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병길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상임활동가
지난 17일 한국비정규노동센터에서 자원활동 중인 자원활동가들과 서울 대림역 인근에 있는 전국건설노조 사무실을 방문했다. 비정규 노동자나 활동가를 인터뷰하고 글로 정리하는 자원활동의 일환이었다. 자원활동가들은 산업재해에 관심이 많았다. 그래서 산재 사망사고가 가장 빈번하게 발생하는 건설업을 알아보기로 했다.
건설업의 산재 현황·원인·대책 등에 관해 인터뷰했다. 건설업은 산재 문제가 가장 심각한 산업이다. 고용노동부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산재 사고사망자에서 건설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무려 51.9%다. 그리고 공사금액이 낮은 건설 현장일수록 산재에 더 많이 노출된다. 강은미 정의당 의원은 올해 7~8월 건설업에서 발생한 중대재해가 50건이라고 발표했다. 이중 공사금액이 50억원 미만인 곳은 37곳으로 전체의 74%였다.
인터뷰이는 건설업 산재의 주된 원인으로 불법 하도급을 꼽았다. 발주사-원청-전문건설업체까지의 합법적인 구조에 그치지 않고 더 밑으로 재하도급이 이뤄지는 게 현실이다. 업체마다 이윤을 남기려 하다 보니 공사비를 줄인다. 인력을 축소하고, 공사 기간을 억지로 단축하며, 안전장비를 제대로 설치하지 않는 방식으로 말이다.
인터뷰 내내 답답했다. 매년 이렇게 많은 사람이 죽고 다치는데 왜 제대로 개선하려는 움직임이 없을까. 50억원 미만 건설 현장에는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중대재해처벌법) 적용이 2024년 1월까지 유예됐다. 50억원 미만의 건설 현장에서 중대재해가 절반 이상 발생하는데도 말이다. 업체가 영세하다는 건 이유가 될 수 없다. 사람 목숨이 달린 일이다. 차라리 다른 방식으로 업체를 지원하거나 비용을 줄일 방도를 찾았어야 했다.
자원활동가가 질문했다.
“산재 문제가 정말 심각한데 사람들의 관심이 부족하다. 학생으로서, 또 시민으로서 연대할 방법이 무엇이 있나.”
어려운 질문이었다. 길을 걷다 보면 크고 작은 건설 현장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주택이나 빌라부터 아파트·학교·도로 등까지. 그러한 곳에서 많은 사람이 떨어지고 깔리고 치여 죽었다. 막을 수 있었던 억울한 죽음이 무수했을 것이다. 왜 그들의 죽음이 우리의 죽음으로 인식되지 못하고 변화로 가닿지 못하는가.
어제 쌓였고, 오늘 쌓이고, 내일 쌓일 그들의 죽음이 우리에게는 그저 잠깐 지나치는 일상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그것은 어느 뉴스 속의 숫자에 그친다. 어찌해 우리를 생각하게 한다 해도, 움직이게 하지는 못한다. 산재 사고로 매년 900~1천명의 노동자가 죽는다. 하지만 전체 취업자가 2천700만명이 넘고, 산재는 특정 산업이나 업종에서 집중적으로 발생하니 나의 일이 아니라고 여기기 쉽다.
그러나 누군가는 오늘도 일터에서 죽고 있다.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당사자에게 확률은 그냥 100%다. 숫자는 무의미하다. 너무나도 생생하고 구체적이어서 지독한 현실만이 남는다. 가족이나 친구에게, 나아가 나에게 다가온 죽음은 등골을 서늘하게 만든다. 그럴 때면 우리는 삶이 무엇인지 되돌아본다. 죽음을 마주하지 않고는 내가 살아있으며, 그래서 언젠가는 죽을 존재라는 사실을 온전히 이해하고 느끼기 힘들다. 참 아이러니하다.
우리는 가끔 잔잔한 호수에 돌을 던져야 한다. 그저 숫자로 쌓이기만 하는 죽음처럼 하루하루 축적되는 시간은 삶을 이야기할 수 없다. 일부러 위험에 뛰어들어 죽음에 직면해 보라는 게 아니다. 앞만 보고 달리지 말고, 죽음과 삶을 진지하게 성찰해 보자는 것이다. 상상력도 필요하다. 죽지 않고도 죽음을, 삶을 다 살아 내지 않고도 삶을 경험할 수 있는 방법이다.
인간을 탐구하고 그리다 보면, 타인의 죽음 앞에서 멈칫하는 순간이 잦아질 것이다. 그것은 그들의 죽음이 점차 우리의 죽음으로 가닿고 있다는 변화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