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문 노동, ‘진상 고객’과 ‘노인 문제’를 넘어
김직수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정책연구위원)
한국에서는 최근 고객의 가정 등을 방문하여 일을 수행하는 ‘방문노동자’의 노동조건과 안전보건에 대한 문제 제기가 이루어지고 있는데, 이는 매우 고무적이라 생각한다. 노동자가 자신이 일하는 공간에 대한 통제력을 지니지 못할 때 발생하는 위험들을 구조적으로 파악해 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주기 때문이다. 그 배경에는 10여 년 전부터 갑질, 감정노동 등이 사회문제가 되어 왔다는 점이 있다. 반면, 고객이 ‘왕’을 넘어 ‘신’이라 하는 이웃 나라 일본에서는 방문 노동에 대한 문제의식은 찾아보기 쉽지 않다.
‘카스하라’와 ‘케아하라’의 이면
한편에서는 방문노동자를 포함한 대면 서비스노동자가 겪는 폭력 문제를 일부 ‘진상 고객’에 의한 것을 돌리는 ‘카스하라(customer, 즉 고객에 의한 harassment)’ 담론이 존재한다면, 다른 한편에서는 방문 노동의 문제를 전후 베이비붐 세대가 노인층이 되면서 고령화 절정을 맞으며 방문 노동의 대명사가 된 방문 간호 또는 방문 요양보호 분야의 특수한 문제로 취급되는 ‘케아하라(care, 즉 돌봄서비스 고객에 의한 harassment)’ 담론이 존재한다. 일본 집권 내각 정치인들이 노인을 골칫거리로 취급하는 발언을 종종 서슴없이 내뱉는 것이 이해가 갈 만도 하다. 어디에도 기업의 책임과 노동자의 권리는 없다.
그렇지만 단순히 일본 사례를 반면교사로 삼는 것을 넘어, 일본에서의 사회적 논의를 통해서도 배울 점이 있다. 방문 노동의 문제를 고민하는데, 고객에게는 어떤 문제가 있는지, 그리고 고령화 심화에 따라 돌봄서비스 부문에서는 어떤 위험이 나타날 수 있는지 등에 대해 생각할 기회를 제공해 주기 때문이다.
‘진상 고객’의 출현, 그리고 저성장시대의 일상 풍경
먼저, 최근 일본에서 왜 ‘진상 고객’이 문제시되고 있는지 살펴보자. 여기서 진상을 부린다는 것은 단순 폭언을 넘어 위협, 협박, 물리적 폭력행사까지 포함한다. 진상이 정말 늘어나고 빈번해진 것일까? 그렇다면 왜? 이런 의문에 대해 한편으로 고객의 구성이 변화했기 때문이라는 주장이 있다. 베이비붐 세대인 ‘단카이 세대’의 주류이자 가부장적이고 권위주의적인 사고방식과 생활방식이 몸에 밴 남성 노동자들이 대거 은퇴하면서 주류 소비자층으로 편입됐다는 것이다. 나아가 이들이 그저 ‘꼰대’나 ‘개저씨’이기 때문이 아니라, 은퇴는 했지만, 신체도 건강한 상황에서 사회에 무언가 기여하고자 하는 심리가 적극적인 문제 제기로 이어졌기 때문이라는 사회심리학적 분석도 있다.
반면, 진상 행위가 실제 증가했다는 명확한 증거는 없다는 주장도 있다. 고객 불만 사례를 기업들은 조용히 처리해 오곤 했지만, 소셜 미디어 시대에 이런 사례를 감추는 것이 불가능해졌기에 그런 사례를 자주 접하게 됐을 뿐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많은 서비스노동자가 고객으로부터의 폭력에 노출되어 있다는 점은 사실인 듯하다. 일본의 한 산업 노동조합의 조사에 따르면 70% 이상의 서비스노동자가 고객으로부터의 폭언 및 폭력을 경험한 바 있다고 한다.
그런데 진상 고객 문제가 최근 주목을 받는 배경에는 기업 측이나 노동자에게 책임을 묻기 어려운 불만 제기가 적지 않다는 점이 있다. 이에 대해 혹자는 일본 특유의 과잉 서비스가 과잉 기대를 일상화했기 때문이라 분석한다. 공교롭게도 일본에서는 버블 붕괴와 장기침체, 제조업 쇠퇴와 서비스업 증대, 비정규고용 증대와 임금수준 정체가 동시에 진행되었다. 고객의 높아진 눈높이에 비해 서비스 부문 고용의 질은 너무도 낮다. 낮은 고용의 질은 만성적인 노동력 부족으로 이어지고 바로 이 점이 고객 불만의 직접적인 원인이 되는 일이 많다.
