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판 여공'들이 월 100만원에 밤샘하는 구로공단
[2012 비정규노동 수기 공모전 수상작·⑤] 구로공단 비정규직
김희서 노동자의 미래 사무국장
한국비정규노동센터는 2012년 '비정규노동 수기 공모전'을 열어 지난 12일 당선작 1편과 입선작 5편을 선정했습니다. <프레시안>은 해당 수상작 6편을 게재합니다. <편집자>
서울디지털단지에는 약 20만 명의 노동자들이 일을 합니다. 서울디지털단지! 구로공단! 이곳은 1960년대 구로공단이 형성된 이후로 성장기와 쇠락기를 겪으며 많은 노동자들이 오고갔고, 80년대에는 노동자 저항의 상징이 되기도 한 곳입니다.
6, 70년대를 배경으로 한 드라마에 한 번쯤은 나올법한 이야기들이 이곳 구로공단의 역사입니다. 식구들을 먹여 살리기 위한 여공들의 땀과 눈물, 수출역군을 자처하는 전자공장의 노동자들의 꿈, 주물공장에서 당한 산재에 힘들어하는 젊은이의 좌절과 도전, 자신은 입어보지도 못할 메이커 옷을 생산하느라 밤을 새우는 봉제공장의 아주머니들 이야기들이 구로공단을 만든 실제 역사입니다.
세월은 흘러 구로공단은 이름도 바뀌고 외형도 많이 바뀌었습니다. 서울 디지털단지라는 화려한 이름과 쭉쭉 뻗은 빌딩과 아파트형 공장이 오늘날 구로공단의 모습입니다. 아침이면 수만 명의 인파들이 가산디지털단지역과 구로디지털단지역을 빠져나와 바쁘게 빌딩 속으로 들어갑니다. 번듯한 양복과 서류가방들, 정장치마와 세련된 백을 맨 커리어 우먼들이 제일 먼저 눈에 띄는 최첨단 디지털단지의 모습입니다. 하지만 그 빌딩 속을 들여다보면, 그리고 빌딩 밀집지역 외곽으로 조금만 눈길을 돌려보면 정말 깜짝 놀랄 수밖에 없습니다. 그곳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의 노동조건과 대우는 마천루 같은 빌딩과 정장차림 속에서 기대했던 그것과는 너무나 딴판이기 때문입니다.
대학 나온 현대판 '여공'들
사실은 저도 잘 몰랐습니다. '요즘 같은 세상에 자기 것도 못 챙기는 바보가 어디 있나?' 생각했습니다. 쥐꼬리만 한 월급에도 참아야 하는 건 그 옛날 집안에 대학 보낼 동생 때문에 참아야 했던 여공이지, 민주화되고 권리의식이 높아진 요즘. 더군다나 대학공부까지 마친 지금의 젊은 노동자들이 그런 노동조건에 적응하고 버티며 살아 갈 거라고는 전혀 몰랐습니다.
어느 날 한통의 전화가 왔습니다. 여느 때처럼 전화를 받습니다.
"예 노동자의 미래입니다."
전화 건너에선 의심스런 목소리로 물어봅니다.
"노동청인가요?"
"아니요. 저희는 노동청은 아니고 '노동자의 미래'라는 곳인데요. 서울 디지털단지 노동자들의 권리 찾기를 위한 사업단입니다. 민주노총이랑 지역 시민사회단체랑 함께하는… 뭐 쉽게는 어려운 노동자들과 함께하는 시민단체정도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아 그래요? 그럼 제가 뭐 하나 문의해도 되나요? 혹시 문의하는데 돈이 들어가지는 않나요?"
"걱정 마시고 편하게 말씀하세요. 저희는 돈이 들고 그러는 곳은 아니고요. 지역 노동자들을 위해서 상담하고 도움주고 하는 곳입니다."
그날의 시작도 언제나 비슷하게 시작하는 그대로였습니다. 노동자를 도와준다고 하는 곳은 돈을 받는 노무법인밖에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믿고 전화했던 노동청에서는 별 도움도 못 받고 오히려 관의 고압적인 핀잔만 들었던 사람들이 조심스럽게 한 가닥 희망을 걸어보는 그런 비슷한 시작이었습니다.
"우리 아이가 너무 힘들게 일을 하는데요. 너무 억울해서 전화를 걸었습니다. 새벽에 나가서 밤 10시가 넘어서까지 야근을 하고, 불쌍할 정도로 열심히 일을 하는데 정규직 시켜준다고 해놓고서 근무한지 2년을 바로 코앞에 두고서 이제 그만 나오라고 하네요. 이건 아니지 않습니까?" 딱 들어보니 계약직 노동자 이야기입니다.
