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다윤 센터 청년활동가
건설업은 단연 산업재해 발생 1위 업종이다. 2020년 건설업 사고사망자 수는 458명이다. 약간의 감소세를 보이긴 하지만 사고사망자 수는 고용노동부 '2020년 산업재해 현황'에 따르면 지난 10년간 변함없이 400~500명대를 기록해 왔다.
지금 이 순간에도 매일 한 명 이상이 사고로 사망하고 있는 셈이다. 건설 노동자들은 안전하게 일할 권리를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 이처럼 산재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건설 현장, 어디서부터 잘못되었고 어떻게 바꾸어 나가야 할까. 대림동에 있는 건설노조 사무실에서 강한수 건설연맹 노동안전보건위원장을 만나서 이야기를 나눠보았다.
건설 산업 구조와 위험의 외주화
그러나 모든 통계수치를 일의 위험성 탓으로 돌리기엔 의문이 남는다. 해외에서는 건설업 산업재해가 이만큼 잦지 않다. 2017년 기준 OECD 35개 회원국 중 우리나라의 건설업 사고사망자 수는 2위이다. 한국건설산업연구원 'OECD 국가의 건설업 산재 사망사고 실태 비교 분석'(2020)에 따르면 근로자 10만 명당 사고사망자 수는 25.45명으로 OECD 35개 회원국(평균 8.29) 중 가장 높았다. 건설 현장은 충분히 안전할 수 있었다. 우리나라만 안전하지 못한 이유가 무엇인지 산업 구조를 들여다보았다.
건설업은 원하청 구조로 구성되어 있다. 쉽게 말해 외주를 주는 것이다. 일단 공사를 맡기는 발주자가 종합건설사라고 하는 원청업체에 일을 맡긴다. 그 밑에 원청업체와 하도급 계약을 맺은 전문건설업체가 있고 전문건설업체는 다시 작은 시공사에 하청을 준다. 외주화가 반복되는 것이다. 건설산업기본법 제29조에 따르면 하수급인은 하도급받은 건설 공사를 다른 사람에게 다시 하도급할 수 없다. 즉 전문건설업체까지 하도급을 받는 것은 허용되나 그 이하로 확장하는 것은 금지되어 있다. 노동자들은 1차 하청업체에 직접 고용이 되어야 한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대형 사고가 발생하지 않으면 적발되지 않을뿐더러 처벌이 미약해 불법 하도급이 공공연하게 이루어지는 실정이다. 불법 다단계 하도급이 일으키는 핵심적인 문제는 공사비 삭감이다.
건설 산업에서는 최저가 낙찰제가 적용된다. 최저가 낙찰제는 공사 입찰 시 가장 낮은 가격을 제시한 업체를 낙찰자로 선정하는 제도다. 경쟁이 붙으면 가격이 한없이 내려간다. 강한수 위원장은 "각 공사에 따라 적정한 공사 기간과 비용이 산정되어 있다. 그보다 낮은 가격으로 입찰을 하면 날림공사나 부실공사로 이어지기 때문에 최저 기준이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2015년부터 공공 공사에서는 원수급자가 하수급자에게 지급하는 하도급 대금이 공사 예정가의 82% 이상이 되도록 정하고 있지만, 민간 공사는 하한선이 없다.
하청을 줄 때마다 최저가 낙찰 방식을 택하다 보니 실제 공사를 진행하는 업체 손에 들어오는 금액은 몇 푼 되지 않는다. 이런 악순환 구조 속에서 일어난 것이 지난 6월 광주 재개발 참사이다. 이 철거 공사에서 다단계 가장 아래 단계의 건설사가 받은 공사 금액은 시공사가 받은 금액의 7분의 1에 불과했다. 이렇게 깎이고 깎인 금액은 책임감 있는 공사를 진행하기에 충분하지 않다. 안전관리자도 안전설비도 없이 그저 빨리 끝내는 데에만 급급하게 된다. 안전은 그야말로 먼 나라 이야기가 되어버린다.
원청업체 처벌을 강화하려는 시도
다단계 하도급과 최저가 낙찰제가 구조적으로 양산하는 사고들, 그 책임은 누구에게 있을까. 법이 지목한 책임자는 하청업체였다. 실질적으로 공사를 진행한 하청업체가 안전 관련 규정과 법을 제대로 지키지 않은 것이 문제라는 입장이다. 산업안전보건법은 사업주 등 관리자가 안전·보건 의무를 소홀히 해서 노동자가 숨지면 '7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억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원청업체가 처벌받는 경우는 극히 드물었다. 대법원 사법연감을 보면 2007~2016년 10년간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피의자의 형사재판 건수는 모두 5109건(1심 기준)이었으나, 이 가운데 징역형을 선고받은 경우는 0.5%인 28건뿐이었다. 절반 이상(3413건)이 벌금형이었고, 집행유예(582건)와 선고유예(194건) 판결도 많았다. 벌금형은 평균 400만 원 정도에 그쳤다. 솜방망이 처벌이라는 비판이 제기되는 이유이다.
그러자 책임과 권한을 가진 원청업체나 발주자가 처벌을 받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원청업체와 발주자가 제시한 무리한 기준에 맞추려다 보니 안전을 소홀히 할 수밖에 없다는 문제 제기였다. 우리 사회에 큰 파장을 일으켰던 일련의 사고들을 겪은 뒤 이런 생각이 보편적인 공감을 얻게 돼 여러 법안이 제정되었다.