일본의 ‘고객의 신’이라는 풍조는 고도성장기에나 맞는 것이었다. 직장에서 ‘경제 동물’로 일하더라도 보상으로 받은 현금다발을 들고 거리로 나가면 대우받을 수 있었다. 소비자가 되는 순간 서비스노동자도 나와 같은 노동자라는 생각을 굳이 할 필요가 없었다. 그 시대엔 그게 당연했다. 하지만 장기침체가 이어지고 소득수준도 정체되면서 소비자로서 보상받고 싶은 욕구는 강해진 동시에, 노동조합과 노동운동의 약화 등으로 노동자의 사회적 지위는 더 낮아졌다. 서비스노동자를 향해 불만을 터뜨리는 진상 행위는 저성장시대 일본의 일상적 풍경이 되었다.
‘진상’ 대책과 노동자 보호 사이
현실이 이렇다 보니 그간 일본의 노동 현장에서 주요 의제가 되어온 직장 내 괴롭힘과 별도로 고객으로부터 서비스노동자를 보호해야 한다는 논의가 제기되기 시작했다. 2018년 후생노동성은 ‘카스하라’ 대책 검토를 시작했는데, 법제화를 보류한 채 기업 측에 대책 마련을 촉구하는 행정 지침을 수립하는데 그쳤다. 여기에는 이른바 진상 고객 대책 추진 법안에 대해 소비자의 정당한 권리를 제한할 우려가 있다며 반대한 소비자단체 주장도 영향을 미쳤다. 반면, 지난해 국제노동기구가 채택한 직장 내 폭력과 괴롭힘에 대한 협약은 큰 반향을 일으켰다. 해당 협약은 각국이 사용자와 노동자 외 ‘제 3자’에 의한 폭력 및 괴롭힘에 있지만, 관련 권고에서는 ‘고객’과 ‘거래처’를 예시하고 있다. 물론 경단련(사용자단체)은 반대하고 있지만, 렌고(노총)는 조약 비준을 추진하고 있다.
고령화와 위험에 처한 돌봄 노동
다음으로 ‘진상 고객’과 더불어 일본에서 방문 노동의 문제가 제기되는 다른 방식을 살펴보자. 2018년에는 방문 간호 및 방문 요양보호 노동자에 대한 고객, 즉 의료 및 요양보호 서비스 이용자에 의한 폭력, 특히 성폭력에 대한 문제 제기가 대대적으로 이루어졌다. 여기에는 미투 운동이 큰 역할을 했지만, 정확히 같은 시기 주목을 받은 ‘카스하라’ 문제도 영향을 미쳤다. 하지만 그 배경에는 지역 단위 포괄적 돌봄이라는 일본 정부의 노인 돌봄 정책이 있다. 일본은 일찌감치 고령화 사회에 진입하면서 시설 중심 돌봄에서 재택 서비스로 방향을 전환했다. 이용자에 의한 폭력이 점점 중요한 문제로 부상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2017년 도쿄민의련이 도내 69개 방문 간호 사업소의 간호사, 치료사 등을 대상으로 조사를 진행한 결과, 환자로부터 폭력을 경험한 비율은 68.4%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유형별로는 신체적 폭력 34.9%, 성희롱 50.0%, 정신적 폭력 45.0%로 나타났고 응답자 가운데 절반에 가까운 43%가 폭력을 당하더라도 업무를 계속한다고 응답했다. 폭력 경험으로 인해 이직을 생각한다는 응답은 28%에 이르렀고 폭력에 대해 사업소 측의 대응이 없다는 응답도 50%에 이르렀다. 대응이 없다는 것은 사건의 내용을 보고서 등으로 기록하지 않고 사건 대응 매뉴얼이 없으며, 대책 및 대응을 위한 기구가 설치되어 있지 않음을 의미한다.
환자 또는 서비스 이용자의 약자라는 위치로 인해 폭력이 발생해도 문제 제기를 포기하는 일이 많다는 점은 방문 간호와 방문 요양보호 모두 비슷하다. 그러나 방문 간호에는 방문 요양과는 다른 위험요인들이 존재하는데, 치료를 중단할 경우 이용자를 위협에 빠뜨릴 수 있기에 폭력을 겪더라도 회피나 이탈이 쉽지 않을 수 있다는 점, 의료상 이유로 야간이나 새벽 등 취약한 시간대에 방문하는 일도 있다는 점 등이 있다. 이처럼 방문 간호 노동자의 폭력 노출 위험이 사회적으로 이슈화되면서 2018년 행정 지침 개정을 통해 방문 간호시 폭력 노출 위험이 있는 경우 두 명 이상이 방문할 수 있도록 했다. 그러나 이용자 동의와 비용부담을 필요로 하는 점에서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많았다.
돌봄정책의 실패와 돌봄 격차
방문 간호보다 더 대중적으로 알려진 사례는 방문 요양보호 사례다. 방문요양보호사는 ‘이용자에게 뒷모습을 보이지 말고 문을 항상 열어 두라’라는 주의사항을 종종 접한다고 한다. 요양보호 서비스 이용자가 뒤에서 덮치는 상황을 항상 조심하고 문제 발생 시 즉시 도망갈 수 있는 통로를 확보해 두라는 말이다. 요양보호 현장은 언제부터, 또 왜 이처럼 위험한 일터가 되었을까?
