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기 위해 알아야 할 것들
김직수(센터 정책위원)
한국사회에서 비정규직 문제가 ‘사회문제’로서 떠오른 지 20여년 가까이 되었지만, ‘비정규노동’이 의미하는 바가 언제나 동일한 것은 아니었다. 비정규노동의 의미와 내용, 그리고 초점은 끊임없이 변화하고 다양화되고 확장되어 왔으며, 바로 이 점이 오늘날에도 비정규노동 문제가 여전히 유효하고 또 중요한 까닭이다. 비정규노동의 개념을 둘러싼 사회운동 및 학계 내의 논의들을 통해 그것은 표준적인 정규고용의 잔여범주이자 기간제, 시간제, 간접고용, 특수고용의 하위범주들을 포함하는 것으로 정의되었고, 그러한 규정은 지금도 유효하다.
그런데 비정규노동운동이 본격적으로 등장한 초기에는 그 초점이 주로 보다 ‘임금노동’으로서의 공식성을 비교적 강하게 띠는 사례들에 집중되었다. 이후 미약하나마 이들 사례를 중심으로 조직화가 진전되고, 공식적이든 비공식적이든 제도적 문제해결이 시도되면서 한편으로는 성과도 있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비정규노동 문제의 복잡성이 드러났다. 비정규노동은커녕 임금노동으로서조차 제대로 인정받지 못했던 ‘비공식 노동’의 문제가 심각하였던 것이다. 비정규직 비율이 확대 내지 정체 일로에 놓이고, 임금격차는 더욱 확대되면서 비정규직 일자리를 둘러싸고 더 이상 “가교인가 함정인가”의 문제를 논하는 것이 무의미하게 되었고, 이와 더불어 아르바이트, 돌봄노동, 이주노동 등 비공식성을 강하게 띠는 다종다양한 부문에서 노동자들이 목소리를 높여 왔다.
대표적으로 아르바이트 노동의 경우 아르바이트 노동조합, 청년유니온, 청소년노동인권네트워크 등의 조직 및 단체들이 결성되어 활동하면서 아르바이트가 ‘알바’가 아닌 ‘노동’으로 인정받게 되었고, 이러한 활동들에 힘입어 비정규노동을 둘러싼 문제제기는 더욱 확장되며 생명력을 지닐 수 있게 되었다. 지난 해 말 시간강사법 시행이 2년 유예되면서(유예되었음에도 ‘해고 물결’은 이미 시작되었다고 한다.) 다시금 주목받게 된 대학 시간강사들의 노동 또한 마찬가지로 오랜 기간 회색지대에 놓이며 비정규노동 문제로서 제대로 주목받지 못했던 사례이다. 선거철이 다가오는 요즈음, 매번 선거 때마다 각 정당 및 후보들이 하나같이 교육문제가 중요하다 하며 ‘교육개혁’ 을 외쳐대던 모습이 떠오른다. 그리고 교육문제의 중심에는 항상 대학이 있었다. 그럼에도 오늘날 한국사회에서는 누구나 ‘대학의 위기’를 말한다. 왜일까?
대학의 위기는 흔히 ‘지성의 위기’로 받아들여지며, 이러한 지성의 장에 수익성이나 효율성과 같은 잣대를 들이대는 사학재단 및 기업들의 구조조정 시도와 이에 맞선 저항이 위기의 발현으로 그려지곤 한다. 그러나 이는 ‘지식생산의 위기’라는 오랜 위기가 비등점을 넘겨 터져나온 것에 불과하다. 고등교육기관인 대학에서 지식생산의 위기는 흔히 대학의 3주체로 일컬어지는 학생, 교직원, 교수 중 어디에도 끼지 못하는 주변적 존재들로부터 확인되며, 시간강사 역시 그 중 하나이다. 인터넷 연재를 바탕으로 김민섭이 ‘309동 1201호’라는 필명으로 출간한 <나는 지방대 시간강사다>라는 책은 대학이라는 일터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다. 역시나 김민섭은 저서 출간 후 일터를 떠났다. 떠났다기보다는 대학사회로부터 밀려났다고 표현하고 싶다. 그렇다면 ‘교수’로 대표되는 대학사회의 지식인들은 그동안 어디서 무엇을 했나?
