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삶] “시민들 희생 감수 희망버스 참여 전국적 진보운동 싹틔울 메시지”
경향신문 2011년 7월 15일 황경상 기자
ㆍ‘노동계급 형성과 민주노조운동 …’ 펴낸 조돈문 교수
조돈문 가톨릭대 사회학과 교수(57·사진)가 1999년 대우자동차의 해외매각 반대 투쟁에 자문단으로 참여했을 때다. 반대 투쟁이 날이 갈수록 비난받고 있던 어느 날, 자정을 넘긴 한밤중에 대우자동차 군산공장 노동자의 전화를 받았다. 그는 가냘프게 떨리는 목소리로 “당신을 죽여버리겠다”고 ‘살의’를 토로했다. 온갖 협박 전화를 무심히 받아낸 터였지만, 단 한 번도 화를 내본 적이 없을 법한 그 목소리만은 아직도 생생하다.
그 시절부터 조 교수가 10여년간 해온 고민이 <노동계급 형성과 민주노조운동의 사회학>(후마니타스)에 담겼다. “1987년 시작된 민주노조운동은 97년 노동법 재개정 총파업 투쟁을 거치면서 절정을 이뤘고 계속 진전될 것이란 믿음도 생겼습니다. 그러나 노동계급 형성과 민주노조운동이 후퇴를 거듭한 지금, 그 기대는 허물어졌어요.” 지난 13일 한국비정규노동센터에서 만난 그는 이 책이 “왜 그렇게 될 수밖에 없었는지에 대한 물음에서 시작됐다”고 말했다.
상당 부분 할애해 분석한 대우차 사태는 “국가와 자본이 어떤 전략으로 노동을 장악했는지를 잘 보여주는 사건”이라는 것이 조 교수의 분석이다. 경제위기를 거치면서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이 전면화됐고, 대우차 사태에서 보듯 노조는 대응에 실패했다. “경제위기 상황에서 상당 부분 희생을 강요당할 수밖에 없다면, 먼저 임금·고용을 양보하는 대신 소유권 개입, 정책 개입 및 경영 참여 같은 변혁적 내용을 공세적으로 요구하면서 주도권을 잡아야 했어요. 결국 얻은 것 없이 모든 걸 뺏긴 셈이죠.”
그간 노조는 임금인상 등의 실질적 혜택을 가져다줬지만 외환위기를 거치면서 “고용 보장도 못한다”는 비판에 직면했다. 노동자들은 “괜히 참여했다가 미움을 사서 정리해고 1순위로 낄 수도 있는” 노조에 등을 돌렸다. 노조 지도부는 조합원을 설득하고 나아가 국민들을 설득해야 했지만 당장의 투쟁에 동력을 얻기 위해 ‘동원의 논리’에만 갇혔다.
그 빈자리는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와 시장지배질서가 차지했다. 해고의 일상화는 정규직이야말로 가장 큰 기득권임을 깨닫게 했다. “잘리기 전에 실컷 벌어야” 했으며, “내 일자리를 지키기 위해서는 비정규직 해고를 당연시”하는 전반적인 ‘보수화’가 진행된 것이다. 조 교수는 “이 과정에서 노조 조직률 20% 수준의 정규직보다 2~3% 남짓인 비정규직이 오히려 계급의식이 강해지는 계급 형성의 ‘미스매치’ 현상이 벌어졌다”고 말했다.
쌍용차, 한진중공업 사태에서도 볼 수 있듯 이는 현재 진행형이다. 노동자들은 자신들의 이해관계에 따라 이합집산하고 때로는 적대관계로 서면서 ‘제로섬’ 게임을 벌이고 있다. 복수노조 허용 뒤 민주노조에 등을 돌리는 노조들도 나오고 있다. 조 교수는 “노동자들에게 높은 도덕적 기준이나 영웅적인 투쟁을 요구할 수는 없다”고 말한다. “노동자들이 물질적 이해관계의 상호모순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구조적인 조건을 해소해야 합니다. 예컨대 고용보험이 확대된다면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해고’의 부담을 덜면서 갈등을 넘어 연대하고 조직화할 수 있습니다.”
조 교수는 같은 신자유주의 10년을 겪었지만 왜 우리는 중남미처럼 좌파정권이 집권할 수 없었는지를 되묻는다. 그 핵심은 전 사회적인 보수화 속에서도 민주노조가 고립되지 않도록 막아준 지역공동체 운동이었다. 학술단체협의회 회장을 맡으면서 <위기의 한국사회, 대안은 지역이다>를 공동으로 펴낸 것은 그런 문제의식에서다. 지난 9일 ‘희망버스’에도 참여했던 그는 “희생을 감수하면서까지 시민들이 참여한 것은 고용불안이 일상화되면서 정리해고를 자신의 문제로 여겼기 때문”이라며 “전국적인 진보운동으로 발화될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