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용난민 시대, 일자리 없나요?]
(1부) 불안한 고용, 심화된 빈곤 ①일자리, 그 고단함의 끝
ㆍ괴물같은 기계는 잘도 돌고… 오전에만 3명이 그만뒀다
ㆍ식품공장 사내하청 물류업체 1일 취업기
경향신문 특별취재팀 2010년 8월 13일
한국비정규노동센터에 따르면 지난 3월말 현재 파견·용역·호출 등 간접고용 근로자는 153만여명이다. 여기에 도급 근로자 64만여명을 합치면 200만명을 넘는다. 시간제, 일반 임시직 등을 포함하면 순식간에 800만명 수준에 달한다. 전체 임금근로자 1661만명 중 정규직 833만명을 제외하고 비정규직 모두가 불안정 노동시장에 던져진 ‘고용난민’이라고 표현해도 좋을 정도다. 더구나 우리의 경제환경을 감안하면 정규직 또한 언제든지 고용난민으로 추락할 수 있는 상황이다. 이 때문에 고용난민은 남의 얘기가 아니라 나의 얘기다. 고용난민들은 어떤 경로로 일자리를 구하고, 노동조건은 어떨까. 그동안 나온 자료와 인터뷰를 통해 삶을 간접적으로 들여다봤지만 미흡했다. 직접 취업을 해보기로 했다. 머리가 아닌 몸으로 체득하기 위해서였다. 구직은 비교적 쉽게 이뤄졌다. 인터넷 취업사이트를 찾아들어가 전화를 하고 면접을 끝내고 일터까지 가는 데 채 하루가 걸리지 않았다. 인천 남동공단의 한 공장에 취업한 김지환 기자는 파견노동자로, 안양시 오뚜기식품 공장에 취업한 전병역 기자는 사내하청 노동자로 하루를 보냈다.
지난 3일 오전 8시 경기도 안양시 평촌 오뚜기식품 공장의 사내하청 물류업체. 행여 늦을세라 시간을 되풀이 확인하며 찾아간 길이었다. 이미 대학생 2명이 와 있었다. 이어 20대 남자 3명, 여자 2명이 도착했다. 임시 비정규직으로 함께 일할 근로자들이다. 물류창고 같은 공장에 들어섰다. “오늘은 추석용 선물포장을 합니다. 쉴 땐 담배도 피우고 물 마시고 전화도 할 수 있습니다. 다만 지게차 안전사고에는 유의해 주세요.”
주민등록등본을 제출하고, 근로계약서에 이름을 적었다. 작업복 상의에 흰 모자, 목장갑이 주어졌다. 준비 완료. 자리에 배치됐다. 컨베이어벨트 앞이다. 벨트 건너편 라인에 40~50대 여성들이 서 있다. 선물세트 상자에 햄과 참치 통조림, 식용유 등을 채워넣는 일이었다. 남자들은 여성들 앞 선반에 제품을 올려주는 일을 한다.
오전 8시30분. 기계가 돌아갔다. 여성들의 손이 쉼없이 움직였다. 자동화된 기계처럼 제품이 상자에 꽂혔다. 상표는 반드시 위쪽을 향했다. 여성들의 손놀림이 너무 빨라 선반은 금세 비었다. 48개들이 햄 통조림 박스 무게는 대략 20㎏. 박스를 선반에 올려 캔을 쏟아놓은 뒤 박스를 해체하는 작업을 10초 내에 끝내야 했다. 속도를 따라잡지 못하자 핀잔이 쏟아졌다. “빨리 좀 해. 어휴~.” 틈틈이 노동자들을 취재해보겠다던 계획은 빗나갔다. 5분도 채 지나지 않아 컨베이어벨트가 ‘괴물’처럼 느껴졌다.
1시간 남짓 ‘전투’가 끝나자 기계가 멈춰섰다. 선풍기는 있지만 무더위에 온 몸은 땀에 젖었다. ‘휴식시간’이지만 1회용 종이컵으로 물만 두어잔 마셨을 뿐이다. 5분쯤 지났을까. 다시 움직였다. 모두 달려들어 선물박스를 접었다. 기계가 멈춘 건 단지 빈 박스가 다 떨어져서다. 약 20~30분간 박스를 수백개 쌓아올리자 곧바로 ‘괴물’이 기지개를 켜고 우렁찬 소리를 냈다. 이렇게 두어차례 반복하자 점심시간이 됐다. 2년 전 들어왔다는 한 직원은 “여기는 그나마 야근이 없어서 일할 만하다”며 “옆의 물류서비스나 생산공장은 24시간 돌아가 주·야간 교대를 해야 한다”고 전했다.
오후 1시30분부터는 마요네즈와 케첩을 ‘1+1 세트’처럼 비닐봉지에 넣는 작업이 이어졌다. 오전 작업이 끝나자 대학생 3명이 중도포기하고 돌아갔다. 너무 힘들어서다. 일은 오전보다 1.5배 많아졌다. 팔은 긁혀 생채기가, 오른쪽 팔꿈치는 3㎝ 정도 베어 피가 났다. 그러나 기계가 쉬지 않는 한 누구도 대열을 이탈해선 안된다. 취재를 해야겠다는 생각은 어디론가 사라졌다. 단지 기계를 멈춰선 안된다는 목적의식에 매달린 노동자였다.
1시간여 작업이 끝나고 잠시 쉰 뒤 추석 선물세트 박스를 접어 다시 오전 작업을 반복했다. 손가락 끝은 벌겋게 부었다. 서 있기조차 어려울 만큼 통증이 목과 어깨를 짓눌렀다. 허리는 빠질 것 같았고, 발바닥은 화끈거렸다.
‘취업동기’인 대학생 김모씨(23)는 잔업 여부를 묻는 질문에 고개를 저었다. 잔업 시급은 1.5배 높지만 몸이 움직이질 않아서다. 기자도 마찬가지였다. 결국 신참 가운데 1명만 오후 9시까지 잔업했을 뿐 모두 손들었다.
8시간 일한 대가는 3만6000원. 최저임금인 시급 4110원보다 390원을 더 줬다. 한 고참은 “남의 돈 벌어먹기가 어디 쉽나. 한살이라도 젊을 때 더 좋은 데 알아보라”고 조언했다. 하루를 못 버티는 경우가 허다하고, 더러 왔다가는 1시간 만에 도망간 사람도 있다고 했다. 하루만 일해도 법률상 임금을 받을 수 있지만 다들 포기한다. 작업의 상당수는 이런 뜨내기들의 ‘노력봉사’로 돌아가는 듯했다.
얄팍한 체험 끝에 돈 대신 얻은 게 있다. ‘사람 편하라고 만든 자동기계가 사람을 잡더라’는 것과 ‘가끔 선물세트 제품이 뒤집혔거나 머리카락이 나와도 웃어 넘기자’는 인간적인 노동에 대한 바람이다. 하루하루가 절실한 시급 노동자에게는 이 또한 ‘배부른 소리’겠지만.
▲특별취재팀 = 서의동(경제부) 차장·권재현(경제부)·전병역(산업부)·김지환(사회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