지식인들에는 다양한 유형이 있지만, 몇 가지 꼽아보자면 다음과 같다. 첫째, 말뿐이거나 그조차도 일관성이 없는 지식인 또는 ‘폴리페서’ 유형, 둘째, 진보적이든 보수적이든 적어도 말과 글과 삶이 일치하는 지식인, 셋째, 언행이 일치하며 사회참여에 적극적이지만 자신의 현장에 무관심하거나 무력한 지식인, 넷째, 사회참여에 적극적이면서 자신의 현장 또한 변화시키려 시도하고 노력하는 지식인. 안타깝게도 네 번째 유형의 지식인은 거의 찾아보기 어려운 듯하다.
물론 지식인들 개개인에게 책임을 돌릴 수 없겠지만, 앞선 세대들이 지식생산의 현장을 변화시키지 못한 것은 분명해 보인다. 앞선 세대의 진보적 지식인들은 커다란 업적을 남겼다. 그들은 지식의 대상으로서의 ‘현실’을 외면하지 않았다. 그들은 문학계의 순수 대 참여 논쟁부터 사회과학계의 사회구성체 논쟁 등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논쟁들을 통해 집합적으로 의미 있는 지식을 생산해 왔다. 그러나 정작 이전 세대들이 자리를 잡은 제도적 공간에서 지식이 생산되는 현장은 지식의 대상이 되지 못하였다. 대학사회는 자율성 혹은 자유라는 이름 아래 신비화되거나 전근대적 질서를 고수해 왔다.
이처럼 지식생산 현장의 변화가 요원해보이는 가운데, 교육현장으로서의 대학 또한 학생이라는 이름의 아르바이트 노동자들로 가득 채워지고 있다. 이 또한 지식인들이 변화시켜야 할 ‘자신의 현장’이다. 이웃나라 일본의 경우에도 지식생산 현장은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그러나 교육현장에서는 작지만 주목할만한 변화들이 엿보인다. 일본 내에서 최근 들어 ‘블랙기업’, ‘블랙아르바이트’와 같은 문제가 중요하게 떠오르는 가운데, 대학사회의 지식인들을 중심으로 자신의 제자들이 예비 노동자, 그리고 노동자로서 겪는 문제들을 외면하지 말자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이들은 전국 수준에서 법률단체, 노동단체 등과 공동으로 대학생 대상 아르바이트 실태조사를 실시한 바 있고, 일부 대학에서는 노동법과 노동조합 등 노동기본권 관련 수업을 정규 과목으로 개설하기도 한다. 나아가 지역 내 노동조합 및 노동단체들과 연계를 통해 학생들에게 아르바이트 상담을 제공하기도 하고, 지역 차원의 실태조사를 비롯한 공동활동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주기도 한다.
물론 한국사회에서도 교육현장에서의 노동인권교육이 다양하게 시도되고 있다. 대표적으로 서울노동권익센터는 지난해 서울시 교육청과의 업무협약 하에 시내 중고교 123학급 대상 187회의 노동인권교육을 실시한 바 있다. 일본에서 중고교와 같은 중등교육기관에서는 이러한 학교 노동인권교육 시도가 어려운 상황인 반면, 고등교육기관인 대학 내에서 교수들의 주도로 성찰적 시도가 이루어지고 있다는 사실은 한일간에 여전히 서로 배워야 할 점이 많음을 보여준다.
비정규노동을 이야기하면서 ‘공장’이나 ‘매장’이 아닌 ‘대학’으로 한번쯤 눈을 돌려주기를 이렇게 요청하는 까닭은, 갈수록 전문지식에 대한 사회적 수요는 증대하는 반면, 전문지식이 어떻게 만들어지고 전달되고 있는지에 무감각할 경우 전문성의 권위만 강화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 때문이다. 감히 말해보건대 지식이야말로 정치의 도구이자 대상이자 장이다. 따라서 우리에겐 알기 위해 알아야 할 많은 것들이 있다. 그 중 하나가 앎이 어떻게 만들어지고 공유되는가 하는 것이다. 또한 지식노동과 교육노동의 경계를 오가며 불안한 나날들을 보내는 시간강사들의 사례, 학생 아르바이트 노동자들로 가득찬 교육현장에의 개입 사례 등은 비정규‘노동’에 대해 알기 위해 ‘노동’으로조차 인정받지 못하고 있는 무언가에 대해 알아야할 것들이 많음을 잘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