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수께끼, “세상에서 가장 무거운 것은?”
이정훈(센터 정책연구위원)
여러 가지 답이 있겠지만, 내가 어린 시절 친구들과 풀었던 이 문제의 답은 “눈꺼풀”이었다. 어린 시절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고 여전히 그 해답에 수긍이 가는 수수께끼다. 여러분도 공감하시는가? 그만큼 졸음을 이기기 어렵다는 방증이리라.
졸음. ‘(명사) 잠이 오는 느낌이나 상태’, 그 사전적인 의미대로, 잠이 오면 온전히 그 잠을 받아들이는게 자연의 섭리(燮理)겠지만, 노동을 하면서 불현듯 만나게 되는 졸음은 섭리대로 그 맛을 만끽할 수만은 없을 것이다.
“졸음운전의 종착지는 이세상이 아닙니다.” 이 문구는 고속도로에 펄럭거리며 붙어있는 졸음운전예방 현수막 중 하나이다. 기사를 찾아보니, 2013년~2015년 사이에 고속도로에서 발생한 졸음운전 사고는 660건이었고, 그 중 사망자는 93명으로 치사율이 14.1%였는데 이는 전체 고속도로 교통사고의 사망률인 7.2%의 2배에 달하는 수치라고 한다. 고속도로에서 현수막들을 무심코 볼 때에는 저렇게까지 섬뜩하게 예방활동을 해야 하나 싶었지만, 이어지는 사고를 접하면 접할수록, 당국은 저렇게 해서라도 사고를 줄여야겠다는 절실함이 있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도 해 보게 된다.
그리고 최근, ‘또 다른’ 당국은 급박하게 새로운 대책을 들고 나타났다. 이른바 ‘사업용 차량 교통안전 강화 대책’이라는 것이다. 운수종사자의 안전관리를 강화하기 위해 4시간 이상 연속 운전 시 최소 30분 이상 휴게시간을 보장해야 한다는 것과 중대 교통사고 시 운수종사자의 자격을 40일~60일 정지시키겠다는 내용이다. 대형 교통사고가 발생하는 구간은 대부분 고속도로나 자동차 전용도로 등이라고 감안한다면, 이번 대책의 주요 대상은 고속버스나 관광버스, 그리고 화물차를 운전하는 노동자가 될 것이다. 계속되는 대형 참사를 예방하고자 하는 절실함을 백번 이해한다 하더라도 위의 대책이 과연 효과가 있을지 의문이다. 그리고 그 의문을 넘어, 대책을 발표한 당국은 해당 산업과 노동에 대한 이해가 얼마만큼 있었는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고속버스를 운전하는 기사는 운행시간(노동시간)에 따라 임금이 책정되지 않는다. 사업주는 운행거리를 기준으로 단가를 책정하고, 기사는 한 번이라도 운행을 더 해서 거리를 많이 움직여야 임금을 조금이라도 더 받을 수 있다. 만근기준을 훌쩍 넘겨 운행을 할 수 밖에 없는 이유이다. 주말이나 휴가철에 도로가 막혀 1회 운행구간의 소요시간이 더 많이 걸린다고 해도 임금과는 무관하다. 이렇다 보니 무리한 스케줄과 배차, 과도한 운행 등으로 인해 피로가 누적될 수밖에 없다. 고속버스 승객이 몰려드는 금요일~월요일 사이에 ‘바짝 당겨야’ 하는 업체와 기사들은 새벽에 운행을 시작해 다음 날 자정을 넘겨 운행을 마치고, 현지에서 쪽잠을 자고 다시 운행을 하는 일상을 반복하고 있다. 이들에게 4시간당 30분의 휴게시간 부여는 근본적인 처방이 될 수 없다. 오히려 적정인력과 차량을 보유하여 1인당 운전시간을 조절하고, 충분한 휴식을 부여하는 해결책이 더욱 절실하다. 필요하다면 운행요금도 적정하게 받도록 검토해야 한다. 대통령이 매번 애타게 얘기하는 ‘안전을 최우선시 해야 한다’는 뜻이 진정이라면, 당국은 정말 그 뜻을 실현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하지 않겠는가.
