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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이유로도 차별하지 말라
6월 12일, 서울남부지법은 무기계약직이 사회적 신분에 해당하기 때문에 무기계약직과 정규직 간 차별은 근로기준법 6조 균등처우를 위반한 것이라는 의미 있는 판결을 했다. 이에 사용자인 MBC가 무기계약직에 대한 차별로 그동안 지급하지 않은 임금인 30억원을 무기계약직에게 지급할 것을 주문했다.
2004년부터 무기계약직으로 MBC에 고용된 노동자들이 10년이 넘는 긴 기간 동안 30억원이라는 어마어마한 금액의 임금 차별을 받고 있었던 것이다. MBC뿐만 아니라 기업과 공공기관의 대다수 무기계약직은 임금을 비롯한 인격적 차별, 상대적 박탈감 등을 받아왔을 것이다. 수치로 계산할 수 없는 것 까지 감안하면 피해는 훨씬 크다.
재판부는 무기계약직이 정규직과 동일한 취업규칙을 적용 받고 동일한 장소에 혼재돼 근무하고 업무에 큰 차이가 없기 때문에 회사에 기여한 것에서도 차이가 없는 것에 주목했다. 또한 자신의 의사나 능력과 관계없이 승진도 할 수 없어 무기계약직이라는 고용형태는 근로기준법 6조 균등처우 조항에 명시되어 있는 사회적 신분에 해당한다고 판시했다.
신분이란 자의로 벗어날 수 없는 서열과 같은 것으로 봉건사회에서나 있을 법한 개념이다. 그러나 비정규노동자들은 아무리 능력을 개발해도 승진할 수 없는 차별 속에 살고 있다. 무기계약직이라는 고용형태가 사회적 신분에 해당한다는 법원의 판결이 ‘중규직’이라 불리는 무기계약직에 대한 차별을 해소할 수 있는 돌파구인 건 분명하다. 그러나 신분이란 개념이 내포하고 있는 지배-피지배 관계, 세습성, 배타성 등을 생각하면 어쩐지 마음이 아프다.
무기계약직은 정부의 작품이다. 무리하게 상시·지속업무를 구조조정한 후 정규직제에 포함되지 않는 무기계약직을 만들어 놓고는 고용이 보장돼 있으니 정규직 일자리를 창출했다고 한다. 이제 무기계약직은 공공부문과 민간부문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일자리다. 정부가 만들어놓은 사회적 신분으로 한국사회는 헤어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번 판결을 통해 그동안 정규직으로 분류돼 차별시정 대상에 포함되지 않았던 무기계약직에 대한 부당한 차별을 없애는 발판이 되기를 기대한다. 이는 더 이상 무기계약직을 사용할만한 비용절감 유인이 사라진다는 의미기도 하다. 정부가 만들어 놓은 사회적 신분의 덫을 제거하고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것이 가장 자연스럽고 근본적 대안이 될 것이다.
2016.6.14.
한국비정규노동센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