일본에서도 요양보호사가 되기 위해서는 국가 자격을 취득하거나 양성 교육을 수료해야 한다. 후생노동성의 200년 고시 내용에 따르면, 방문 요양보호 업무는 내용에 따라 크게 신체 요양과 생활 지원 두 종류로 구분된다. 신체 요양은 식사, 세신, 입욕, 자세변환, 이동 및 이승(휠체어 등) 지원, 외출 지원, 기상 및 취침 돌봄, 복약 돌봄 등이 포함되는 반면, 생활 지원은 청소, 세탁, 침구 정리, 의류 정리 및 보수, 일상적인 요리, 장보기, 의약품 수령 등이 포함된다. 이 가운데 생활 지원 업무는 언뜻 보면 가사도우미 업무와 유사하지만, 요양보호 서비스 이용자를 끊임없이 관찰해 상태를 파악하고 안전을 확보하거나 상태에 맞추어 적절한 돌봄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전문성을 요구한다.
하지만 요양보호 보수 수준은 정체되거나 낮아지면서 저임금이 일반화되고, 요양보호사 대다수가 비정규직이다 보니 이직률이 매우 높다. 그런데 앞서 언급한 ‘지역 단위 포괄적 돌봄’ 정책은 부족한 인력을 지역사회 내 자원봉사를 통해 확보하고자 한다. 하지만 지역사회 고령화가 심각하다 보니 이마저도 쉽지 않아 보인다. 급기야 최근 들어서는 외국인 기능 실습생 제도를 이용하여 돌봄 노동자를 충원하는 정책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정책으로 경증 고령자에 대한 생활 지원이 취약해지면서 결국 중증화 예방 효과를 떨어뜨려 전체적인 인력 부족이 심화 되고 서비스 질이 낮아지는 악순환에 접어들고 있다.
게다가 후생노동성은 2018년 생활 지원 서비스 이용 횟수 제한을 도입했다. 생활 지원 유형에 따라 월 30~40회로 이용 횟수를 제한한 것인데, 월 10회 내외의 전체 평균 이용 횟수를 훨씬 웃도는 사례가 많다는 이유에서였다. 하지만 이런 사례는 대부분 치매 환자거나 독거노인인 경우이기에 생활 지원 횟수 제한은 이용자 삶의 질을 심각하게 저하시킨다. 이용 한도를 넘어서는 서비스를 이용하게 되면 자기 부담금이 커지므로 일상생활이 곤란할수록 더 큰 추가금액을 부담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한다. 더욱이 최근 지자체에 따라서는 요양보험 대상에서 제외되어 전액 자기 부담이 되는 보험 외 서비스를 추가한 복합 요양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어 ‘돌봄 격차’가 확대되고 있다. 이러한 사례들에서 보험 외 서비스로는 반려동물 관리, 전구 교체, 동거가족을 위한 요리 및 세탁, 외출 동행 등이 포함된다.
‘진상 고객’과 ‘노인 문제’를 넘어
상황이 이렇다 보니 일본에서는 한국의 장기요양 보험제도, 보다 구체적으로는 동거가족 요양제도에 주목하기도 한다. 한국에서는 요양보호 인력 확보가 어려워 도입한 정책이지만, 일본에서는 ‘그림자 노동’으로만 여겨졌던 돌봄 노동을 양지로 끌어냈다는 점에서도 주목하고 있는 듯하다. 일본에서 방문 간호나 방문 요양보호 같은 돌봄 노동 외 대면 서비스노동 일반에 대해서도 한국사례는 주목받고 있다. 2016년 제정된 서울시 감정노동 종사자 보호 조례, 2018년 개정 산업안전보건법에 감정노동자 보호 조항이 포함된 것이 대표적이다.
한국에서와 마찬가지로 일본에서 고객 가정 등을 방문하여 일하는 노동자의 문제는 고객과 노동자 간 대립으로 나타난다. 그리고 현장에서 터져 나오는 문제를 ‘일부 진상 고객’에 의한 것으로 치부하거나, 제 앞가림 못 하는 노인에 의한 문제이므로 어쩔 수 없다는 식의 대응이 횡행한다. 그러나 방문 노동의 문제는 ‘진상 고객’과 ‘노인 문제’를 넘어 방문노동자가 일하는 공간에 부재한 것, 바로 기업(또는 정부)의 책임과 노동자의 권리를 중심으로 제기되어야 한다. 기업의 책임이 명확해질 때, 소비자의 권리도 향상될 수 있으며, 노동자의 권리가 존중될 때 소비자도 진정으로 존중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돌봄 분야 노동자는 물론 각종 A/S노동자, 검침노동자 등 방문노동자는 코로나19 바이러스로 인해 맞이한 ‘언택트’ 시대에도 업무 특성상 고객 방문을 계속해야 한다. 이들의 ‘방문 노동’이 제대로 주목받고 본격적인 권리보장 및 보호 방안이 논의되기를 희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