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대재해처벌법을 흔들지 마라
지난 13일 서울 을지로입구역 근처 동국제강㈜ 본사 앞에서 ‘동국제강 산재 사망사고 공개사과와 해결 촉구 기자회견’이 있었다. 고 이동우 노동자의 유족과 시민·사회단체 관계자가 참가했다. 고 이동우 노동자는 동국제강 포항공장의 하청업체 소속이었다. 지난 3월21일, 천정크레인 보수 작업 중 갑작스럽게 설비가 작동하면서 안타깝게 목숨을 잃었다.
기자회견문에 따르면 “사고 당시 동국제강은 도급인으로서 작업현장에 안전관리자나 안전담당자를 입회시키지 아니했고, 작업계획 및 안전작업허가서에 따라 작업자 배치와 작업이 이뤄지는 여부, 천정크레인 작업자 배치에 앞서 천정크레인의 전원차단 여부, 천정크레인 상부 신호수 배치 여부, 천정크레인 및 회전체 작동시 상부 위험 확인 후 천정크레인 상부 신호수의 신호에 따른 천정크레인 작동 등 정해진 신호방법에 따라 신호가 이뤄지는 여부 등에 대한 관리감독을 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산재를 예방하기 위해 필요한 조치가 취해지지 않은 것이다.
상황이 이러함에도 동국제강은 제대로 된 사과도 배상도 하지 않았다. 대표이사는 사고가 발생한 지 8일이 지나서 장례식장을 방문했고, 그로부터 일주일 뒤에 변호사를 통해 합의서 초안을 유족에게 전달했다. 그나마도 기자회견문에 따르면 “사람 목숨의 가치를 우롱하는” “법적 책임을 면책하려는” 내용이었다. 유족은 사고가 발생한 지 23일(기자회견 시점 기준)이 지나도록 장례를 치르지 못했다. 게다가 지치고 아픈 몸을 이끌고 포항에서 서울로 올라와야 했다. 얼마나 참담한 심정이었을지 짐작하기조차 힘들다.
동국제강은 유족에게 진심을 담아 사과하고, 충분한 배상을 하며, 중대재해 경위와 원인을 철저히 파악하고, 잘못에 따른 합당한 책임을 져야 한다. 그리고 다시는 이러한 불행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안전한 일터를 만들기 위해 각고의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이건 당연한 상식이다. 그러나 동국제강은 어떻게 하면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중대재해처벌법) 적용을 피할 수 있을지 궁리나 하는 듯하다. 현 상황을 잠시 지나가는 소나기쯤으로 여겨서는 안 된다. 불행한 사고만 반복될 뿐이다. 과거 동국제강 사업장에서 중대재해가 여러 차례 발생한 적 있다는 사실이 이를 여실히 보여준다.
비단 동국제강뿐만이 아니다. 올해 1월29일 삼표산업의 채석장에서 붕괴 사고가 발생해 노동자 3명이 사망했다.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되고 이틀이 지난 뒤 벌어진 참사였다. 고용노동부는 곧바로 수사에 착수했다. 그러나 삼표산업은 비협조적으로 나오고 있으며,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갖은 수를 쓰고 있다. KBS 보도에 따르면, 이종신 삼표산업 대표는 휴대전화의 잠금 해제를 거부하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 증거를 인멸하려는 정황이 포착됐다. 붕괴 원인을 관리 부실이 아닌 “날씨 탓으로 돌리자고” 했고, 본사 “전산 자료를 다수 삭제한 정황”도 드러났다. 설상가상으로 삼표산업은 사고 현장 작업재개를 요청했다가 2번이나 반려 당했다. 일말의 반성도 없는 무책임한 행태다.
중대재해처벌법 시행과 맞물려 대형로펌이 특수를 맞고, 노동 전문변호사의 몸값이 뛰고 있다고 한다. 기업이 안전보건관리체계를 점검·구축하려고 애쓴 결과이면 좋겠으나, 그보다는 처벌을 회피하기 위해 꼼수를 부리는 것으로 보인다. 재계가 윤석열 대통령 당선자를 만난 자리에서 중대재해처벌법이 기업을 옥죈다며 불평을 쏟아낸 것만 봐도 짐작할 수 있다. 자본은 노동자의 안전을 불필요한 비용쯤으로 여기는 반인권·반노동적인 생각을 바로잡아야 한다. 대형로펌에는 천문학적인 돈을 턱턱 내면서, 왜 회사를 위해 피땀 흘려 일하는 노동자의 안전은 소홀히 하는가? 왜 산재로 안타깝게 사망한 노동자에게 최소한의 도리조차 다하지 않는가?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된 지 석 달이 채 안 됐다. 법 시행 초기의 수사와 판결은 향후 법 적용의 시금석이 될 게 분명하다. 시시비비를 명백히 가려 합당한 처벌이 내려져야 한다.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에서 중대재해처벌법 규제를 완화하겠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는데 안 될 말이다.
“중대재해를 예방하고 시민과 종사자의 생명과 신체를 보호”한다는 법의 목적을 충실히 따라야 할 때다. 누구도 일하다가 죽어서는 안 된다. 우리는 살려고 일하는 것이다.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상임활동가 (ilecdw@naver.com)
출처 : 매일노동뉴스(http://www.labortoda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