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병길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상임활동가
교통사고 전문 한문철 변호사가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 ‘한문철TV’에 올라온 한 동영상이 화제다. 제목은 ‘대리비 2만원 시비로 인해 부부에게 잔혹하게 폭행당한 50대 대리운전기사의 이야기’다.
동영상 내용을 요약해 보자면 이렇다. 손님인 한 부부가 대리비 2만원을 이체하려고 한다. 그런데 마침 은행점검 시간이어서 안 된다. 남자는 명함을 건네면서 나중에 입금해 주겠다고 한다. 대리운전 노동자는 남자의 제안을 에둘러 거절한다. 그 과정에서 실랑이가 일고 부부가 폭언을 내뱉는다. 점차 분위기가 험악해진다. 급기야 부부는 호텔 주차장에서 노동자를 폭행한다.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노동자가 경찰에 신고하자, 여자는 자해하더니 현장에 도착한 경찰에게 쌍방폭행이라고 거짓 주장을 한다. 그 후 대리운전 노동자가 보디캠으로 촬영한 영상을 한문철TV에 제보하면서 공론화된다.
이 사건은 대리운전 노동자, 나아가 플랫폼 노동자가 처한 취약한 노동현실을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단순히 폭행 사건에만 초점을 맞춰 분노하고 끝낼 문제가 아니다. 구조적인 원인을 해결하지 않는 이상 피해자만 바뀔 뿐 언제든지 다시 일어날 수 있다.
2019년 국가인권위원회가 발표한 ‘플랫폼노동 종사자 인권상황 실태조사’에 따르면, 대리운전 노동자의 95%가량이 폭언이나 폭행을 경험한 적이 있다고 답했다. 이는 조사 대상 직종 중에서 가장 높은 응답률이었다. 대리운전 이용자가 대부분 주취자라는 점과 다른 직종에 비해 대인접촉 시간이 길다는 점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퀵서비스·화물운송 노동자(약 75%), 음식배달 노동자(약 56%), 웹툰·웹소설가(약 53%), 플랫폼 택배노동자(약 45%) 등 전체 응답자의 약 55%가 폭언이나 폭행을 경험한 적이 있다고 했다.
플랫폼 노동자가 일터에서 겪는 어려움은 폭언·폭행에 그치지 않는다. 같은 조사에 따르면 대리운전 노동자의 약 75%가 보수 미지급 경험이, 약 49%가 무상추가노동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이번 폭행 사건의 도화선은 대리비 이체로 인한 다툼이었다. 그 이면에는 노동에 대한 정당한 대가를 제대로 받지 못하는 현실이 놓여 있는 것이다. 전체 플랫폼 노동자 응답률의 경우 미지급 경험이 약 43%, 무상추가노동 경험이 약 36%였다. 이외에도 업무상 상해에 대한 자비 치료 경험이나 업무상 손실에 대한 자비 배상 경험이 있다는 응답률이 각각 40%를 넘었다.
이처럼 플랫폼 노동자는 각종 위험과 부조리에 직면해 있다. 그러나 이들을 보호할 장치는 전무한 수준이다. 인권위 조사에서 보수 미지급·무상추가노동, 폭언·폭행, 업무 상해 및 손실에 따른 조정·해결 절차가 있다고 응답한 플랫폼 노동자는 6.7%에 불과했다. ‘있지만 효과가 없다’ 18.1%, ‘있지만 사용이 어렵다’ 11.5%, ‘없다’ 42.8%, ‘모른다’ 20.8%로 실질적인 조정·해결 절차가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이번 폭행 사건 영상만 해도 그렇다. 대리운전 노동자는 손님의 폭언·폭행에 홀로 대응해야 했다. 플랫폼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려는 시도는 전혀 없었다. 보디캠으로 현장을 촬영하지 않았다면 어떤 억울한 상황에 직면했을지 모른다.
법과 제도는 어떠한가? 2019년 7월부터 ‘직장내 괴롭힘 금지법’이 시행됐다. 그러나 플랫폼 노동자는 이 법의 보호를 받을 수 없다. 근로기준법상 근로자가 아니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 법은 ‘사용자 또는 근로자’의 괴롭힘만 금지한다. 고객이나 거래처 직원과 같은 제삼자의 괴롭힘은 규율하지 않는다. 대리운전 노동자가 이 법의 보호 대상이라고 가정해도 이번 폭행 사건에선 사각지대에 놓이는 셈이다. 게다가 플랫폼 노동자는 산재·고용보험과 같은 사회적 안전망에서도 상당 부분 배제된다. 전속성 기준이 높아 산재 승인이 어렵고, 일반 노동자와 달리 산재보험료의 절반을 내야 한다. 올해부터 고용보험이 적용되기 시작했으나, 수급 조건이 지나치게 까다로워 실질적인 혜택을 누리기 힘들다.
이번 폭행 사건 영상을 보면, 노동자 개인에 대한 욕설뿐만 아니라 대리운전 노동자 전체를 비하하는 폭언도 자주 나온다. 플랫폼 노동자가 노동자로서 존중받지 못하는 우리 사회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것 같아 씁쓸하다. 이것이 가장 근본적인 문제다. 플랫폼 노동자의 노동자성을 인정하지 않는 이상, 이들은 인간적으로 존중받으며 안전하게 일할 수 없다. 플랫폼은 서비스 이용자와 노동자를 모으고 중계하는 역할만 하는 게 아니다. 알고리즘·콜·평점·리뷰 등 다양한 방식으로 노동자를 관리하고 통제한다. 사실상 사용자인 셈이다. 그러니 그에 따른 합당한 책임을 져야 한다. 동시에 플랫폼 노동자는 노동자로서 정당한 권리를 행사하고 법의 보호를 받을 수 있어야 한다. 하루빨리 플랫폼 노동자의 무권리 상태가 해소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