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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남신 한국비정규 노동센터 소장 |
과유불급. 대선을 코앞에 둔 요즘 노동계를 보면서 떠오르는 사자성어다. 하루가 멀다 하고 여기 저기 대선후보 캠프로 몰려가는 발길들이 어지럽다. 평소 자신들이 주장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달려간, 한 때 노동운동과 진보정치의 지도자들을 보면서 둥지는 저렇게 옮기는 거구나 싶기도 하다. 떼 지어 가기도 하고 홀로 가기도 하더라만 이사 다니듯 거처를 옮기는 것이 이제 이 동네의 새로운 관행으로 정착되겠구나 하는 불길한 예감이 엄습한다. 이미 둑이 무너진 마당에 이런 글이라도 필요하겠다 싶어 몇 자 끄적인다.
최근 통합진보당 부정선거 사태 이후 나날이 폭죽처럼 터져 나온 사실과 주장들은 상상을 압도한다. 영화보다 더 기막힌 사건 전개와 반전을 보여 준 진보정치의 막장드라마는 상상 초월 그 자체였다. 어디서부터 꼬였는지 근본적 원인을 찾기 힘들 정도로 뒤죽박죽이 돼버려 종국엔 책임소재조차 모호해졌다. 그 와중에 양대 노총의 정치적 발언권도 현저하게 힘을 잃고 의미있는 정치 방침은 실종됐다. 특히 진보정당의 실질적인 창당주체이자 텃밭이었던 민주노총은 소모적인 직선제 논란 끝에 지도부가 사퇴하는 지경에까지 내몰렸다. 그야말로 사면초가다.
노동자들의 현실은 어떤가. 전태일 열사 42주기인 지난 13일, 의사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쌍용차 김정우 지부장은 말라비틀어질 때까지 끝장단식을 계속하겠다고 선언했다. 1천800여일 가깝게 거리 농성투쟁을 이어온 재능교육 학습지교사들의 투쟁도 결정적인 매듭을 짓지 못한 채 초장기로 흘러가고 있다. 현대차 울산공장 앞 송전철탑에선 두 명의 사내하청 노동자가 고공에 집을 짓고 거대 자본에 맞서 힘겨운 싸움을 벌이고 있다. 유성기업 홍종인 지회장도 민주노조 말살 음모에 맞서 아산공장 앞 굴다리 위에서 아슬아슬한 텐트 고공농성 중이다. 이미 8년 넘게 투쟁해 온 시그네틱스와 7년을 훌쩍 넘긴 코오롱, 6년째 투쟁 중인 콜트콜텍은 또 어떤가. 정규직이고 비정규직이고 모두 생존의 벼랑 끝에 매달린 채 자본독재에 맞서 절박한 싸움을 매일 벌이고 있다.
투쟁하는 노동자들은 차라리 행복하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자살율 1위, 저출산율 1위, 청소년 흡연율 1위, 독주 소비량 1위인 암울한 무한경쟁·승자독식·빈부양극화 한국 사회. 싸울 힘이나 의지조차 잃어버리고 그저 하루하루를 견디는 이들이 부지기수다. 특히 노조 가입조차 어려운 대다수 미조직·비정규 노동자들과 이주노동자들은 인권 사각지대에서 무권리상태의 극한을 일상적으로 경험하고 있다. 이 모든 일이 민주개혁을 표방했던 김대중·노무현 정부와 비즈니스 프렌들리를 내세운 이명박 정부를 관통해 진행된 반노동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의 필연적인 결과다. 진보의 개념이 시궁창에 처박힌 지금 노동운동과 노동정치는 투쟁하는 노동자들, 인권 사각지대에서 고통받고 있는 이들과 함께 고락을 나누고 문제 개선과 해결을 위해 싸우는 것에서부터 출발해야 마땅하다. 그런데 어떤가.
현재 소위 진보진영 대선주자만 넷이다. 누구는 현실적인 대안을 찾아간다 하고, 누구는 올곧게 제자리를 지킨다 하고, 누구는 투쟁만이 살길이라 하고, 누구는 통합을 부르짖는다. 다 제 입장에선 맞는 말이겠지만 뒤끝은 참 공허하다. 기운이 모아지지 않는 선언과 구호란 그 자체로 진이 빠진다. 생존권과 정치적 시민권마저 박탈당한 채 무권리 상태에 놓인 수많은 노동자들을 대변하겠다는 자칭 진보 대통령 후보는 사상 초유로 많다. 그런데 노동자들의 현실은 힘겹기만 하고 투쟁현장을 찾는 보수정당 후보들의 발길이 더 주목받고 있다.
단언하건대 지금은 답답하더라도 현장에서 다시 준비해야 할 때다. 섣부른 상층중심 정치 행각으론 노동정치의 분열과 조급증을 극복하긴커녕 무기력의 늪에 더욱 깊이 빠질 공산이 크다. 독자적인 노동자 정치세력화는 더욱 요원해질 뿐이다. 지금 조건에서야 누가 대통령이 되더라도 노동공약을 지키라고 강제해 낼 수 있겠는가. 단결과 연대가 생명인 민주노조운동의 명운은 결국 노동현장의 노동자들과 건강한 간부들에게 달려있다. 비정규직 문제만 해도 얼마나 더 많은 일꾼이 필요한가. 급할수록 돌아가라 했다. 야권연대에 목매거나 노동정치의 현실적 조건을 희화화하지 않고 노동자계급의 힘을 보여줄 조직력과 정치력으로 무장한 새로운 노동세력이 절실하다. 노동의 가치를 다른 가치에 부속시키지 않을 독자적인 정치철학과 지향, 조직적 기반을 갖춘 노동자군대를 다시 재건해야 할 때다. 소탐대실의 정치 과잉 시대에 대선이 가까워질수록 ‘노동’주의자가 더욱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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