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이 고장 내고 정권이 가라앉힌 세월호 참사 노동자의 손으로 눈물을 닦아내고, 노동자의 힘으로 사회를 고치겠습니다!
외부 성명 조회 수 3698 추천 수 0 2014.05.07 15:30:49자본이 고장 내고 정권이 가라앉힌 세월호 참사! 노동자의 손으로 눈물을 닦아내고,
노동자의 힘으로 사회를 고치겠습니다!
1. 인천에서 출발해 제주로 가던 세월호가 진도 앞바다에서 침몰한 지 스무 날이 넘었습니다. 그 사이 일일이 헤아릴 수도 없는 숫자의 사람들이 사랑하는 자식, 친구, 부모를 잃었습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팽목항에는 돌아오지 않는 가족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무정한 바다를 바라보며 하염없이 서 있을 것입니다. 이들뿐 아니라 한국 사회에 살고 있는 우리 모두는 탐욕에 가득 찬 자본, 그리고 무능과 무책임으로 일관하는 정권이 대한민국이라는 또 다른 배를 침몰시키는 광경을 지켜보며 울분을 토하고 있습니다.
2. 우리 케이블방송통신 노동자들은 수많은 죽음과 상실을 마주하며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우러나오는, 달리 표현할 길이 없는 애도를 전합니다. 떠난 이는 오지 않는데 시간은 무참히 흘러 어버이날과 스승의날이 코앞입니다. 우리 노동자들은 꽃을 달아주지 못하는, 꽃을 달 수 없는 많은 사람들의 소리 없는 아픔을 새기겠습니다. 무엇보다 꽃보다 어여쁘고 소중한 사람을 잃어버린 고통에 연대하겠습니다.
3. 이제 무거운 슬픔과 분노를 받아들고 우리가 할 수 있는 일들에서부터 움직이고자 합니다. 우리는 우리가 발 딛고 있는 이곳을 또 하나의 세월호로 만들어온 것이 아닌지 반성하고, 다시는 이러한 희생을 치르지 않겠다는 각오로 투쟁의 결의를 다지려 합니다. 말이 아닌 몸으로 우리가 사는 곳, 우리가 일하는 노동현장에서 제2, 제3의 세월호 참사를 막아내 보이겠습니다.
돈보다 사람 목숨이 먼저입니다.
4. 우리 케이블방송통신 노동자들은 전국 2000만 유료 가입자들의 집을 방문해 케이블방송, IPTV, 초고속 인터넷, 인터넷전화망을 설치하고, 유지/보수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씨앤앰, 티브로드, LG유플러스, SK브로드밴드라는 로고가 찍힌 작업복을 입고 있지만 실상은 하청과 도급을 받아 일하는 비정규직 노동자가 대부분입니다.
5. 원청으로부터 작업지시를 받고 하청으로부터 돈을 떼이는 우리는 그동안 저임금과 고강도 노동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였습니다. 우리의 생명이 위협받는 현실을 외면했습니다. 비가 오는 날에도, 안전장비가 없을 때에도 전신주에 오르라는 작업지시를 거부할 수 없었습니다. 노동 현장에서 감전과 낙하가 부지기수로 일어났지만 산업재해 처리조차 제대로 하지 못했습니다. 참고 견디는 것에 익숙해져갔습니다. 사망한 동료의 죽음 앞에서도 제대로 된 보상이나 재발방지의 책임을 묻지 못했습니다. 우리의 침묵과 굴종이 어이없게도 사람 목숨 값이 제일 싼 사회를 만들었습니다.
6. 우리는 청해진해운이라는 자본이 운영한 세월호에서 우리의 노동현실을 보았습니다. 세월호는 고장 난 조타기를 고치지 않고, 배의 균형을 맞출 평형수를 채워 넣지 않고, 안전장비를 제대로 갖추지 않았습니다. 불안한 배에 타기를 거부한 선원들 대신 안전을 책임질 수 없는 미숙련 선원들을 싼 값을 주고 고용했습니다. 안 그래도 위험한 배에 초과 용량의 화물을 잔뜩 실었고, 관리 당국의 규제는 허위 신고와 뒷돈으로 해결했습니다.
