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접고용 비정규직 문제, 재벌이 책임져라
이남신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소장 (매일노동뉴스 / 2016.2. 11}
▲ 이남신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소장 |
새해 벽두부터 변함없이 비정규 노동자들의 시련이 시작됐다. 저성과자 해고 지침을 기다렸다는 듯 도처에서 노동자들이 잘리고 있다. 차별은 이제 차별로 인식되지 못할 정도로 전면화됐다. 헬조선은 비정규 노동자들에겐 이제 일상이다. 4월 총선을 앞두고 정치권에서 이런저런 호언장담이 넘치지만 정직한 현실에 비춰 보면 기대난망이다. 다시 고통받는 당사자들이 나서지 않고선 그 무엇도 진정성 있는 개선을 기대할 수 없는 형국이다.
공공부문에선 부족하나마 공익적 모범사용자 지위에 선 지자체장들의 좋은 일자리 만들기가 점차 확산되고 있다. 중앙정부가 미온적이고 소극적이긴 하지만 지방정부가 앞장서 상시·지속 업무 비정규직 정규직화와 생활임금 확대를 중심으로 공공부문에선 비정규직 문제 개선의 실마리가 조금씩 풀려 가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민간부문은 요지부동이다. 오히려 사태가 악화되는 실정이다. 무엇보다 좋은 일자리 만들기에 앞장서야 할 재벌 대기업의 묻지마 역주행이 심상찮다.
대통령이 앞장선 서명운동에 맨 먼저 조직적으로 동참한 삼성그룹이 노동탄압에도 선봉으로 나섰다. 지난해 연말 고용노동부의 2대 행정지침 의견수렴 간담회가 끝나자마자, 삼성전자서비스 외주하청업체에서 저성과자 일반해고 규정의 사업장 도입이 노골화됐다. 올해 1월1일 동대문센터에서 ‘징계기준 보완’ 공고가, 영등포센터에서는 ‘월간 기본실적 관리를 통한 저성과자 분류’ 공지가 나왔고, 아산센터에서는 ‘2016년도 1분기 분기평가 항목 및 기본전략’이 게시됐다.
결국 가장 치열하게 투쟁했던 영등포센터에서는 현 분회장과 전 분회장이 1차 징계해고 통보를 받았다. 정해진 각본대로 진행된 명백한 부당해고이자 부당노동행위다. 노동조합 무력화 의도가 있지 않고서는 지방노동위원회에서 패소할 것이 명백한 해고 등을 이렇게 남발할 이유가 없다. 원청 사주가 없이 이런 무리수를 두긴 어렵다. 삼성전자서비스 최우수 대표이사가 부임한 뒤 벌어진 양상이다.
태광그룹 케이블방송인 티브로드에서도 노사관계가 파국으로 치닫고 있다. 2014년 원·하청 노사상생협약을 맺은 사업장이지만 원청과 외주하청업체 모두 임단협으로 체결한 임금인상을 무력화시키고 희망퇴직을 강요하는 등 노조탄압을 자행하고 있다. 티브로드를 위해 십수 년을 헌신한 노동자들은 센터 교체 및 계약 실패에 따른 폐업 등으로 인해 하루아침에 길거리로 내몰렸다. 신규 업체들은 1개월에서 3개월까지의 수습기간을 내세우며 임금을 포함한 근로조건 하락을 시도하고 있다. 기존 인력을 핑계로 각 지역에서 고객서비스를 진행해 온 노동자들의 고용승계를 거부하는 등 심각한 고용불안을 야기하고 있다. 게다가 이 과정에서 노조간부 2명이 일방적으로 근로계약 체결을 거부당한 후 부당하게 해고됐다.
간접고용 비정규직을 양산한 불법적인 다단계 하도급 구조가 노조탄압과 맞물리면서 부당노동행위가 극심해지고 있다. 노조조차 없는 비정규 노동자들과 중소·영세 사업장 노동자들의 처지는 거센 바람 앞에 촛불 신세다. 결국 광범위한 사회연대네트워크와 맞물린 당사자들의 공동투쟁만이 암울한 현실을 변화시킬 수 있다. 한 사업장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다. 간접고용 비정규직은 실제 결정권한이 있는 원청 사용자의 법적 책임이 합법적으로 면탈될 수 있어 합의서가 휴지 조각이 되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특히 삼성과 SK·LG·태광 등 재벌 대기업 사업장에서 노동조합을 결성하고 싸워 온 간접고용 비정규 노동자들이 다단계 하도급 구조 근절과 직접고용 정규직화를 핵심 목표로 손을 맞잡아야 한다. 재벌의 사회적 영향력이 날로 막강해지고 있으므로 비정규 노동자들도 단결의 수준을 비약적으로 높여야 맞대응이 가능하다.
장안에 화제가 된 영화 <내부자들>을 보면 현실과 똑같아 혀를 내두르는 장면이 여럿이다. 그중 미래자동차(현대자동차가 금방 떠오르는 이름) 회장에게 국회의원이 비정규직 관련 입법 걱정하지 마라고 아부하는 모습에서 현기증이 일었다. 뿌리산업 파견 확대를 통해 온갖 불법적인 간접고용 비정규직을 양성화하고 합법화하려는 정부와 새누리당의 행태가 흡사하기 때문이다. 지난 몇 년간 진짜 사장 나오라고 줄기차게 싸웠다. 이제 진짜 사장이 책임지게 해야 한다. 재벌에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