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남신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소장 |
갈수록 아수라장이다. 노동현장이 자본의 사병인 용역깡패 폭력에 속절없이 유린되고 있다. 공권력의 비호 아래 압도적인 물리력을 앞세워 노동자들을 무자비하게 제압하는 것이 능사가 되고 있다. 돈 되는 일이라면 거리낌이 없다. 유성기업에서, SJM에서, 만도에서, 현대차 울산공장에서 자본에 의한 폭력의 외주하청이 판치고 있다. 용역깡패 폭력이 국민적 공분을 사자 현대차는 경비대와 관리자들까지 내몰아 비정규노조 간부들을 납치·감금·폭행했다. 무법천지가 따로 없다. 노동기본권을 규정한 헌법 정신은 짓밟히고 복수노조 제도를 악용한 자본의 치밀한 계략 속에 민주노조의 뿌리가 뽑혀 나가고 있다. 이 나라 최대 산별노조인 금속노조 사업장들에서 바로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일들이다.
현대차 자본이 이 모든 가공할 폭력의 배후에 있다. 반노동 정책과 입법으로 일관해 온 새누리당마저 비정규직 문제를 개선하겠다고 공언하고 있지만, 이윤 극대화라는 물신주의에 사로잡혀 살인적인 폭력을 사주한 현대차 자본은 여봐란 듯이 역주행을 가속화하고 있다. 올해 2월23일 대법원의 불법파견 확정 판결도 묵살했다. 8월2일 개정 파견법 시행을 앞두고 직접고용 의무 발생 시한인 2년 만기를 앞둔 사내하청 노동자들을 정규직화하지 않고 직영 계약직으로 전환하는 꼼수를 부려 비난을 샀다. 최근엔 3천여명의 정규직을 단계적으로 신규채용한다고 발표해 언론에 대서특필됐다. 하지만 그 인원이 정년퇴직자와 신규소요를 합산한 수로 불법파견 정규직화를 회피할 심산으로 낸 안임이 밝혀졌다. 결국 현대차의 의도는 정규직으로 전환시키면 그만인 불법파견 사내하청 노동자들을 신규입사자처럼 채용하겠다는 것이고, 그 자리를 또다시 비정규직으로 채우겠다는 것이다. 원하청 공정재배치를 통해 불법파견까지 은폐하겠다고 하니 현대차로선 꿩먹고 알먹는 격이다. 그야말로 꼼수의 완결판이다.
폭력 자본, 꼼수 자본으로 불법파견 자체를 부정하며 민주노조의 공적이 된 현대차에 맞선 투쟁에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따로 있을 수 없다. 전국 도처에서 민주노조가 압살되고 노동자들의 생존권이 백척간두에 선 지금, 위기에 처한 노동운동을 되살릴 수 있는 방법은 현장에서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하나로 싸워 이기는 길밖에 없다. 비정규지회는 힘겨운 조건 속에서 불법파견 정규직화를 쟁취하기 위해 결사항전을 결의했다. 이제 투쟁의 성패를 가름할 가장 중요한 상수인 현대차지부의 결단이 관건이다. 주간연속 2교대제의 온전한 쟁취와 함께 불법파견 정규직화 요구를 중심에 두고 투쟁 전술 및 교섭 방식, 그리고 타결 시점을 진중하게 판단해야 한다. 금속노조의 결정에도 불구하고 3번에 걸쳐 부결시킨 1사1노조 문제를 이후 잘 매듭짓기 위해서라도 비정규지회를 동등한 입장에서 배려해야 한다.
과거 노동자투쟁의 역사에서 배워야 한다. 정규직노조의 외면 속에서 517일 동안 처절한 항거 끝에 결국 노조 깃발을 내리고 말았던 한국통신 계약직노동자들의 투쟁. 그 이후 사측의 구조조정 강행에 무릎꿇고 대폭 노조 조직이 축소되면서 노무관리부서로 전락해 버린 KT노조의 사례가 잘 보여주듯이, 비정규 노동자들의 패배는 결국 정규직 노동자들에게 부메랑으로 되돌아올 수밖에 없다. 다행히 현대차지부는 불법파견 정규직화 요구를 다루기 위한 특별교섭을 처음으로 성사시킨 민주파 집행부가 투쟁과 교섭을 이끌고 있다.
이전의 뼈아픈 원하청 연대 실패 사례를 반면교사로 삼아 올해 불법파견 정규직화 투쟁에서 만큼은 합력해서 꼭 성공적인 결말을 만들어 내야 한다. 대법원 판결과 강력한 정규직지부, 결의에 찬 비정규지회, 불법파견을 성토하는 사회여론 등 전례없이 유리한 조건에서 진행되는 현대차 원하청공동투쟁이 올해마저 유종의 미를 거두지 못한다면 그 후과는 대단히 클 것이다. 금속노조는 물론 민주노조운동 전체에 심대한 타격을 입힐 것이다. 불법파견 근절을 포함한 비정규직 해법을 둘러싼 노사정 역관계에도 큰 영향을 미칠 것이다. 당장 지난 21일 출범한 ‘비정규직 없는 일터와 사회 만들기 1천만선언운동’부터 추동력이 약화될 것이다. 현대차지부가 단위사업장의 단체교섭을 넘어서 총노동을 대표하는 관점에서 끝까지 불법파견 정규직화 투쟁을 함께 책임져야 하는 이유다. 민감하고 쉽지 않은 과제지만 힘 기울인 만큼 고진감래의 결실로 돌아올 것이다. 다른 길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