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노동뉴스 칼럼]
다음달 2일 ‘광화문 저잣거리’로 오세요
이남신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소장(매일노동뉴스/2014. 8. 28)
다음달 2일 서울 광화문에 독특한 장이 선다. 1천만 인구가 빼곡하게 모여 사는 메트로폴리탄 수도 서울의 4대문 안 도심 대로변이 장터로 탈바꿈한다. 대형 조형물 ‘해머링맨’이 오늘도 열심히 망치질을 하고 있는 광화문 흥국생명빌딩 앞에서부터 길을 따라 동화면세점까지 각양각색의 노점이 판을 벌인다. 불볕더위 여름이 물러가고 초가을의 따사로운 햇볕이 건물을 감싸는 도로변에서 책 구경도 할 수 있고 차를 마시면서 사진 전시회와 공연도 즐길 수 있다. 무료 노동법률 상담도 받고 간단한 건강진단도 받을 수 있다. 내가 좋아하는 전도 부치고 여러 종류의 먹을거리도 사먹을 수 있다고 하니 벌써 입안에 군침이 돈다. 장사를 해 남는 수익금은 한 푼도 갖지 않고 기부한다고 한다. 자본주의를 거스르며 살벌한 무한 경쟁이 뼛속 깊이 스며든 삭막한 도시에 사람의 온기를 더하는 이 행사가 바로 ‘광화문 저잣거리’다.
씨앤앰-티브로드 비정규 노동자들을 응원하는 광화문 저잣거리. 장기파업으로 고통스러워하고 있는 케이블방송 노동자들을 보면서 어떻게 힘을 보탤까 고심하던 이들이 불쑥 낸 아이디어가 발단이 됐다. 노조를 아예 죽이겠다고 작심하고 대화를 거부한 채 강경한 버티기 전략으로 일관하고 있는 투기자본과 노조탄압 악질기업의 횡포를 보다 못한 노동·사회·시민단체들이 힘 모아 연대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던 끝에 떠오른 생각이었다. 사람들이 자연스레 어울려 소통하고 교감하며 재미있게 즐기면서 서로 힘을 북돋아 줄 수 있는 광장. 우리 모두에게, 특히 힘든 투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비정규 노동자들에게 필요한 연대한마당. 뭘 의식하지 않고도 함께 끼어들 수 있는 그런 곳. 저잣거리가 딱이다.
서울시민 대다수는 대부분 노동자로 살아가고 있다. 양대 노총 조합원들만 해도 수십만 명에 이른다. 바로 자신의 일터 인근에서 이름 모를 비정규 노동자들이 집을 버려둔 채 두 달 가까이 찬 길바닥에서 잠을 청하고 있는 이유를 잘 모른다면 얼마나 비인간적인 일일까. 사회적 약자로 고통 받고 있는 비정규 노동자들이 세 달째 준법적 수준의 소박한 요구를 쟁취하기 위해 장기파업을 하고 있는데도 눈 한 번 맞추지 못하고 손 한 번 잡지 못했다면 얼마나 무심한 야만인가. 세월호 참사 유가족의 특별법 제정 요구를 나 몰라라 하며 만나지도 않는 대통령을 비난하면서 정작 우리 곁 이웃의 고통에 주목하지 못하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고통 받는 이들 앞에서 중립을 취할 수는 없다며 세월호 유가족뿐 아니라 용산·쌍용차·강정·밀양의 투쟁하는 당사자들을 선뜻 만난 프란치스코 교황과 불통의 아이콘이 된 박근혜 대통령의 삶의 태도는 근본적으로 화합할 수 없다. 비정규 노동자들의 노숙농성장을 스쳐 지나는 수많은 서울시민을 보면서 이 익명의 사람들은 누구와 닮았을까 자문해 본다.
돈보다 사람이 중요하다는 것이 세월호 참사의 가장 큰 교훈이었다. 아무리 자본이 주인인 자본주의 사회라도 사람의 생명과 안전을 돈벌이보다 경시하면 결국 대재앙을 우리 스스로 키우는 꼴이 된다는 것을 절감했다. 이런 마당에 좋은 일자리를 만들 충분한 능력이 있으면서도 불법적인 하도급 구조를 통해 갈취해 온 이윤이 아까워 헌법이 보장하는 노동 3권을 짓밟겠다니 적반하장도 유분수다. 노동자를 일회용품처럼 취급하면서 돈벌이 수단으로만 삼아 온 행태가 기막히다. 100여명에 가까운 비정규 노동자를 폐업을 통해 부당해고하고 선별적 직장폐쇄로 합법파업을 파괴하려고 안간힘을 쓰는 케이블방송 씨앤앰과 티브로드의 원청사용자들은 공공의 적이 돼 가고 있다.
열흘 후면 한가위다. 가장 큰 명절이다. 더도 말고 더도 말고 한가위만 같으라고 하지 않나. 가족·친지를 만나고 조상을 찾아뵙고 사라져 가고 있는 공동체 문화의 소중함도 되새기는 한가위에 노숙농성으로 고향을 바라만 보게 될 수도 있는 비정규 노동자들이 있다. 광화문에서 1천여명이 교대로 농성하고 있는 케이블방송 씨앤앰-티브로드 설치·AS·철거 기사들이다. 다음달 2일 정오부터 저녁 7시까지 펼쳐지는 광화문 저잣거리에서 떡메를 치는 노동자들도 만나고 다양한 볼거리와 먹을거리, 즐길 거리로 가득한 그곳에서 연대하자. 반갑게 인사를 나누며 돈이 가장 중요한 것이 아니라고 본때를 보여 주자. 비정규 노동자도 사람답게 대우받을 수 있도록 저잣거리에서 우리 모두 이윤을 넘어서는 사람이 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