대책을 내놓아야 마땅하다.
한국비정규직노동단체네트워크는 202일 종탑고공농성투쟁과 2076일 길거리농성투쟁의 성과를 환영하면서, 재능 투쟁이 남긴 숙제를 공동의 해결 과제로 인식하고 학습지노조 재능지부가 현장에 안착될 때까지 노동자 단결과 투쟁의 정신으로 지속적으로 연대할 것을 다짐한다. 이제 더 이상 기본적인 노동권을 박탈당해 희생을 무릅쓰고 장기 투쟁하는 노동자들이 양산되어선 안된다. 재능 투쟁을 분기점으로 한국 사회 노동시장의 하향평준화 주범인 특수고용 비정규직 문제에 대한 특단의 대책 마련이 어느때보다 절실하다.
2013. 8.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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