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조작하고 배제하고, 최저임금 힘 빼는 사용자·정부
"사각지대 해소 함께 추진해야 인상효과 극대화" … 최저임금연대 5월 사각지대 실태조사
제정남 기자 (매일노동뉴스 / 2015. 4. 27)
최저임금 인상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고조되고 있다. 정부는 최근 내수 진작을 위해 최저임금의 빠른 인상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노동계도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한국노총과 민주노총은 노조에 소속돼 있지 않는 이남신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소장과 김민수 청년유니온 위원장을 최저임금위원회 근로자위원으로 추천해 대표성을 높였다. 최저임금 인상은 분명 대세로 굳어지고 있다. 문제는 최저임금 사각지대다. 최저임금법을 회피하기 위한 편법이 난무하고, 아예 최저임금 적용 대상에서 제외된 노동자들이 부지기수다. 최저임금 인상과 함께 제도개선을 통해 사각지대를 줄여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받고 있다.
최저임금 위반, 어디서 어떻게 발생하나
통계청의 경제활동인구조사 부가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8월 기준 국내에서 최저임금(5천210원) 미만의 급여를 받고 일하는 노동자는 227만명에 달한다. 전체 임금노동자의 12.1%다. 10명 중 1명 이상이 최저임금도 받지 못하고 일하고 있는 셈이다. 최저임금 미달 노동자는 근무형태와 직장규모를 가리지 않고 광범위하게 존재했다. 최저임금 미달자의 6.9%가 정규직이었고 1.9%는 300인 이상 대기업 노동자였다.
최저임금 사각지대는 제도적인 허점 때문에 생겼다. 사용자가 임금제도를 악용하는 경우가 대표적이다. 포괄임금제가 특히 악명 높다. 포괄임금제는 근로계약을 체결할 때 기본임금을 산정하지 않은 채 모든 수당을 합한 금액을 급여로 정하는 경우를 말한다. 법적 근거는 없지만 법원 판례에 의해 임금제도로 통용되고 있다. 한국전력 청소노동자 최저임금 위반 사건은 두고두고 회자되고 있다. 2013년 당시 이곳 청소노동자는 새벽 5시30분에 출근해 오후 4시30분에 퇴근했다. 하루 10시간 일했지만 회사는 8시간만 근무로 인정했다. 소정근로시간 209시간에 대한 한달치 임금은 117만2천원이었다. 시급 5천225원가량인 셈이다. 2013년 최저임금 4천860원보다 높다. 그런데 회사는 월급에 식비 8만원과 상여금 400%를 12개월로 분할해 포함돼 있다고 밝혔다. 이렇게 상여금과 식비를 빼면 시급은 4천원 밑으로 떨어진다.
최근에는 사용자 편의에 의한 포괄임금제가 부당하다고 보는 판결이 잇따라 나오고 있다. 예컨대 울산지법은 올해 1월 병원 간호사·조리원 등이 제기한 체불임금청구 소송에서 "근로시간을 산정하는 데 문제가 없다면 포괄임금제 방식의 임금 지급계약은 효력이 없다"고 판결했다. 하지만 임금문제를 두고 사용자와 소송전을 벌일 정도로 힘 있는 노조에 기댈 수 없다면 노동자가 포괄임금제를 뒤엎기는 극히 어렵다.
근로시간 조작해 최저임금 회피
전일제근무를 시간제로 전환해 최저임금을 회피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 연세대 송도 국제캠퍼스에서 청소노동자로 일하던 김미향씨는 지난해 12월31일 해고됐다. 하루 8시간 근무하고 월 120만원을 받던 김씨는 청소용역회사로부터 하루 근무시간을 5.5시간으로 줄이는 근로계약을 체결하자는 요구를 들었다. 용역회사 요구대로라면 월급은 95만원으로 줄어든다. 김씨가 요구를 거부하자 용역회사는 그를 해고했다. 용역회사가 내민 계약서를 거부한 노동자 23명이 함께 해고됐다. 김씨는 "8시간 동안 하던 일을 5.5시간 만에 하라는 강요를 수용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김씨를 포함한 해고자들은 4개월이 넘도록 원청인 연세대를 상대로 복직을 촉구하며 농성을 벌이고 있다.
시간제 일자리는 급속히 확산되고 있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주 36시간 미만 일하는 시간제 노동자는 2004년 107만2천명에서 지난해 203만2천명으로 크게 늘었다. 시간제 일자리 중 정규직 비율도 같은 기간 30.8%(33만명)에서 48.2%(97만9천명)로 급증했다. 노동계는 늘어난 시간제 일자리 중 상당수가 최저임금법을 회피하기 위해 전일제에서 시간제로 전환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휴게시간을 늘려 소정근로시간을 줄이는 방법도 자주 활용된다. 지난해까지 최저임금을 감액적용 받다 올해부터 100%를 받기 시작한 학교·아파트 경비원 등 감시단속 노동자들이 피해를 당하고 있다. 김병국 노년유니온 부위원장은 학교 야간경비로 일한다. 오후 4시30분에 출근해 다음날 아침 8시30분까지 16시간을 꼬박 학교에 있지만 근무시간은 휴게시간 8시간을 제외한 8시간만 인정됐다. 학교측은 올해 김 부위원장에게 휴게시간을 10~11시간으로 늘리자고 종용했다. 명목상 휴게시간을 늘리는 방법을 통해 소정근로시간을 줄이려는 것이다.
