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병길 센터 상임활동가
지난달 26일 서울시청 앞에서 오세훈 서울시장의 노동·민생·시민참여 예산 삭감에 반대하는 기자회견이 열렸다. ‘코로나 너머 새로운 서울을 만드는 사람들(너머서울)’의 제안으로 모인 428개 시민·사회단체들이 주최한 기자회견이었다. 서울시는 최근 주민자치, 사회적 경제, 혁신 분야, 청년, 도시재생, 마을공동체 등 시민·사회단체 관련 민간위탁·보조금 예산을 삭감하려 하고 있다.
노동 역시 예외가 아니었다. 서울시는 노동복지센터 관련 예산을 50% 내외로 삭감하겠다고 예고했다. 갑자기 예산을 절반 이상 줄이라니, 시민들의 노동권익을 보장하고 사회경제적 복지를 증진하고자 만들어진 노동복지센터에서 대량 해고라도 하라는 것인가? 사실상 문을 닫으라는 말과 다름없어 보인다.
어느 정도 변화가 있으리라고는 짐작했다. 같은 정당 내에서 자치단체장이 바뀌어도 전임의 흔적을 지우고 새롭게 단장하려 하는데, 정당 자체가 바뀌었으니 말이다. 그러나 이토록 급작스러우면서 과격할 줄은 몰랐다. 완전히 예상 밖이었다. 임기가 1년 남짓인 보궐선거로 당선된 상황에서, 내년 대선과 지방선거까지는 큰 변화가 없으리라고 봤다.
서울시의 이번 예산 삭감 시도는 전임 시장 지우기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자본을 견제해야 할 정치와 행정을 자본의 논리로 재단하겠다는 것이다. 사실 이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시장은 비효율적일 때도 많다. 외부효과로 인해 시장 실패가 일어나면, 특정 기업이나 개인에게는 이익일 수 있으나 사회 전체적으로는 손해다. 이를 조정하는 게 공공의 역할이다. 그런데 신자유주의가 대두된 이후 자본이 본격적으로 공공의 영역에 침투했다. 계량화된 숫자로 사업을 측정·평가하고, 일부 관료와 전문가가 갈수록 복잡해진 의사결정을 독점하게 됐다.
그 결과 효율성이 증대되고 불필요한 비용이 줄어든 측면도 있을 터다. 그러나 부작용 역시 만만치 않았다. 네트워크·신뢰·정치참여·연대감 같은 사회적 자본이나 생태·환경 등은 수치로 나타내기 힘들다. 정치와 행정은 이러한 것들을 억지로 계량화하거나, 계량화 자체를 포기하면서 외면했다. 그렇게 공백이 생겼고, 그로 인한 피해는 대부분 사회적 약자에게 돌아갔다. 혹은 공동체 전체를 위협하는 위험 요소가 됐다.
사람들과의 관계와 그에서 비롯되는 신뢰는 한순간에 형성되지 않는다. 긴 호흡이 필요하다. 돈으로 살 수 없고, 마음을 얻어야 한다. 자본의 눈으로 봤을 때는 지극히 비효율적인 행위가 필요할지도 모른다. 그것은 일상을 주고받고, 함께 밥을 먹고, 공통의 문제를 논의하는 만남에서 시작된다. 당장 성과를 바라지 않은 채 말이다. 그렇게 만들어진 자산은 행정이 놓친 시민들의 욕구를 파악하고 필요한 자원을 연계하도록 돕는다. 그리고 시민들이 스스로 목소리를 내며 자립할 수 있는 기반이 된다.
“시민단체형 다단계” “시민단체 전용 ATM기” 등의 거친 말로 민관 협치 자체를 악으로 규정하고 허물려 해서는 곤란하다. 회계·인사 등에 미비한 점이 있다면 보완하면 된다. 코로나19와 같은 위기 상황일수록 현장과 맞닿아 시민들과 직접 호흡하면서 맺어 온 관계망이 중요하다. 가뜩이나 시민들이 움츠러들며 파편화되는데, 서울시가 앞장서서 시민들과의 접촉을 줄여서야 되겠는가.
공공이 자본의 논리에 잠식돼서는 안 된다. 기업에서는 성장 일변도의 기존 경영 방식을 반성하면서 ESG(환경·사회·지배구조)가 유행이다. 재무제표에 ESG 요소를 반영해 평가하려 한다. 물론 겉만 번지르르한 그린워싱인 경우도 많으나, 지속 가능한 성장과 상생을 위해 어느 정도 노력하고 있는 셈이다. 공공 역시 의사결정을 할 때 시민참여·노동·환경·인권 등을 더 적극적으로 고려해야 한다. 공동체가 함께 나아갈 수 있는 효율적인 선택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