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용난민 시대, 일자리 없나요?]
'중간착취' 인력공급업체 급팽창
경향신문 특별취재팀 2010년 8월 13일
ㆍG밸리 등 공단 간접고용 늘어나… 기업, 노조 조직화 회피 속셈도
ㆍ정부는 되레 ‘중개업’ 규제완화
지난 5일 서울디지털국가산업단지. 지금은 G밸리로 불리지만 한때 구로공단으로 불리며 여성 근로자들의 꿈과 애환이 서린 곳이다. 신경숙씨의 자전적 소설 <외딴방>의 공간적 배경으로 등장하기도 했다. 신씨가 작가의 꿈을 키우며 일했던 구로2동 동남전기 자리에는 예전의 공장들이 사라지고 대신 세련된 아파트형 공장이 들어섰다. 둥지를 튼 기업만 1만여곳에 달하며 노동자 12만여명이 근무하고 있다.
하지만 화려함의 이면에는 중소·영세 사업체를 전전해야 하는 고용난민의 고통이 자리잡고 있다. 구자현 금속노조 서울남부지회 지회장에 따르면 현재 G밸리의 취업시장은 직업소개·인력공급·파견으로 뒤덮여 있다. G밸리의 한 전자회사에서 일하고 있는 김수지씨(38·여·가명)는 “직접 사람을 뽑는 회사가 거의 없으며 대부분 인력공급업체를 통해야만 일자리를 구할 수 있다”고 말했다. 단병호 전 민주노동당 의원이 2005년 여름 G밸리의 생산직 사원 채용 공고를 분석한 결과 파견직 구인 비율은 72.7%에 달했다.
이런 고용시장이 자리잡게 된 것은 사용자와 인력공급업체의 이해가 맞아떨어지기 때문이다. 중소·영세 제조업체들은 노조의 조직화를 피할 수 있고 생산물량 감소에 따른 해고가 쉬운 간접고용을 선호한다. 인력공급업체들은 고용이 불안정해질수록 중개 건수가 많아지고 이윤이 확보된다. 구 지회장은 “이 같은 취업행태는 G밸리뿐 아니라 안산, 시화, 수원, 인천, 구미 등 지역공단으로 남하하고 있다”고 말했다.
파견·인력공급에 대한 법과 현실이 따로 놀고 있는 것도 이 같은 고용시장이 자리잡을 수 있는 원인이 됐다.
근로기준법은 다른 사람의 취업에 개입해 이익을 얻지 못하도록 ‘중간착취 배제’ 규정을 두고 있다. 하지만 국가가 구인·구직 중개를 담당하는 데 한계가 있어 직업안정법과 파견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파견법) 등을 통해 민간 고용서비스 영역을 제한적으로 허용하고 있다.
문제는 파견·인력공급업체들이 이미 현실에서 직업안정법과 파견법을 위반하며 고용서비스를 하고 있다는 점이다.
현행 파견법상 제조업종 직접 생산공정에 대한 파견은 금지돼 있다. 일시적·간헐적으로 인력을 확보해야 할 필요가 있는 경우에는 3개월에 한해 파견이 허용되는 예외조항이 있다. 하지만 중소·영세 제조업체들은 상시적인 업무에 파견노동을 사용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손정순 연구위원은 “직업소개, 인력공급, 파견은 법·제도상 명확히 구분돼 있지만 직업소개업체가 직업안정법, 파견법을 우회해 인력공급업체·파견업체의 역할을 하는 등 이 세 가지 영역이 마구 뒤섞인 채 나타나고 있다”고 말했다.
이 과정에서 정부는 민간 고용서비스에 대한 추가 규제 완화를 추진하고 있다.
지난달 14일 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회는 ‘공공고용서비스 강화 및 민간 고용서비스 활성화를 위한 합의문’을 채택했다. 공공부문의 취업알선 분야를 민간위탁으로 일정 부분 전환시키고, 유료직업소개업과 파견업 등을 포괄하는 종합인재서비스업이 성장할 수 있도록 규제를 완화하는 것이 골자다. 윤애림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정책위원은 “지금도 법의 테두리 밖에서 이뤄지고 있는 탈법적인 일용파견 인력의 거래가 더욱 확대될 공산이 크다”며 “(규제 완화는) 파견허용 업무 확대 못지않게 불안정노동 확대에 미치는 파급력이 클 것”이라고 말했다.
종합인재서비스업 성장이 파견허용 업무 확대와 맞물릴 경우 공장 정규직 노동의 상당 부분을 파견노동이 대체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지난달 22일 대법원으로부터 사내하청 사용이 불법파견이라는 판정을 받은 현대자동차의 경우 제조업이 파견허용 업무에 포함된다면 단번에 부담을 털어낼 수 있다.
손 연구위원은 “재벌계 대기업들이 자체적으로 민간 종합고용서비스 기업을 자회사로 설립해 진출할 경우에는 (파견노동이) 정규직을 대체할 수 있다는 우려가 현실화될 가능성이 크다”며 “특히 복수노조 문제와 결부돼 노동조합 우회를 원하는 삼성, 포스코 등은 그럴 개연성이 높다”고 말했다.
▲특별취재팀 = 서의동(경제부) 차장·권재현(경제부)·전병역(산업부)·김지환(사회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