최저임금 아예 무시하기도
포괄임금제나 시간제 전환 등을 통해 인건비를 줄이는 사용자들은 점잖은 축에 속한다. 국내 최대 고시원 검색사이트의 구인게시판에 게시된 글을 보면 그야말로 위법천지다.
"성실한 야간근무 총무님 모십니다. 오후 6시부터 밤 12시, 오전 6시부터 오전 8시까지 근무입니다. 휴일은 한 달에 2회이며 주중에 쉬면 됩니다. 방과 식사 제공하고 월급여 50만원입니다."
"공용복도·공용샤워실·계단·화장실 청소하고, 밥하고 비품 챙겨 놓으면 됩니다. 급여 대신 여성전용층 넓은 방 드립니다. 월 4회 휴무입니다."
첫 번째 구인광고처럼 일할 경우 한 달 근무시간은 224시간에 달한다. 휴일도 없고 주휴수당도 없다. 최저임금법은 물론 근로기준법도 위반했다. 두 번째 사례는 임금을 아예 주지 않는 경우다. 노동계는 이같이 최저임금법은 물론 근로기준법 위반 소지가 다분한 현장이 적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지방자치단체의 최저임금 위반은 최저임금제를 알고도 지키지 않는다는 점에서 문제가 심각하다. 민주노총이 전국 지방자치단체 245곳을 조사한 결과 78곳에서 최저임금 위반 실태가 확인됐다. 경상북도 안동시는 행정실 무기계약 노동자의 올해 기본급을 일급 4만2천300원으로 책정했다. 최저임금 일급 4만4천640원보다 2천340원 적다. 통상임금 기준이 되는 일급이 최저임금에 미달하면서 덩달아 시간외수당·휴일수당도 적어졌다.
법조차 외면하는 수습·장애인·특수고용직
제도적으로 방조하는 최저임금 사각지대도 존재한다. 현행 최저임금제는 수습노동자에 대한 최저임금 감액적용제도를 도입하고 있다. 1년 이상 근로계약을 체결할 경우 3개월 이내 최저임금의 10%를 감액할 수 있다. 하지만 단기 아르바이트를 채용하면서 감액적용제도를 악용하는 사례가 계속 논란이 되고 있다. 고용노동부는 단순노무직의 경우 수습이라는 이유로 최저임금을 감액할 수 없도록 제도 개선을 추진하고 있지만 얼마나 실효를 거둘 수 있을지 미지수다.
장애인은 최저임금 적용이 배제된다. 노동부에 따르면 최저임금 적용을 받지 못하는 장애인 노동자의 임금은 2013년 기준 최저임금의 57.1% 수준에 그친다. 전 세계에서 장애인에게 최저임금을 지급하지 않는 나라는 일본과 우리나라가 유일하다. 그나마 일본도 최저임금 적용제외를 2008년 폐지하고 감액제를 도입했다. 노동부는 올해 1월 발표한 장애인고용 종합대책에서 장애인에 대한 최저임금 적용제외를 폐지하고 감액제도 도입을 추진하겠다는 내용을 명시했다. 2017년 시행이 목표다. 간병사·가사관리사·대리운전기사 등 특수고용직도 마찬가지로 최저임금법의 보호를 받지 못한다.
정부 대책만으론 사각지대 해소 불가
노동부는 최저임금 위반 사례가 반복되고 이유를 중소영세기업의 지불능력 부족과 피해자의 신고 기피에서 찾고 있다. 행정지도의 한계도 인정하고 있다.
노동부는 최저임금을 위반한 사업주에게 시정명령 없이 바로 2천만원 이하 과태료를 부과할 수 있도록 최저임금법 개정을 추진하고 있다. 시정명령을 이행하지 않으면 사법처리를 했는데, 앞으로는 즉시 과태료를 부과하고 이후에도 바로잡지 않으면 사법처리하겠다는 것이다.
최저임금 담당 감독관을 만들어 행정력을 강화하고,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를 도입해야 한다는 주장도 거듭 나온다. 임윤옥 한국여성노동자회 상임대표는 "정부는 공공부문은 물론이고 민간에서 최저임금이 제대로 지켜지도록 근로감독과 행정의무를 충실히 이행해야 한다"며 "최저임금 미달분을 노동부가 선지급하고 사업주에 대위권을 행사하는 제도도 최저임금 실효성을 높이기 위한 방안으로 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학교에서 근로기준법·최저임금법 같은 노동관계법을 의무적으로 가르치도록 하는 방안도 추진되고 있다. 국회 산업통상자원위원회 전순옥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최근 관련 내용의 교육기본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전 의원은 "노동기본권에 대한 교육이 강화되면 최저임금 위반 등도 자연스럽게 감소하게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노동계에서 자성의 목소리도 나왔다. 민주노총 관계자는 "노동계는 최저임금 인상만 집중했을 뿐 사각지대 해소는 정부와 경영계 책임으로 밀었다"며 "양대 노총이 최저임금 적용제외 노동자들의 목소리를 대변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양대 노총과 시민·사회단체로 구성된 최저임금연대는 5월께 최저임금 사각지대 실태조사를 벌일 계획이다. 최저임금을 위반하는 포괄임금제 사례 등을 취합해 최저임금 인상 논의 자료로 사용한다. 이남신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소장은 "최저임금 사각지대 해소방안이 없으면 최저임금 인상 효과도 반감될 수밖에 없다"며 "최저임금 적용을 회피하는 각종 편법을 없애는 대책을 서둘러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