정규직화(정규직화라고 해봐야 정규직과는 임금수준이나 대우도 다른, 그저 고용이 보장된다는 그것뿐인 '중규직'!)를 앞두고 계약종료를 통보한 모양입니다. 일단 마음이 갑갑해 집니다. 법률적으로 큰 방법이 없으니까요. 전화를 걸어온 어머니와 마음의 상처를 입은 해고 당사자는 이 상황을 잘 이해하지 못합니다. 성실히 일했고, 회사에서도 계속 정규직화를 보장한다고 했고 결국 믿고 열심히 일한 것 밖에 없으니까요. 이해가 안 되는데 그렇다고 법률적으로 문제를 짚어내기도 어렵습니다. 계약직으로 일을 했고 계약이 종료된 어느 시점에 다시 계약을 안 하겠다고 회사가 통보한 것뿐이니까요. 지속적으로 일한 기간이 2년이 넘으면 정규직화 해야 한다는 법이 있으니, 18개월, 20개월쯤 계약직으로 쓰다가 법에 안 걸리게 계약 종료를 통보하면 되니까요. 물론 극소수의 예외의 경우도 있습니다. 계약 갱신을 기대할 수 있어서 부당한 해고라는 판례는 있긴 합니다. 그런데 그건 참 예외고, 참 어렵습니다. 수년간 힘 가진 회사와 법원과 싸워서 열에 하나 얻어낼까 말까한 경우니까요.
구로공단 봉제공장 출신 어머니와 비정규직 아들딸들
전화를 걸어온 어머니는 다시 화를 냅니다. 그동안 쌓인 화를 저에게 냅니다.
"그게 말이 됩니까? 그럼 차라리 2년 안 넘도록 일시키겠다고 말하고, 정규직화 안시키겠다고 말하는 게 당연한 거지 계속 일하게 할 것처럼 이야기해 놓고, 일 열심히 하면 정규직 시켜준다고 말해놓고 이렇게 사람을 바보취급, 쓰고 버리는 물건취급 하는 게 말이 됩니까?"
"저도 독산동에서 일을 합니다. 처녀 때 구로공단 봉제공장에서 일했었고, 애 키운다고 일 안하다가 어느 정도 키우고 나서 삶이 쪼들려서 다시 이곳에서 일을 합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별반 달라진 건 없습니다. 그래도 나는 그냥 조금이라도 살림에 보탬이 되려니 해서 일하는 거니 사대보험도 없고, 보너스도 없고, 공장 사정에 따라서 어떤 때는 일 나오라고 하고 어떤 때는 기약도 없이 갑자기 쉬라고 해도 참고 일할 수 있습니다. 한 달에 80만 원 받을 때도 있고, 야근도 하고 그러면 100만 원 받을 때도 있고 해도 참고 일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대학도 졸업하고 이제 꿈과 자기계획도 갖고 일하려는 애들한테까지 이렇게 하는 건 절대 아니죠. 그렇지 않나요?"▲ 구로공단은 박정희 전 대통령도 수시로 방문할 정도로 1970년대 국가 경제 성장의 주요 축이었다. 오늘날 구로공단은 서울디지털단지로 이름이 바뀌었고 인근에는 고층빌딩이 들어섰지만, 그 속에는 여전히 1970년대 '여공'의 자리를 대물림받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쓰이고 버려지고 있다. 사진은 1976년 퍼스트 레이디 시절 구로공단에 방문해 여공들을 격려하는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 ⓒ연합뉴스
어눌하고 조심스럽게 말을 꺼내던 그 모습은 간데없고 마음속에 쌓인 억울한 이야기들을 주저 없이 품어 내십니다.
"맞습니다. 어머님 말씀이 다 맞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 법이 그렇게 되어있네요. 근로기준법이라고 노동자들을 보호하기 위한 법이 있지만 안 지켜지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또 비정규직 보호법이라고 만들어 놓은 게, 꿈을 갖고 열심히 일한 사람도 계약기간이 다 되어서 다음 계약을 안 해버리면 별 보호를 못 받게끔 해 놓았습니다. TV에 비정규직 보호법이 오히려 회사가 기간제 비정규직을 양산하는 거라고 외치는 분들 보셨죠? 이런 일들이 예견 되었는데도 법을 만드는 사람들은 회사들이 일하는 사람 쉽게 뽑고, 쉽게 자를 수 있게 만드느라고 노동자들의 말은 아랑곳없이 법을 만들었습니다. 회사 편을 들어주는 국회의원들이 대부분이기 때문입니다."
괜시리 내가 죄인이 된 모양으로 이런 저런 설명을 해주고, 잘못된 것을 이야기 해주지만 명쾌할 수는 없습니다.
정장 입은 나도 알고 보니 비정규직
하루에도 이런 전화가 몇 통씩 걸려옵니다. 이름만 들어도 알만한 유명한 회사에 다녀서 걱정을 안했는데 자기도 모르는 비정규직인 경우, 정규직화 해주겠다고 하면서 실컷 일 부려먹고 계약기간 끝나며 나 몰라라 하는 경우, 아르바이트 같은 단시간 근로나 계약직은 퇴직금 같은 거 없다며 거짓말하는 경우… 경우도 가지가지 다양합니다.
