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병길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상임활동가
올해 하반기 동안 대학생 자원활동가 13명이 한국비정규노동센터에서 활동했다. 그 결과를 발표하는 자리가 지난 10일 있었다. 센터는 매년 말에 비정규노동 수기공모전 시상식을 해 왔다. 이번에는 결과 발표회를 겸한 것이었다. 노동·시민단체 활동가들이 노동을 매개로 청년과 소통할 일은 흔치 않다. 그래서인지 참석한 이들의 반응이 뜨거웠다. 행사가 무사히 끝난 거 같아 다행이다 싶으면서도, 노동과 청년의 만남이 뜻밖의 일이 아니었으면 하는 바람이 들었다.
이번 행사명인 ‘우리가 만난 노동 이야기’에서 알 수 있듯이, 자원활동가들은 지난 6개월간 다양한 활동을 하며 노동을 접했다. 일자리 불평등 청년 인식조사를 통해 청년들이 생각하는 좋은 일자리란 무엇인지, 일자리 불평등에 대해 어떤 생각을 하고 있으며, 어떻게 전망하는지 들을 수 있었다. 비정규 노동자·활동가 인터뷰도 했다. 배달·대리운전·건설·가사노동자, 웹툰 작가, 패션 스타일리스트 어시스턴트를 만났다. 인터뷰 내용은 글과 카드뉴스로 정리했다. 활동 결과를 100페이지 내외의 소책자로 엮어 연말에 센터 회원들에게 발송할 예정이다.
자원활동 내내 코로나19로 인해 제약이 많았다. 7~8월에 투쟁 현장과 민간위탁 노동센터를 방문할 계획이었으나 가지 못했다. 온라인으로 노동과 불평등을 공부했다. 인식조사 준비 단계였다. 서로 친밀감을 형성해야 할 활동 초기에 모니터로만 만나다 보니 답답했다. 집중력이 떨어졌고, 논의를 이어가는 데 한계가 있었다. 가을학기가 시작되고는 자원활동을 대면으로 전환했다. 백신접종률이 높아지는 추세였고, 비정규 노동자·활동가 인터뷰를 비대면으로 할 수는 없었다.
자원활동가들이 센터 활동을 단순히 거들거나 꾸미는 역할에 머물지 않았으면 했다. 기간이 정해진 프로그램을 기획해 동기를 부여하고, 자원활동 결과물을 만들어 성취감을 느낄 수 있도록 신경 썼다. 인식조사와 인터뷰, 이번 행사·활동 결과를 담을 소책자가 바로 그것이다. 그리고 자원활동가들이 스스로 고민하면서 함께 활동을 만들어 나갔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다. 더해 자원활동이 끝난 뒤에도 자신과 주변의 노동을 계속해서 고민한다면 더할 나위 없을 것 같았다.
자원활동가들이 센터에서 경험하고 배운 만큼, 센터 역시 그들로부터 많은 걸 얻었다. 대학 내 인권센터와 연계한 자원활동은 센터에게 좋은 기회다. 훌륭한 인적자원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 때문만은 아니다. 자원활동가들과 소통하면서 센터 활동을 되돌아볼 수 있었다. 비슷한 신념과 가치관을 가진 사람끼리만 교류하다 보면 확증편향이 일어나 시야가 좁아지기 마련이다. 활동하면 할수록 활동에만 매몰되는 것이다. 그러면 센터 활동이 노동자, 나아가 시민의 관심과 공감을 끌어내기 힘들다. 자원활동가들의 또 다른 시선이 소중했던 이유다.
그리고 말하는 것보다 듣는 게 더 어렵다는 걸 몸소 겪었다. 말하기는 자신의 노력과 의지만으로도 가능하다. 그러나 듣기는 상대가 나와의 대화에 동의하는 것부터 시작해 자유롭고 편안하게 말할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해야 한다. 온라인으로 토론하고 인식조사 질문지를 짜면서 여러 번 느낀 바다. 질문을 던지거나 의견을 구할 때, 침묵이 길어지면 참기 어려웠다. 그렇다고 해서 이런저런 말을 덧붙이다가는 결국 혼자 떠들다 논의가 끝나 버리기 일쑤였다. 관리자만 신나게 떠들고 나머지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는, 건강하지 않은 조직의 전형적인 회의 모습이 생각나 뜨끔했다.
기회가 된다면 내년에도 자원활동 프로그램을 운영할 계획이다. 단순히 자원활동가들과 함께한다는 사실만으로 의미를 부여하는 건 경계하고 싶다. 자원활동가들이 활동의 주체가 아닌 동원의 대상이 돼서는 곤란하다. 어떤 프로그램을 준비할지 기획하기에 앞서, 어떻게 하면 자원활동가들과 보다 원활히 소통하면서 함께 활동을 만들어 나갈 수 있을지 고민해야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