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부문 비정규직 문제 - 이번에는 제대로 한번 해보자
남우근 /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정책위원
10년이 넘었는데도 여전히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는 공공 비정규 문제
“노예문서같은 비정규직 관리세칙을 파기하고 고용안정을 외치는 우리의 요구는 당연한 것이며 마땅히 쟁취해야 합니다.” 2003년 10월 26일 근로복지공단 비정규직으로 일하던 이용석 열사가 유서를 통해 남긴 말이다. 청년 노동자의 분신은 근로복지공단이라는 개별 사업장의 문제만이 아니라 공공부문 비정규직 전반의 문제를 사회적으로 제기한 사건이었다. 이후 노동조합의 치열한 문제제기와 정부의 대책이 이어졌다. 하지만 10년도 더 지난 지금 시점에서 볼 때 문제가 제대로 해결되었는가에 대해서는 매우 회의적이다.
정부는 매년 공공부문 비정규직 실태조사를 진행하고 있고, 기간제에 대한 무기계약 전환 실적을 발표하고 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서 상당수의 기간제가 무기계약직으로 전환되기도 했다. 하지만 무기계약직은 여전히 정규직과 비교할 때 현격한 노동조건의 차이를 보이고 있고, 계속된 무기계약직 전환에도 불구하고 기간제 규모는 그리 줄어들지 않고 있으며, 간접고용 문제는 거의 손도 못 대고 있다. 정부에게 모범사용자로서의 역할을 요구해온 당사자들에게 정부의 대책은 함량미달의 미봉책에 그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시대”가 또 다른 희망고문이 되지 않기 위한 조건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 후 첫 현장방문을 통해 상시지속적 업무의 정규직화 원칙을 얘기하며 임기 내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시대를 열겠다고 선언했다. 대통령의 말 속에서 이전 정부들과는 다른 문제 해결 의지를 읽을 수 있지만 실제 문제를 해결해가는 과정은 그리 간단치 않을 것으로 보인다. 만약 새로운 정부가 무기계약직을 정규직으로 간주해왔던 기존 정부들의 입장을 답습하는 수준의 안목을 가지고 있다면 문제는 전혀 개선될 수 없을 것이다. 공공부문이 비정규직을 양산하고 공공성을 훼손해온 문제의 발단 과정을 도외시한 채 어느 정도의 고용안정과 약간의 임금인상 정도로 문제를 해결하고자 한다면 새 정부도 기존 정부와 다를 것이 없다.
대통령의 한 마디에 연내에 1만 여명을 정규직화 하겠다고 선뜻 나서는 인천국제공항공사 사장의 모습을 보면서 문제 해결의 졸속화를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공공기관 정규직화의 유력한 방안으로 검토되고 있는 자회사 방식이 과연 정규직화의 본질을 담아낼 수 있을 것인지, 아니면 포장만 그럴듯한 면피용인지에 대해서도 진지하게 살펴봐야 한다. 고용안정과 적정 노동조건의 보장, 제도적 차원의 일자리 질 개선, 이를 통해 궁극적으로 공공성을 복원 ․ 강화하기 위해서는 우선적으로 당사자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이하에서는 무기계약직, 기간제, 간접고용 등 공공부문 비정규직 고용형태에 따른 쟁점과 해법을 살펴봄으로써 이후의 정부 대책이 문제의 실질에 접근하기를 기대해본다.
기관 | 정규직 | 무기 계약직 | 기관 소속 인력 | 기관 소속 외 인력 | |||||
소계 | 단시간 | 기간제 | 기타 | 소계 | 파견 | 용역 | |||
중앙행정기관(48개) | 269,512 | 20,582 | 13,295 | 723 | 12,544 | 28 | 7,593 | 10 | 7,583 |
자치단체(245개) | 297,698 | 52,939 | 40,424 | 5,124 | 35,031 | 269 | 10,586 | 71 | 10,515 |
공공기관(323개) | 293,897 | 24,676 | 40,134 | 9,832 | 29,459 | 843 | 73,053 | 8,842 | 64,211 |
지방공기업(143개) | 45,963 | 9,466 | 8,759 | 1,664 | 6,791 | 304 | 5,867 | 343 | 5,524 |
교육기관(76개) | 417,645 | 104,287 | 88,621 | 29,446 | 58,990 | 185 | 23,556 | 97 | 23,459 |
소계 | 1,324,715 | 211,950 | 191,233 | 46,789 | 142,815 | 1,629 | 120,655 | 9,363 | 111,292 |
* 자료: 공공부문 비정규직 고용개선시스템
처우개선 없는 무기계약직은 또 다른 차별의 구조화이다.