7. 우리는 세월호에서 위장 도급을 주고 부당노동행위를 일삼는 갑과 을의 사장들을 보았습니다. 낡은 안전화와 중고 장비를 내어주며 밤낮도 휴일도 없이 일을 시키는 사장들이 거기 있었습니다. 법적으로 고용주가 내야할 4대 보험 부담을 우리 임금에서 떼어가는 사장들이 거기 있었습니다. 고객을 만나러 오가는 기름 값과 통신비를 우리 임금에서 제하는 악덕 사장들이 거기 있었습니다. 하루하루 우리 목숨을 끌어다 쓰면서도 환경과 설비에 투자하지 않고 우리의 목숨 값으로 자신의 이득을 취하는 다단계 하도급의 사슬이 거기에도 얽혀 있었습니다. 사고 후 단 한 명도 구조하지 못한 해양경찰과 해양수산부의 모습에 부당노동행위를 손 놓고 바라보는 노동청과 고용노동부의 모습이 겹쳐졌습니다.
8. 우리는 가만히 있으라는 말을 더 이상 듣지 않겠습니다. 이러다가 죽는 사람은 우리 노동자이고 피해보는 사람은 우리 소비자라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우리는 가입자들에게 안정적인 통신망, 질 좋은 방송을 전달하는 자랑스러운 케이블방송통신 노동자가 되고 싶습니다. 우리의 생명을 위협하는 자본의 책임을 분명히 해나갈 것입니다. 우리는 사람을 혹사시켜 자본을 아끼려는 작업지시를 단호히 거부하려 합니다. 더 이상은 우리와 우리 가족들의 삶을 부패한 자본과 무능한 정권의 손에 맡기지 않을 것입니다.
자본과 정권에 맞서 투쟁할 시기입니다.
9. 이 땅 노동자들이 일어나 사람보다 돈이 우선인 정권과 자본에 당당히 맞설 시기입니다. 우리는 세월호 희생자와 실종자 가족들의 아픔과 슬픔을 나누는 의미에서 촛불을 들고 거리로 나가려고 합니다. 내가 몸담고 있는 일터와 지역에서부터 시작해 애도와 저항을 점차 확산시킬 것입니다. 이 참사에 슬픔과 분노를 느끼는 모든 사람들과 함께 서명운동을 비롯한 다양한 대국민 캠페인, 그리고 전면적인 대중투쟁을 벌여나가겠습니다.
10. 무고한 희생들을 기억하며 우리는 세월호 참사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위해 힘을 쏟겠습니다. 엄정하고 철저한 진상규명이 될 수 있도록 국회 안에 갇히지 않은 범국민적 차원의 민간 주도 진상조사단 구성을 요구하고, 무능과 무책임으로 일관해 온 박근혜 정권의 책임을 반드시 묻겠습니다. 나아가 세월호 참사에서 확인된 비정규직 문제를 근본적으로 바로잡기 위해 투쟁하겠습니다. 케이블방송통신의 불법적 다단계 하도급을 비롯해 노동인권이 침해되고 있는 현실을 바로 잡기 위해 총력을 다하여 싸우겠습니다.
11. 투쟁하는 노동자는 지지 않습니다. 살아보려는 의지를 품고 있는 생명은 모두가 고귀합니다. 우리는 생명에 대한 존엄과 노동에 대한 존중으로 이길 때까지 투쟁하면서 우리 자신을 끝까지 구조해낼 것입니다.
2014년 5월 7일
케이블방송통신 공공성과 비정규직 노동인권 보장을 위한 공동대책위원회,
희망연대노조 산하 케이블방송통신 노동조합 5개지부(씨앤앰지부, 케이블방송비정규직지부, 케이블방송비정규직 티브로드지부, SK브로드밴드비정규직지부, LG유플러스비정규직지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