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병길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상임활동가
올해 초 한국비정규노동센터와 다섯 곳의 노동 관련 센터 상근자들이 힘을 합쳐 교육TF를 꾸렸다. 현재 서울 내 노동센터 직원들을 대상으로 시범교육 중이다. 개별 노동센터에서 직접 교육하기에는 예산과 인력의 한계가 있다. 규모가 작은 자치구 센터의 경우 직원이 3~4명으로 한 명 한 명이 소중한 현실이다. 그렇다고 일이 적은 게 아니니 교육이 뒷전으로 밀릴 수밖에 없다.
지난 3월에 신입직원 교육(10명)을, 6월에는 두 차례에 걸쳐 센터장 교육(19명)을, 그리고 9월과 10월에는 세 차례에 걸쳐 경력직원 교육(30명)을 했다. 향후 지속적이고 체계적인 교육을 위해 고민해야 할 지점이 아직 있지만, 분명 의미 있는 시도였다. 교육마다 대상이 다르니 방식과 내용 역시 조금씩 달랐다. 그러나 큰 틀에서 궁극적인 지향점은 대동소이했다. 노동센터에서 일한다는 것의 의미가 무엇인지 탐구하는 과정이라고 볼 수 있겠다.
교육을 통해 만나본 노동센터 직원들은 정체성에 대한 고민이 많았다. 노동센터는 시나 구에서 민간단체에 위탁해 운영하는 중간지원조직으로서 민간과 공공의 특성을 모두 지닌다. 안정적으로 예산을 확보해 사업을 펼칠 수 있지만, 민간과 비교했을 때 사업의 자율성이 낮고 행정 절차가 복잡하다. 활동가 성향이 강한 직원은 답답할지도 모르고, 행정업무를 선호하는 직원은 부담스러울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나의 노동을 진지하게 고민하는 건 쉽지 않아 보였다.
우리는 밥벌이를 위해 일한다. 자산이 많아 돈이 돈을 벌지 못하는 이상 그러해야 한다. 그러나 노동은 생계수단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그것은 자아를 실현하는 방법이자, 인간관계를 맺는 플랫폼이며, 야망 혹은 탐욕을 추구하는 도구이기도 하다. 우리는 노동을 하면서 우리가 어떠한 사람인지 많은 부분 만들어 나간다. 그렇기에 우리는 자신의 노동을 끊임없이 탐구해야 한다.
바쁘게 일하다 보면 노동의 의미를 잊을 때가 많다. 노동을 통해 어떤 성과를 거두고 어떻게 성장할지, 그것이 내게 어떤 보상과 만족을 가져다주는지 고민하길 멈춘다. 매너리즘에 빠져 새로운 시도를 주저한다. 미래를 적극적으로 그리기보다는 과거를 참고해 그저 하루를 버텨낸다. 밥벌이를 위해서, 배운 게 이것뿐이니, 직장 밖은 지옥이라니까 마지못해 일하다 보면 나의 노동에 무감각해지면서 점차 자신을 잊게 된다.
가끔은 반복되는 노동에서 낯설어질 필요가 있다. 보다 객관적이고 비판적으로 나의 노동을, 나 자신을 탐구할 계기가 열릴지도 모른다. 교육TF에서 시도한 교육 역시 낯설게 하기의 한 방법이었다. 교육 목적이 나의 노동이 되는 순간, 나와 나의 노동 사이에는 거리가 생긴다. 강사의 진행과 다른 수강생들의 참여는 나의 노동을 다채롭게 생각해 볼 기회를 제공한다. 물론 진지하게 고민하는 낯선 나도 새로운 자극이 될 수 있다.
경력직원 교육 프로그램 중 하나로 사회극을 했다. 퇴사를 고민하는 인물과 그를 둘러싼 이들(가족, 직장 동료, 센터장, 담당 주무관, 친구 등)을 상상한 뒤, 각 참가자가 하나씩 역할을 맡아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었다. 각자가 처한 상황에 따라 하나의 노동을 여러 각도로 바라볼 수 있음을, 그리고 하나의 노동을 중심으로 여러 사람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관계를 맺고 있음을 봤다.
노동의 의미를 찾는 건 오로지 개인만의 일이 아니다. 조직도 함께 고민해야 한다. 홀로 일하는 개인 사업자나 프리랜서가 아닌 이상 노동은 협력의 산물이다. 조직이 어떤 비전을 지니고 있느냐에 따라 개인의 성장 방향과 선택이 달라질 수밖에 없다. 역으로 개인이 자기 전망을 확고히 한 채 미래를 그려 나가야 조직이 흥할 수 있다.
나아가 노동의 의미를 찾는 건 우리 사회의 일이기도 하다. 노동을 대하는 법과 제도, 문화, 사람들의 인식은 한 사회가 어떤 색을 지녔는지 알려 준다. 노동을 경시하고, 노동을 단지 돈벌이 수단으로만 여기는 사회에서 개인의 삶은 향기롭기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