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세진 (한국비정규노동센터 활동가) (2018. 01. 15.)
일본 드라마인 <민중의 적(民衆の敵)>은 이름과 달리 굉장히 유쾌한 정치 드라마다. 최저임금을 받고 일하던 여성노동자가 우연한 기회에 시의원과 시장이 되면서 일어나는 일들과 도전과정 등을 보여준다. 극중 주요 갈등은 시장을 중심으로 한 신진 정치가들과 기득권을 쥐고 있는 기존 정치가들 사이에서 발생한다. 그 갈등 사이에서 빠지지 않는 것이 있으니 바로 언론이다. 두 세력은 언론을 이용해 계략을 펼치기도 하고 입장표명을 하기도 한다. 시민들은 언론 보도를 보면서 시장을 칭송하기도 하고, 비난하기도 한다. 두 세력은 언론을 이용해 상대방을 제압하려 하지만 거꾸로 생각해보면 오히려 언론이 정치와 시민들을 움직이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기도 하다. 이는 드라마 속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현실의 문제이기도 하다. 문재인 정부는 ‘숙의 민주주의’를 내세우면서 국민이 직접적으로 정치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열었지만 그것은 시작에 불과하다. 여전히 절대다수의 사람들은 정치·사회 소식을 언론을 통해 접하며 사회 쟁점을 파악한다. 이명박·박근혜 정부가 그렇게 언론장악에 열을 올렸던 것도 시민 통제를 용이하게 하고자 했기 때문일 것이다.
2017년 7월, 정부세종청사에서는 문재인 정부의 경제와 노동정책의 기조가 되는 중요한 결정이 이루어졌다. 바로 최저임금이 16.4% 인상된 것이다. 최저임금 인상은 지난 5월 대선 당시부터 예측된 것이었다. 당시 문재인·유승민·심상정 후보가 2020년까지 최저임금 1만원, 홍준표·안철수 후보가 임기 내 최저임금 1만원을 공약했기 때문이다. 진보정당 후보뿐만 아니라 보수정당 후보까지 전부 최저임금 인상 및 최저임금 1만원을 주장했다는 점에서 최저임금 인상 정책은 어느 정도 합의가 되었다고 봐도 무방하다. 특히 ‘소득주도 성장’을 경제정책 기조로 내세운 문재인 대통령이 당선됨에 따라서 최저임금의 인상은 누구라도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다.
보수세력의 위기관리 방법
2018년 1월 1일, 새해 벽두부터 약속이나 한 듯이 쏟아지는 최저임금 인상 관련 기사들을 보면서 아찔해졌다. 최저임금이 인상된 당일, 보수언론을 중심으로 대폭 인상된 최저임금으로 인해서 중소상공인들이 고통을 받고 있고, 물가가 오르고 있으며, 고용은 매우 줄어들었다는 기사가 줄을 이었다. 정책이 시행된 당일 최저임금 인상의 부작용이 심각하다고 이야기하는 것은 마치 땅에 씨앗을 심었더니 바로 꽃이 피고 열매를 맺어야 한다는 이야기와 같다. 그리고 아예 정책이 시행되기도 전인 2017년 12월에 유력 보수 정치인이 말한 ‘최저임금 인상 정책은 사회주의 정책’을 비롯한 자극적인 언사가 다시 언론을 통해서 보도되기도 했다. 진실에 근거한 비판을 해야 할 언론이 오히려 국민들에게 최저임금에 대한 오해만 키운 셈이다.
새해 첫날부터 보수언론이 이렇게 최저임금에 대해 무리한 저주를 퍼붓고 있는 것은 보수세력이나 보수정권이 위기에 봉착했을 때 언제나 보여줬던 위기관리 방법이다. 박근혜 정권은 세월호 사건으로 정권이 위기에 봉착하자 각종 유언비어들을 동원해 세월호 사건의 본질을 흐리려고 했다. 2015년 백남기 농민이 물대포에 맞아 쓰러졌을 때도 폭력집회 프레임을 씌워서 본질을 흐렸다. 2016년 ‘최순실·박근혜 게이트’로 인해 국민들이 촛불을 들기 시작했을 때도 태극기집회를 부각시켜서 촛불을 덮고자 획책했다. 언제나 그렇듯이 최저임금 인상에 대해서도 부정적 프레임을 설정해 이미 균열이 가기 시작한 보수 기득권 세력의 이해관계 지키기에 충실한 모습을 보여줬다.
보수 야당은 최저임금 인상의 문제점만을 과장·강조해 대통령과 정부·여당의 높은 지지율을 무너뜨리려 한다. 그 이유는 다가올 6월 지방선거에서 여당의 압승을 무마시키고 문재인 정부의 개혁의지를 무력화하려는 시도라고 볼 수 있다. 보수세력과 보수언론은 언제나 그랬듯이 공생관계를 유지한다. 보수언론은 보수세력의 지지를 다시 모으고 자신의 기득권을 유지하려고 안간힘을 다하고 있다.
최저임금 당사자들이 빠진 논쟁
하지만 이러한 모습에는 한계가 있음이 분명하다.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의 1기 민주정부 시절에 이런 물타기식의 저항은 주효했을지 몰라도 촛불시민을 기반으로 출범한 문재인 정부는 그 성격이 사뭇 다르다. ‘기레기’란 표현은 그동안 보수 기득권세력과 결탁해 공공의 목적을 저버린 언론에 대한 불신을 단적으로 나타내고 있으며, 시민들은 다시는 언론의 의도적 프레임 씌우기에 속지 않겠다고 다짐하고 있다. 기존 방식대로 여론전을 펼친다고 한들 이미 각성한 시민들에게 얼마나 호소력을 발휘할 수 있을까?
최저임금 인상을 옹호하는 진보언론 역시 사정은 마찬가지다. 보수언론이 최저임금 인상에 대한 노골적인 저주를 퍼붓고 있는 동안 여러 가지 통계지표 등을 통해 최저임금 인상에 대한 올바른 정보를 알려주려 하고 있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하지만 최저임금 인상의 본질을 파악하고,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기보다는 보수언론이 이미 씌워놓은 프레임에 대한 반론에 머물고 있어 아쉬운 점이 있다. 최저임금 인상이 왜 필요하고, 실제 수혜자가 될 수도, 피해자가 될 수도 있는 독자들에게 최저임금 인상으로 인해 어떤 영향이 미칠지, 또 정부가 어떤 방식으로 보완해 나가며 적용할지 등에 대한 내용도 빈약하다.
최저임금은 노동자 임금의 최저수준을 규정함으로써 최소한의 인간다운 삶을 보장해주는 하나의 인권적 장치이다. 인간의 기본적인 삶을 보장하는 장치임에도 불구하고 최저임금을 옹호하는 진보언론에서조차 이러한 인권적 시각보다는 경제적인 시각에 머물고 있다. 이른바 최저임금을 받는 당사자들이 최저임금 논쟁에서 사라지는 모순적인 결과를 낳게 되는 것이다. 마치 ‘속이 없는 찐빵’처럼 최저임금의 본질을 벗어난 시각과 최저임금 당사자들이 없는 논의와 반론이 지속된다면 그저 지루한 논쟁이 될 것이 뻔하고 시민들의 피로감만 더해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