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정부의 근로감독권, 창의적으로 접근해보자.
조성주(한국비정규노동센터 정책연구위원)
잘 알려져 있다시피 한국은 노동법 위반에 있어서 세계 최고 수준을 기록하고 있는 국가이다. 대표적으로 임금체불이 그러하다. 매년 25만건 가까운 임금체불이 일어나고 체불액은 1조 7천억원에 달한다. 경제 규모가 우리보다 3배 큰 일본보다 임금체불이 10배가 더 많고 인구와 경제 규모가 더 큰 미국보다도 체불액이 많다. 임금체불만이 아니다. 고용노동부가 각 지청과 함께 수시로 진행하는 ‘기초고용질서’관련 감독 결과는 매번 70~80%를 기록한다. 근로계약서 작성·휴게시간 준수 등 말 그대로 ‘기초’에 해당하는 관련 법령에 대해서 매년, 매번 점검할 때마다 7~80%의 위반율이라는 것은 적어도 ‘기초’적인 노동법 준수에 대해서는 사실상 무법상태라 말해도 무방하다.
고질적인 임금체불을 비롯하여 기초고용질서 등 기본적인 노동법령 준수가 잘되지 않는 이유로 처벌 수준이 약한 것을 많이 지적한다. 일리가 있는 말이다. 임금체불의 경우 기소율도 매우 낮고 아주 상습적이고 악질적인 경우가 아니면 형사처벌이 되는 경우도 적다. 특히, ‘반의사불벌죄’로 되어 있는 부분도 늘 지적되는 문제다. 그러나 행정적인 측면으로 접근해볼 필요도 있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근로감독관 규모가 작고 적은 수의 근로감독관들이 기초고용질서만이 아니라 산업안전, 부당노동행위, 노사관계 조정 등 다양한 업무를 수행해야 하다 보니 실제 현장에서 일상적인 예방이나 수시감독이 수행되기 힘들다. 임금체불의 경우 건당 10여 회에 가까운 내방 및 조사가 필요하다고 하니 근로감독관들의 고충도 어느 정도는 이해가 간다. 이상하게 들릴 수 있지만, 앞서 언급한 것처럼 이 정도로 일상적으로 뿌리 내려 있는 기초고용질서 및 노동법 위반이라면 그것을 근절하기 위한 행정적 동원 규모와 상시적 대응력 역시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실제 형사처벌을 강화하는 것은 타 형벌의 양형기준 등과 비교하여 고려했을 때, 일정 정도 이상으로 강화하기 어려운 지점도 존재한다. 임금체불을 비롯한 노동법 위반이 일상에서 일어나지 않도록 하는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 더 효과적일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몇몇 지방정부를 중심으로 제기되고 있는 지방정부로도 근로감독권한을 가질 수 있도록 해달라는 주장은 한 번쯤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 서울시를 시작으로 광역지방정부들로 노동정책이 주요한 행정영역이 되고 각종 정책과 기구들을 통해 지방정부의 노동정책 및 행정이 최근 주목할 만한 성과를 내온 것은 사실이다. 특히, 중앙정부가 주목하지 못했던 특수고용직 노동자에 대한 지원사업 등을 비롯하여 각 기초행정단위에 노동센터 등을 설립하여 노동자들을 위한 법률 상담 및 권리 구제 사업 등도 분명한 성과를 보이고 있다. 고용노동부의 각 지청과 다르게 시민들의 생활영역과 훨씬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 지방행정의 특성상 시민 체감도도 만만치 않게 높은 것도 사실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서울시와 경기도에서 근로감독권한에 대한 요구가 나오고 있는 것이다.
물론, 근로감독권이 단순한 권한은 아니다. 특별사법경찰권에 해당하며, 기업에 대한 수사, 노동자들의 권리 보호 등 경제에 있어 매우 중요하고 섬세해야 하는 권한이다. 지방정부들이 최근 노동 행정에서 주요한 성과를 내고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이렇게 중요한 권한을 제대로 사용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의문점이 남는다. 특정 지역에서 사실상 경제 권력을 작동하고 있는 대기업의 경우 지방정부가 제대로 된 수사를 하기 힘들 것이라는 우려도 존재한다. 아직은 시기상조라는 의견이 더 많은 것이 현실이라 하겠다.
그러나 앞서 짚어본 임금체불과 기초고용질서와 관련한 영역이라면 지방정부의 근로감독권한은 충분히 고려해볼 수 있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실제 임금체불의 90% 가까이가 30인 미만 사업장에서 일어나고 있고 상당히 많은 건수가 상대적으로 소액임금체불에 해당한다. 점검 때 마다 위반율이 80%에 달하는 기초고용질서 역시 법리적으로 복잡하거나 노사간 또는 노동자, 사용주간의 예민한 문제에 해당하는 것은 아니다. 이러한 상황을 고려한다면 소액임금체불과 기초고용질서에 해당하는 영역의 부분적인 근로감독권한을 지방정부에도 갖게 하여 해당 지청과 지방정부가 협조체계를 구축할 수 있도록 한다면 상당한 효과를 발휘할 수 도 있다. 예를 들면 5백만원 미만의 소액임금체불의 경우는 지방정부가 각 동주민자치센터나 노동복지센터 등을 활용하여 기초 상담 및 진정 절차를 밟을 수 있도록 하고 사용주와 노동자간 임금체불을 조정하거나 조정이 되지 않는 경우 해당 관할 고용노동부 지청의 지휘하에 기소의견으로 이관하도록 하는 것도 가능하다. 위생, 안전 등에 있어 행정처분 및 관련 업무와 수단을 가지고 있는 지방정부의 역량을 활용하는 것도 고려해볼 수 있다. 기초고용질서에 해당하는 영역의 경우 지방정부가 위생점검, 교육 등을 시행할 때 해당 사업장 등에 충분히 고지하고 점검도 가능한 영역이라 할 수 있다. 특히 건설분야 산업안전에 있어도 발주처로서 공공발주된 건설현장에 대한 산업안전감독을 지방정부가 할 수 있다면 충분히 효과를 볼 수 있을 것이다. 이처럼 기초고용질서와 소액임금체불에 대해서 지방정부가 가지고 있는 행정역량을 충분히 활용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준다면 이는 고용노동부 각 지청의 근로감독관들의 엄부를 상당히 경감시키는 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 고용노동부 근로감독관들은 기업의 부당노동행위나 불법파견 등에 대한 기획감독과 대규모 임금체불 등의 굵직한 사건에 집중할 수 있게 될 것이다. 물론 지방정부마다 역량의 차이가 존재하기 때문에 당장에 모든 지방정부에서 시행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면 충분히 역량이 검증된 서울시나 경기도, 그리고 일부 단위에서부터 시범사업의 형식으로 시작해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한국도 지방자치를 시행하게 된지 30년이 되어간다. 그 사이 지방자치는 상당한 수준으로 성장했고 복지 등의 영역에 있어서는 실질적인 행정력으로 작동하고 있다. 최근 들어서는 영역이 더 넓어지고 있어 노동정책에 있어서도 의미있는 성과를 보여주고 있다. 과거의 방식만을 고집하고 있을 것이 아니라 이렇게 성장하고 있는 지방정부의 노동행정역량을 더 창의적으로 활용하여 노동자들의 권리를 보호하고 안정적인 경제질서를 수립할 수 있다면 이는 충분히 의미있는 시도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