화물을 나르는 화물운송 노동자들의 경우는 어떨까? 화물운송 노동자의 대부분은 임금을 받는 노동자의 지위를 갖지 못하는 특수한 형태의 근로자이다. 이들은 근로기준법이나 노조법상의 근로자가 아니라서 노동법의 보호를 받지 못한다. 그렇다고 자신이 스스로 업무의 개시와 종료를 결정할 수 있는 자영업자도 아니다.
관련된 연구를 찾아보니, 2014년 4/4분기에 일반화물 운전자들의 월 평균 노동시간은 323.7시간으로 상용 노동자 평균 노동시간인 180.7시간보다 120시간이 많았다고 한다. 323.7시간을 주당 40시간으로 환산하면 8주에 해당되는 시간이다. 이들은 한 달을 두 달처럼 살고 있는 것이다.
수입을 살펴보면, 일반화물 노동자의 순수입은 2014년 4/4분기 기준으로 239만원으로 2010년에 비해 오히려 8만원이 줄었다고 한다. 개별화물의 경우는 187만원, 용달화물의 경우에는 96만원에 불과하다고 한다. 이처럼 낮은 수익은 이들이 왜 장시간 노동을 해야 하는지를 보여준다. 장시간 노동을 하지 않고서는 그 수익마저도 가져갈 수 없기 때문이다.
화물운송 분야에 만연한 장시간 노동의 원인은 운임책정의 구조에서 찾아야 한다. 살펴본 자료에서는 운임이 장기간 정체하거나 하락했다고 제시한다. 또한, 운임이 중간에서 사라지는 이른 바 ‘중간착취’ 문제의 심각성에 대해서도 설명하고 있다. 중간알선업체 수수료가 바로 그것인데, 여기에는 다단계 하청구조가 핵심이 되고 있다. 사고를 유발하는 또 다른 원인에는 과적과 과속을 일상적으로 요구하는 (일부라고 하기에는 더 많은) 화주들의 관행도 한 몫을 하고 있다. 자, 여기서도 4시간 운행하고 30분 쉬라고 한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될 수 있을까?
지면에서 언급된 ‘그 당국’은 운송과 관련하여 외국에서 규율되고 있는 다양한 장치들, 예를 들자면 하루 운행시간 제한, 일단위/주단위/월단위 연속 휴게/휴식시간 설정, 예외적 허용범위 구체화 등 진일보한 대안들을 다시 한 번 살펴보고 현재 우리 산업과 노동의 실태를 엄밀히 파악한 후, 진정으로 ‘안전에 최우선한’ 근본적인 대책이 무엇인지를 심사숙고하여 수긍할 수 있는 대안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존 버드(John Budd) 교수의 저서 ‘나에게 일이란 무엇인가?(강세희 역)’에서는 일의 개념을 다양한 유형으로 해석하고 있는데, 장시간 노동과 저임금 속에 피로가 누적되고 일상화된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면, 과연 그 노동자는 일을 ‘정체성’이나 ‘자기실현’ 또는 ‘사회적 관계’나 ‘직업 시민권’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까? 아마도 일의 나쁜 측면이 계속 부각된다면 고대사회에서 일을 ‘저주’라고 설명했던 논리에 더 공감할지도 모를 일이다.
끝으로, 만평에나 나올만한 장면을 소개하며 글을 마치고자 한다.
제발 이런 상황은 아니길 간절히 바라본다.
참고자료
- 민간부문비정규직 인권상황 실태조사 ; 특수형태근로종사자를 중심으로(국가인권위, 2015)
- 버스·화물 운전시간 규제의 해외 사례와 시사점(사회공공연구원 이슈페이퍼, 2016)
- 버스업종의 노동시간 단축(전국자동차노조/한국노동연구원, 2012))
- 나에게 일이란 무엇인가? (존 버드 지음, 강세희 옮김, 2015)
- 신문기사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