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봄노동자에게 노동은 용돈벌이가 아닌 생계수단
처우 개선하고, 돌봄서비스를 공적 사회서비스로 전환해야
조한무 기자(중기이코노미/2018. 04. 17.)
장애인활동지원사·요양보호사 등 ‘돌봄’노동자에 대한 처우를 개선하고, 돌봄서비스를 점차 공적 영역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활짝미래연대와 장애여성네트워크가 지난 16일 공동주최한 ‘돌봄, 여성 어르신의 노동을 이야기하다’ 토론회에서 한국비정규노동센터 김세진 활동가는 “돌봄노동은 저임금, 고용불안, 장시간노동 등 대표적인 나쁜 일자리로 거듭나고 있다”며 “정부는 관리·감독 등 책임을 회피하고, 사회적 인식 또한 돌봄노동자를 단순히 용돈벌이 하는 사람들로 생각하는 경향이 강하다”고 지적했다.
돌봄노동자에게 노동은 용돈벌이가 아닌 생계수단
돌봄노동자에게 노동은 용돈벌이가 아닌 생계수단이다. 김세진 활동가는 “50~60대 여성들은 대안이 없어 불합리를 감내하고 돌봄노동을 계속한다”며 “경력단절 여성들은 경력부족, 가사노동분담, 나이, 성별로 대표되는 사회적 편견으로 다시 고용시장에 나올 때 어려움을 겪는다”고 설명했다. 이어 “결혼전 본업으로 돌아가기보다 시간제노동으로 편입될 확률이 높다. 돌봄노동, 청소노동 등이 중장년 여성이 접근하기 쉬운 대표적인 직업군”이라고 말했다.
정부가 돌봄서비스 노동을 일자리창출 그 자체로만 바라봐, 열악한 돌봄일자리가 양산됐다는게 김 활동가 주장이다. 김 활동가는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여성실업률 급증에 대한 대안으로 사회서비스영역에서 일자리를 만들기 시작했다”며 “2007년 노인장기요양보험을 도입하면서 돌봄서비스가 사회서비스로 확대됐지만, 양적확대에 치중한 탓에 과도한 시장화를 야기했다”고 지적했다. 2017년 기준 재가장기요양기관 운영은 개인 84%, 영리법인이 15.3%를 차지하고, 공공기관은 0.6%밖에 되지 않는다. 장애인활동보조서비스 경우 100% 민관기관의 몫이다.
영세사업자 난립으로 서비스질보다 이용자 확보 경쟁”
김세진 활동가는 “공적서비스로 이용돼야 할 요양보호가 영리를 추구하는 민간에서 운영되는건 국가가 사회서비스를 챙기겠다는 의도로 생긴 노인장기요양보험제도와는 상반된 모습”이라며 “영세사업자 난립으로 과당경쟁이 심화돼, 서비스 질의 경쟁보다 이용자 확보 경쟁으로 이어졌다”고 설명한다.
요양보호사 실태를 통해 본 돌봄노동자들은 열악한 노동조건에 처해 있다. 김 정책부장은 “요양보호사 30만명중 90%를 차지하는 27만명은 재가요양보호사, 나머지는 시설요양보호사”라며 “재가요양보호사는 단시간비정규직, 시설요양보호사는 기간제비정규직으로 1년마다 재계약을 맺어야 해, 불안정한 일자리 구조를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2015년 기준 재가요양보호사 월평균 임금은 65만원, 시설요양보호사는 115만원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요양보호사는 노동조건 또한 법의 사각지대에 놓여있다. 김세진 정책부장은 “산업안전법상 요양보호사가 이용자를 옮길 때 10kg 이상이면 여러사람이 같이 들도록 규정하고 있지만, 요양보호서비스는 1대1로 제공되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지켜지기 힘들다”며 “산재신청을 하더라도 50대이상 여성은 원래 관절이 약하다는 이유로 요양보호사 업무와 인관관계가 없다고 판단, 산재를 적용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2016년 장애인활동보조사 인권침해증언대회에서는 김영이씨 사례가 발표된 바 있다. 척수 및 근육장애, 루게릭병 등 중증장애인을 주로 맡아온 김씨는 70kg에 달하는 이용자를 매일 두세번씩 들어 옮겼다. 팔이 시큰해 병원을 찾으니 ‘손목터널증후군’이란 진단이 내려졌다. 김씨는 직업병이라고 생각했지만, 중개기관은 본인 돈으로 치료를 받아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고용이 불안한 탓에 불이익을 참고 견디는 수밖에 없었다.