공공부문이든 민간부문이든 무기계약직 문제의 핵심은 정규직과의 차별이다. 정규직과 달리 임금, 직제 등에 있어서 아무런 체계가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단지 고용만 안정되었을 뿐 임금체계가 제대로 마련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근속 및 숙련에 대한 보상이 거의 없다. 기간제와 임금수준이 비슷한 경우도 많다. 2014년 공공기관과 지방공기업 무기계약직에 대한 노동연구원의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승진체계가 있는 경우가 15.4%, 직급체계가 있는 경우가 35.8%에 불과했다. 말 그대로 무기계약직은 정규직제에 포함되지 않는 채 어정쩡한 고용지위에 있다. 상시지속적 업무를 수행하고 있지만 고용지위는 임의적인 형태이거나 정규직과 분리된 직제로 관리되고 있다. 이러한 상태를 정규직이라고 할 수는 없다.
무기계약직 중 정규직과 동종유사업무를 수행하는 노동자는 정규직제에 포함시켜야 한다. 정규직과 명확히 구분되는 업무를 수행하는 경우는 정규직제를 확대개편해서 포괄해야 한다. 인사 ․ 관리규정을 별도로 적용할 것이 아니라 정규직과 동일한 체계 안에서 관리되어야 한다. 기관 운영자 입장에서는 임금체계가 가장 고민일 것이다. 기존 정규직들이 대체로 연공급 중심의 임금체계라서 상대적으로 단순업무를 수행하는 무기계약직에 대해 연공급 적용시 인건비 부담이 커질 것이라는 인식이 무기계약직을 그 동안 방치해온 이유이다. 무기계약직의 임금체계와 관련해서는 동종유사업무 정규직과의 차별 철폐, 하후상박을 통한 격차 해소라는 원칙하에 지혜를 짜내야 한다. 이 과정에서 노동조합과의 소통이 매우 중요하다.
줄어들지 않는 기간제 문제
기존 세 개의 정부에서 추진해온 공공부문 비정규직 대책의 중심은 기간제의 일부를 무기계약직으로 전환하는 것이었다. 남용되고 있는 기간제를 없애는 것이 비정규직 해법의 중심이라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것이다. 기간제법 역시 공공부문과 민간부문을 막론하고 상시지속적 업무에 기간제가 남용되고 있는 것을 방지하는 것이 입법취지였다. 하지만 입법취지나 정부 대책에도 불구하고 기간제가 여전히 줄어들지 않고 있다는 것이 문제이다. 정부는 2013년~2015년 사이에 기간제 74,023명을 무기계약직으로 전환했다. 하지만 동일한 기간에 기간제는 48,231명이 감소했다. 결과적으로 3년 사이에 25,792명의 기간제가 신규로 채용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자치단체의 경우는 비정규직 51,099명 중 2013년~2015년 사이에 7,501명을 무기계약직으로 전환했다. 그런데 2012년과 2015년 사이의 비정규직 규모는 1,569명만 줄었다. 결국 기간제 5,953명이 신규로 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기간제 중 무기계약직 전환 대상에서 제외되는 규모가 매우 크다는 점도 지적되어야 한다. 비정규직 252,578명 중 186,682명이 전환제외자이며 73.9%에 달한다. 매우 높은 비율이다. 정부 1년 예산 400조원 중 15%에 달하는 60조원이 국고보조사업인데, 국고보조사업에 종사하는 노동자의 경우 대부분 기간제로 계속 일하거나 교체사용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기간제법 상의 기간제한 예외 조항인 “정부의 복지정책·실업대책 등에 따라 일자리를 제공하는 경우”를 확대적용한 결과이다. 이런 식이어서는 기간제를 제대로 줄일 수 없다.
