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가 인력공급업체인가?
더 이상 학생들을 위험한 사지로 내몰지 마라
- 기업의 높은 윤리의식, 정부의 막중한 책임감, 치밀한 제도적 보완, 높은 시민의식이 현장실습생은 물론 노동자의 목숨을 지킬 수 있다 -
여수의 한 특성화고에 재학 중이던 홍정운 군은 9월 27일부터 요트 업체에서 현장실습생으로 일했다. 하루 12시간 장시간노동을 시달리던 홍정운 군은 10월 6일 요트바닥에 붙은 따개비 제거작업을 하다가 숨졌다. 잠수자격증도 없으며, 수영도 못하고 심지어 물을 무서워했던 홍정운 군은 12kg 무게의 납 벨트를 착용한 채 요트장 수심 7m 아래로 내려갔다.
밧줄을 놓자마자 1초 만에 사람의 형태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급속하게 바닷속으로 잠겼다는 특수잠수사들의 현장 감식 결과가 아니어도, 홍정운 군이 얼마나 위험한 노동환경에 노출된 것인지 학교와 교육부는 점검하지 않았다. 현장을 지도할 교사나 동료 한 명 없이 혼자 잠수업무를 하다가 목숨을 잃은 것이다.
특성화고 현장실습제도는 교육부 소관이다. 학교 현장실습운영위원회가 기업을 선정하고 일선 시도교육청이 최종 승인한다. 2018년 공인노무사가 동행하여 사전 현장실사를 한 뒤 선도기업협의체의 승인을 받고, 교육부 또는 시도교육청에서 최종승인을 받아야 하는 선도기업을 중심으로 현장실습을 허용했으나, 이후 요건이 완화되면서 노무사의 현장실사 없이 학교 심의만으로 선정이 가능해졌다. 산업안전에 전문성이 없는 교사들이 제대로 된 심사를 할리 없었을 것이다.
그런 이유로 고용노동부는 현장실습 사업장 실태와 현장실습생 산재 현황에 대해 파악조차 하지 못하고 있다. 현장실습생을 따로 관리하지 않아 현장실습생의 산재현황에 대한 통계조차 없는 상황이다.
고용노동부가 책임을 방기하는 동안 직업교육훈련 촉진법(직업교육훈련법) 9조의4(현장실습산업체의 책무), 9조의5(현장실습 안전교육 등), 산업안전보건법140조(자격 등에 의한 취업 제한 등), 166조의2(현장실습생에 대한 특례), 산업안전보건기준에 관한 규칙(안전보건규칙) 545조(스쿠버 잠수작업시 조치)가 하나도 작동되지 않는 현장실습 사업장에서 학생들은 다치거나 산재로 사망하는 일이 계속 벌어지고 있다.
현장실습의 문제점은 계속 제기되어왔다. 직업선택을 위한 현장실습이라는 경험적 교육 목적이 사라진지 오래다. 취업률만 높이면 그만인 학교는 그동안 현장실습으로 목숨을 잃은 수많은 학생들의 사례를 보면서도 아무런 안전장치를 마련하지 않고 시장에 학생들을 맡겨버렸다. 아직 어리고 사회경험이 없는 어린 학생들을 현장실습이라는 허울 좋은 이름을 빌어 사지로 내모는 일을 중단해야 한다. 그에 앞서 노동현장에서 당연히 요구해야할 노동자의 권리부터 일상적으로, 또한 과할 정도로 교육시켜야 한다. 학생이라는 이유로 위험하고 힘든 일에 헐값으로 사업체에 넘기는 현재의 학교는 인력공급업체에 불과하다.
산재는 현장실습생만의 문제도 아니다. 그 누구도 일하다가 다치거나 죽는 일이 없어야 한다. 노동자의 목숨을 갈아 넣어 지탱하는 사회는 제대로 된 사회도 아니며, 건강한 사회가 될 수 없다. 그런 죽음을 목격하면서 살아가는 국민들도 결코 안전하고 안녕하다고 말할 수 없다.
노동자의 목숨을 담보로 굴러가는 사회를 우리는 원치 않는다. 안전한 일터, 행복한 생활을 전제로 한 사회는 사회구성원의 높은 윤리적, 도덕적 의식도 전제되어야 한다. 또한 기업의 높은 윤리의식, 정부의 노동자에 대한 막중한 책임감, 이를 위한 치밀한 제도적 장치 마련!! 마련된 제도가 제대로 작동될 수 있는 사회시스템이 필요하다. 어떤 상황에서도 타협하면 안 되는 생명과 직결된 문제는 절대 관대하면 안 된다.
2021년 10월15일
한국비정규직노동단체네트워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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