결국 속뜻은 똑같습니다. 노동자는 노동자가 되지 말고 열심히 일하는 부품이 되라는 것입니다. 언제든지 쓰고 버릴 수 있는 부품. 언제든지 싼값으로 바꿔 끼울 수 있는 부품이라는 생각이 화려한 디지털단지 겉모습에 가려진 진실입니다. 수십 년 전부터 지금까지 바뀌지 않은 디지털단지 기업들의 진실입니다.
예전 구로공단에서 일했던 젊은 여공들이 50줄이 되어 다시 구로공단으로 나옵니다. 배운 거라곤 봉제기술밖에 없는데 아직도 그걸 받아줄 곳이 있습니다. 월급 100만 원 내외, 점심값 따로 주면 좋은 곳, 안 주면 야박한곳…. 물론 근로계약서, 시간외수당, 사대보험 따위는 사치스러운 요구입니다. 이곳으로 다시 돌아온 봉제노동자들에게는 '생계를 위한 노동이 아니지 않느냐? 그 나이에, 할 것도 없으면서 일해서 돈 벌 곳이 있는 걸 다행으로 생각해야지' 하는 논리가 제법 먹힙니다. 비정규직이란 말을 굳이 쓸 필요도 없습니다. 주변에 있는 대부분의 공장들이 그러니 내 공장만 특별히 나쁜 것도 아닙니다. 이렇게 구로공단에서 '비정규직이란 말을 쓸 필요 없는' 비정규직은 양산되고 노동자들은 비정규직으로 살아갑니다.
그 아들딸들은 다른 비정규직으로 살아갑니다. 자식들만큼은 그렇게 일시키지 않기 위해서 구로공단을 누볐던 노동자들의 아들딸들은 이제 계약직, 프리랜서, 전문직 종사자라는 이름의 비정규직으로 살아갑니다. '비정규직 보호법'이라고 불리는 법으로 '정규직화'라는 빼앗겨버릴 희망을 가진 채 열심히 일하는 비정규직 노동자, 기업이 원하는 물량을 채워내고, 회사의 통제를 받고 일하지만 프리랜서, 전문직이라는 이름으로 교묘히 가려진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이곳을 채워가고 있습니다. 번듯한 양복과 서류가방들, 정장치마와 세련된 백을 맨 회사의 부품으로 '비정규직이 아닌듯한' 비정규직으로 살아갑니다.
나는 이런 서울 디지털단지에서 이런 비정규직 노동자들과 살을 부대끼면 살고 있습니다.
시대를 거쳐 부모와 자식을 돈벌이 부품으로 만들었던 이곳에서 나는 희망을 만드는 일을 합니다.
'근로기준법 지키라'는 전태일의 외침이 유효한 곳
어처구니없는 현실을 처음으로 체감한 사람들에게 분노를 표현하라고 이야기합니다. 자신이 비정규직인 것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노동자들에게 그것을 똑바로 보고 그렇게 만든 원인이 무엇인지 같이 보자고 이야기합니다. 때론 허무감이 찾아올 때도 있습니다. 시간외 수당을 지급하라! 근로계약서를 법대로 제대로 써라! 전태일 열사가 40여 년 전에 외쳤던 '근로기준법을 지켜라!'를 수십 년이 지난 지금 다시 이곳에서 외치고 있노라면 나는 너무 소박한 것 아닌지, 너무 무능력한 건 아닌지 하는 허무감이 찾아옵니다.
진짜 주인을 만나야 진실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다시 희망을 찾아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만나러 이곳을 돌아다닙니다. 처음 느낀 분노에서 불합리한 세상을 꿰뚫어보는 사람들! 그 또한 비정규직 노동자들입니다. 내 억울함이 나의 탓이 아니고 돈만을 목적으로 하는 회사와 그들만을 도와주는 정치에 있다고 느껴버린 사람들! 그 또한 비정규직 노동자들입니다. 내가 쓰고 버리는 부품이 아니라 내 땀의 결과가 세상을 만들어내고 돌아가게 하는 힘이라는 것을 알아버린 사람들! 그 또한 비정규직 노동자들입니다. 그것을 꿰뚫어보고, 느끼고, 알아버린 그들이 결국 여기의 주인이 될 것이기에 난 그들을 만나러 이곳을 돌아다닙니다.
이곳을 만들어온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이곳의 주인이 되는 그날을 위해
저는 오늘도 서울 디지털단지의 화려한 암울함을 누비고 다닙니다.
노동상담 전화와 '근로기준법을 지켜라!' 전단지를 들고
추위를 뚫고 디지털단지를 누비며, 때론 회사 사장님들께 문전박대를 당합니다.
저는 남부노동자 권리찾기 사업단 '노동자의 미래'입니다.
* 이 글의 원제는 <서울 디지털단지 비정규직 노동자와 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