사회서비스공단 설립이 사회서비스진흥원으로 후퇴
이날 토론회에선 문재인 대통령이 후보시절 공약한 사회서비스공단 설립이 사회서비스진흥원으로 후퇴했다는 지적도 있었다. 당시 문 대통령은 치매국가책임제를 주요공약으로 내세우면서 사회서비스공단을 설립, 요양보호 종사자 33만명중 40%에 해당하는 13만2000명을 공공기관 종사자로 전환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지난해 12월 보건복지부에서 발표한 방안에는 애초 공약에서 후퇴한 내용이 담겼다. 김세진 정책부장은 “사회서비스진흥원 설립방안에서 제시된 공공인프라 확충계획은 5년간 요양시설 539개소, 통합재가센터 229개소, 공공센터 519개소 신축 등이다. 애초 제시한 공공사회서비스 일자리 34만개 창출, 공공보육시설 이용률 40% 확충에 한참 못 미친다”고 지적했다.
사회서비스를 공적영역으로 편입하는데 반대하는 의견도 있다. 시장을 무시한 채 국가지출을 늘리면 재정이 악화되고, 지속가능한 복지를 담보할 수 없다는 주장이다. 이에대해 김세진 활동가는 “단번에 사회서비스 전부분을 공적영역으로 전환해야 한다는게 아니다. 사회서비스에 공공성을 부여하는 데는 사회적 합의가 따라야 한다. 이를위해 단계적으로 공적영역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며 “다만, 현재 정부가 추진중인 방안은 지나치게 소극적인 수준에 머물러 있다”고 주장했다.
국민연금 등 사회보험료 부담 주체를 명확히 해야
직접고용이 유일한 해결책은 아니라는 주장도 제기됐다. 장애여성네트워크 백혜련 교육지원센터장은 “시간제가 무조건 나쁜 일자리는 아니다. 정규직이 아니어도 적절한 처우를 보장하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며 “돌봄노동자는 근로기준법상 적용대상에서 제외돼, 퇴직금도 받지 못하고 4대보험 가입도 안 된다. 국민연금 경우 사측과 근로자가 근로소득 4.5%씩을 내기로 돼 있는데, (국민연금을 부담하는) 사측을 특정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중개기관은 여력이 없고 국민연금을 부담할 사용자 또한 분명하지 않은 상황에서, 국가 역시 책임을 회피한다는게 백 센터장 설명이다. 그는 “기금을 조성하는 방안 등이 제시되고 있지만 활발한 논의가 진행되지 않고 있다. 이 문제를 공론화해 해결책을 모색해야한다”고 말했다.
민주노총 여성연맹 9호선 강선규 지부장은 돌봄노동자들의 각오가 중요하다고 주장했다. 지하철 9호선에서 청소노동을 하는 강 지부장은 자신의 경험을 소개했다. 그는 “청소노동자로서 6년간 느낀건 본인도, 고용주도 고객도 청소업무를 하찮은 일로 본다는 것”이라며 “사회약자로서 살아왔다는 피해의식에 저항을 하지 못한다. 스스로 비하하는 경우가 많다. 젊은층이 늘면 차차 나아지겠지만, 적어도 10년 이상은 이 상황이 지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강 지부장은 “중장년 여성노동자 경우 임금인상에 대한 스스로의 의지가 약하다. 노조가입률도 낮다. 의식개선이 필요하다”며 “본인이 행동하지 않으면 바뀌지 않는다. 제도를 바꾸고자 한다면 능동적으로 움직여야 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