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견노동자 실명사고, 재발방지는 뿌리산업 파견법 폐기부터
정부와 자본은 중소기업의 인력난을 해소하고 일자리를 창출한다는 논리 하에 파견법 개악을 밀어붙이고 있다. 그 골자는 인력난에 시달리는 금형, 주조, 용접 등 5대 뿌리산업에 파견을 합법화하겠다는 내용이다. 이른바 뿌리산업 파견법이다.
한편 지난 1월, 삼성전자에 부품을 납품하던 한 업체에서 20대 파견노동자 4명이 메틸알콜에 노출돼 실명되거나 또는 실명 위기에 처한 사건이 발생했다. 메틸알콜은 중추신경 장애와 실명을 유발할 수 있는 맹독성 물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파견노동자들은 배기장치도 없는 작업장에서 마스크도 지급받지 못한 채 일하다 사고가 난 것이다.
노동자 파견은 중간착취 배제를 명시한 근로기준법에 반하지만 구인과 구직의 용이함을 위해 파견법에 따라 일부 허용하고 있다. 물론 파견법은 제조업 파견을 엄격하게 금지하고 있고 현대자동차를 포함한 대표적 판례를 통해 그 원칙은 더 공고해졌다. 문제는 불법을 두고도 묵인하는 정부에 있다.
파견 노동자를 쉽게 해고하고 언제든 다른 파견 노동자로 대체할 수 있는 기업 입장에서 안전한 작업장을 조성할 만한 동기는 부족할 수밖에 없다. 그것이 불법이든 합법이든 오로지 비용 절감을 위해 파견은 만연해있고, 대부분의 끔찍한 산재 사고들은 파견 노동자를 중심으로 발생한다. 이번 실명 사고도 언젠가는 발생할 수밖에 없었던 사고인 것이다.
파견노동자의 산재사고 소식을 숱하게 접하지만, 늘 풀리지 않는 의문이 있다. 누구의 책임이냔 말이다. 불법파견을 방조한 정부? 불법파견을 사용한 원청? 수수료 뗀 임금을 지급하는 하청? 아니면 안전하지 않다는 걸 알면서도 일자리가 필요했던 파견 노동자?
뿌리산업 파견법이 국회를 통과하면 이와 같은 비참한 사건은 계속 발생할 것이다. 더 많은 파견노동자들이 양산되며, 자연스럽게 파견노동자들이 실명을 비롯한 산재에 노출될 것이다. 대신 중소자본과 이들의 원청인 대자본만이 파견노동자를 착취해 이득을 보게 될 것이다. 이게 정부와 자본이 창출하고자 하는 일자리이고, 파견법 개악의 속내다.
정부는 위선적인 논리로 포장한 뿌리산업 파견법을 폐기해야 한다. 지금 노동자들에게 필요한 것은 양질의 안전한 일자리이다. 눈을 잃고 목숨을 잃는 위험한 작업장과 열악한 일자리를 관리·감독해야 할 우선적 책임은 정부에 있다. 뿌리산업 파견법 폐기를 시작으로, 불법파견을 강력히 단속하고 더 이상 자본의 욕심에 희생되는 노동자가 없도록 정부가 본연의 역할을 다 해야 한다.
2016.2.17.
한국비정규노동센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