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상적으로 '일복 같은 소리' 다음에 뭐가 붙죠?" 우리 모두 알 듯 참가자들 대답으로 완성된 문장은 "일복 같은 소리하고 자빠졌네"다. 5월 19일 오후 7시, 한국비정규센터와 동녘 출판사가 함께한 <일복 같은 소리> 출판 기념회가 서울공익활동지원센터에서 문종찬 센터 소장 질문으로 시작되었다.
한국비정규노동센터는 10여 년간 비정규직들의 수기를 공모해왔고 이번에 그 수기 공모작품 중 44명의 이야기를 엮어 책을 냈다. 이 책은 일복이 아니라 일이 고통이 된 곳에서 살아내는 44인의 얘기다. "비정규직 노동자의 목소리는 그들이 굴뚝에 올라야 들을 수 있었다. 그들은 굴뚝에 오르기 전 무엇을 하고 어떻게 지내고 있었을까. 바로 그것이 이 책에 있습니다."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조돈문 대표가 인사했다.
퍽! 학창시절 잘못을 저질러 반성문을 쓴 친구들이 "이걸 반성문이라고 썼어?" 라는 선생님 호통과 함께 나가 떨어졌습니다. 선생님은 제 앞에서 위 아래로 훑어 보더니 "짜식, 반성문은 잘쓰네"라고 했어요. 그 순간부터 목숨 보존을 위해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는 이시백 선생의 짤막 특강. "너무 붙들려 있으면 우리의 얘기를 쓸 수 없어요. 정규직에 대한 불만을 쓰는데 그건 체제가 원하는 것이고 사용자와 원청에 대한 얘기를 써야 하는데 대령보다 방위가 군대 이야기 잘 쓰고 평생 농사꾼보다 주말 텃밭 가꾸는 사람이 잘 씁니다. 내 얘기를 넘어서 우리 얘기가 되려면 객관화가 필요합니다."
▲이가현 <나도 '노동자'입니다>
어여들 오셔요. 불금에 오신 분들이 자리를 점점 더 채웠다. 저자 중의 한 분인 이가현씨의 사회로 북토크가 시작되었다.
엇, 제가 뽑혔어요. 추첨 쪽지를 하나씩 나눠줬는데 당첨. 자동차 제조사 비정규직 얘기를 쓴 분의 수기 한 문장이 담긴 쪽지였다. 제조업 노동과 함께 살아온 인연 때문에 붙었나. 저자들의 수기 중 한 대목의 문장을 뽑아 쪽지에 싣고, 이 쪽지 중 몇개를 뽑아 당첨되면 당첨자가 읽고 상품으로 책을 받는 시간. 청중을 참가자로 만드는 꽤 자연스럽고 그럴싸한 방법이다.
▲길한샘 <"재깍재깍" 시간은 멈추지 않는다. 내 몸의 시계추가 멈출지라도>
▲김계월 <해고자로 산다는 것>
▲김선영 <자동차 영업사원의 눈물>
▲라이더유니온 최고속도65 <내 오토바이 최고속도는 65>
▲박미리 <계약직을 전전하다 일용직 노동자가 되었다>
▲방승범 <조롱받지 않을 권리>
▲신진호 <가로수길의 불만>
▲이광호 <고독한 사장님들>
▲정현철 <공단 파견 노동자>
▲제희덕 <새벽에 길을 나서면>
▲한은주 <새벽 이슬 밟는 여자>
▲홍준호 <성공이 아닌 실패의 기록>
부채를 하나씩 뽑으면 순서대로 꽃 한송이를 선물받고 저자들이 돌아가며 얘기한다. "내가 하는 일을 남이 아니라 내가 해석하고 싶어서 글을 썼어요" 모두 비정규직이지만 다양한 저자들. "주문 많이 해주세요. 라이더들 힘들어요" 라이더 얘기를 쓴 분이다. ㅎㅎ 이분은 간단한 건강진단과 건강증진 운동까지 시켜주더니 "라이더 배달오면 꼭 직접 받아주시고 감사 인사도 전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네. 그럴께요.
"글을 쓰다보니 사회를 보는 안목이 생기더라구요." 아 그랬구나. 청소, 빵공장, 대리기사, 재밌게 말씀하신 메트로 식당 여성 노동자, 아직도 끝나지 않은 현실을 살아가는 객원기자, 다양한 저자들의 얘기를 들었다. 모두가 스피커를 가지는 시간이었다.
비정규직이라는 동일성과 업종 다양성의 앙상블을 이룬 출판기념회. 10여 년 목소리를 갖지 못한 비정규직의 수기를 진주처럼 꽤어 모두에게 남을 선물로 엮어낸 것은 늘 권리의 사각지대와 함께 20여 년 이어온 비정규센터이기에 가능했으리라.
저자들과 뒷풀이로 오손도손 더 얘기를 할 수 있으면 좋겠지만 다들 바쁘실테고 불금이니 그런 기대는 과도한 호사겠다. 전에 수기 공모 담당했던 한 분(락그룹 활동을 하는 이 분 노래 한 곡 불렀으면 더 좋았을 걸)과 그 이후 8년을 담당하며 오늘 기념회에 이른 분, 전주에서 약간 늦게 올라온 분과 새벽까지 정담에서 취중 진담까지.
구슬을 꿰어 책을 이뤘다. 다양한 수기를 비정규직이라는 동일성으로 엮었다. 한 발 더 나아가 어떤 테마를 부여해 재구성할 수 있으면 더 좋겠지만, 스피커 없는 사람들의 공론장은 이렇게 이뤄진다.
■ 글: 조건준 아유 대표, 센터 교육위원회 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