2018년 개정된 산업안전보건법은 원청사가 안전, 보건 조치를 해야 하는 장소의 범위를 확대하고 법 위반에 대한 처벌 수준을 강화하였다. 구체적으로 건설업의 안전관리자 선임대상 공사 규모를 종전 120억에서 50억 이상으로 확대하였다. 2021년 새롭게 제정된 중대재해처벌법은 중대재해 발생 시 사업주, 경영책임자 등에 대한 처벌 강화를 골자로 하고 있다. 상시 근로자가 50인 이상인 사업장에는 2022년 1월부터, 5인 이상, 50인 미만 사업장(건설업의 경우 공사 금액 50억 미만의 공사)에는 2024년 1월부터 법이 적용된다.
법의 사각지대와 그 대안
수많은 노동자의 목숨을 딛고 탄생한 법은 원청의 책임 강화와 처벌을 위한 발판을 마련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그런데도 소규모 사업장을 외면했다는 명백한 한계를 지닌다. 산업안전보건법에서 총 공사 금액 50억 원 미만인 공사는 법적으로 전담 안전관리자를 두지 않아도 된다. 중대재해처벌법에서 상시 근로자 5인 미만인 사업장은 법의 적용대상에서 완전히 제외된다.
그러나 최근 5년간 건설업 사망사고의 67.3%는 산업안전보건법의 제외 대상인 공사 금액 50억 미만인 현장에서 발생했다. 고용노동부 '산업재해 사고사망자 통계'에 따르면 2020년 산업재해 사망사고 중 35.4%는 중대재해처벌법의 제외 대상인 5인 미만 사업장에서, 81.0%는 50인 미만 사업장에서 발생했다.
이처럼 소규모 사업장에서 일어나는 사고가 상당한 비율을 차지하는데도 불구하고 이들은 또다시 법의 사각지대에 놓이게 되었다. 강한수 위원장 역시 "중대재해처벌법에서 80%를 유예 혹은 제외한다는 면에서 사고를 줄이겠다는 의지가 없어 보인다. 중소 규모의 영세 업체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죽게 방치한다는 뜻 아닌가. 사람이 죽고 다치는 안전에 관한 문제에서 예외를 두면 안 된다. 법을 전면적으로 적용해야 한다"고 강경한 입장을 표명했다.
노조에서는 사각지대 문제를 해소할 건설안전특별법 제정을 요구한다. 건설안전특별법은 건설공사 과정에 참여하는 모든 주체에게 안전관리 책임을 부여하고, 이를 지키지 않아 사망사고가 발생하면 형사 책임을 묻겠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발주자는 안전한 공사가 가능하도록 하는 공사 적정기간과 비용을 제공해야 한다. 아무런 제약 없이 하도급 계약을 맺던 민간 공사의 경우에도 공사 기간과 공사비용이 적정한지를 인허가 기관에 검토받도록 했다.
원청업체는 안전관리 책임자로서 안전 시설물을 직접 설치하고 위험작업이 현장에서 동시에 추진되지 않도록 조정해야 한다. 감리자는 시공자가 설계도서, 안전관리계획서 등에 명기된 안전규정을 준수하는지 확인하고 사고가 우려되는 경우 공사를 중지해야 한다. 건설안전특별법이 제정된다면 발주자가 적정 공사비를 보장하고 적정 공사 기간을 제공하게 해 무조건 빠르게만 하려다 발생하던 산업재해를 줄일 수 있다. 건설업 구조 문제의 본질에 더 가까이 접근하는 법안이다.
건설안전특별법은 기존 법안과의 중복 문제와 정부 부처(국토교통부, 고용노동부) 간 권한 충돌 문제로 계류 상태에 있었으나 광주 참사 이후로 주목을 받으며 재발의되었다. 여당에서 신속하게 처리하겠다고 밝힌 만큼 앞으로의 진행 상황을 주의 깊게 지켜볼 필요가 있다.
죽음을 수반하지 않는 변화를 희망하며
건설업의 끊임없는 산업재해 원인을 파고들어 발견한 문제는 생각보다 거대했다. 산업재해는 단순히 노동자가 안전 수칙을 지키지 않아 발생하는 문제가 아니었다. 건설 산업의 뿌리 깊은 관행으로 자리 잡은 다단계 하도급과 최저가 낙찰제, 재해 발생 시 원청에 대한 가벼운 처벌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낳은 불가피한 재해다. 구조적인 문제에는 구조적인 해결책이 필요하다. 법적인 변화가 필요하다는 말이다. 법이 모든 것을 해결해주지는 않지만, 법 없이 구조를 개혁하기도 힘들다.
그래서 현장의 노동자들은 지난 몇 년간 산업안전보건법과 중대재해처벌법 제정, 시행을 위해 투쟁을 거듭하였다. 타성에 젖은 사람들, 이해관계가 충돌하는 사람들의 반대에 부딪혀 예외가 존재하는, 불완전한 법안으로 남았지만 안전한 건설 현장을 만들기 위한 노력은 계속될 것이다. 건설안전특별법 제정이 그 일환이다. 비록 속도는 느릴지라도 옳은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고 믿는다.
그동안 논의의 도화선에 불을 붙여 법 제정을 추진시킨 원동력은 상징적인 노동자들의 죽음이었다. 2016년 구의역 노동자 김군, 2018년 태안화력발전소 노동자 김용균씨, 2019년 건설 노동자 김태규씨, 2021년 경기 평택항 노동자 이선호씨까지. 이름 모를 수많은 노동자의 죽음을 대표하는 이들의 죽음은 우리 사회에 경각심을 일깨우고 논의를 촉발했다. 하지만 큰 사고가 발생할 때마다 등 떠밀리듯 일보 전진하는 방식은 이제 그쳐야 한다. 앞으로는 노동자들의 비극적인 죽음을 수반하지 않고도 논의를 지속하고 변화를 만들어가는 사회가 되기를 희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