기간제 문제는 상식적으로 접근해야 한다. 일시간헐적 업무에 기간제를 활용하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상시지속적 업무에는 당연히 기간의 정함이 없는 상용직으로 고용해야 하는 것이 또한 상식이다. 기간제법상의 2년이라는 기간에 구애받지 말고 공공부문이 더욱 적극적으로 업무의 상시지속성을 판단하고 상용직 전환을 해야 한다. “상시지속적 업무에 정규직 채용”을 제도화해야 한다. 국고보조사업 등에 대한 실태조사를 통해 어렵지 않게 문제를 파악할 수 있다.
간접고용의 핵심은 노무도급 중심의 외주업무를 직영화하는 것이다.
2011년 정부 조사에 의하면, 공공부문이 민간위탁을 하는 이유는 ‘비용 절감 및 경영효윯화’(32%), ‘정원 확보 곤란’(32%), ‘전문 인력 및 시설 활용’(24%), ‘인사노무관리 용이함’(8%), ‘일시적 업무 증가’(3%) 등이다. 상식적인 외주화 이유는 ‘전문 인력 및 시설 활용’과 ‘일시적 업무 증가’ 등 27%에 불과하다. 나머지는 저임금에 기초한 비용절감 논리와 총정원제 등 공공기관에 정원 확보가 곤란한 제도적 한계 때문이다. 이는 상식적이지도 바람직하지도 않은 외주화 이유이다. 결과적으로 공공부문이 공공성에 기반한 ‘모범 사용자’로서 역할을 하기 위해서는 외주업무의 2/3 정도를 직영화해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기존 정부들은 공공부문 간접고용 문제에 대해 직영화라는 대책은 외면해왔다. 고용조건을 일부 개선시키기 위한 수준에서 접근해온 매우 미온적 대처에 그친 것이다.
간접고용 해법의 핵심은 직영화이다. 그 동안 비용 논리에 따라서 외주화한 업무를 이제는 공공성을 이유로 직영화하는 것만이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는 것이다. 민간의 전문인력이나 설비를 활용하는 것이 아닌 비용논리에 따라 인력만을 공급받는 노무도급 중심의 외주화는 전부 직영화해야 한다. 근래 간접고용 해법의 하나로 고려되고 있는 자회사(자치단체의 경우 공단, 재단 등 포함) 형태 역시 원청기관의 사용자책임을 회피하기 위한 수단이라면 역시나 불필요한 2단계 고용의 민간위탁과 다름이 없을 것이다. 정원 및 인건비 제약, 직무의 명확한 구분 등 자회사로 운영할 수밖에 없다면 그 이유에 대해 모두가 수긍할 만한 명확한 설명이 되어야 한다. 불가피하게 자회사 형태로 운영하더라도 고용안정, 적정임금 보장, 정규직과의 차별 철폐, 노동3권 보장 등은 당연히 준수되어야 한다. 불필요한 논란을 줄이고 문제해결의 실질에 다가가기 위해서 무엇보다도 간접고용 당사자 및 노동조합과의 충분한 협의를 거쳐야 한다.
정부가 먼저 나서야 한다.
공공부문 비정규직이 확산된 과정을 보면 중앙정부의 지침과 제도가 적극적인 역할을 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공공기관의 총인건비제 및 총정원제, 자치단체의 기준인건비제, 민간위탁을 독려하는 정부 지침 및 경영평가 기준 등이 왜곡된 인력활용을 강제해왔다. 문재인 정부가 각 기관들에게 해결방안을 찾도록 책임을 미룰 것이 아니라 제도적 제약부터 걷어내야 한다. 기간제법, 파견법 등 법률 개정은 정부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국회의 협조를 얻어야겠지만 정부 차원에서 할 수 있는 시행령 및 시행규칙 개정, 관리 지침의 변경, 예산 책정 등은 정부 의지에 따라 빠르게 시행할 수 있는 것들이다. 또한 정부가 문제해결의 진정성을 보여줄 수 있는 우선적 조치들이다. 새롭게 만들어진 국면이 또 다시 개별 사업장 노사 간의 지루한 공방으로 이어지지 않기 위해서는 정부가 먼저 움직여야 한다. 공공부문 비정규직 해법은 여기서부터 시작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