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조합운동, 혁명적 수준으로 변화해야"
한국노총 '총선 이후 정세전망과 노동조합운동의 과제' 토론회 개최
▲ 한국노총 주최로 10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총선이후 정세전망과 노동조합운동의 과제 토론회에서 고원 전 서울과학기술대학교 교수가 발제하고 있다. 정기훈 기자 |
20대 국회가 여소야대로 재편되면서 정치·경제·사회 전반에 변화를 기대하는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다. 이번 총선 결과로 "변화는 이미 시작됐다"고 보는 시선도 있지만 아직까지 신호는 잡히지 않는다.
변화를 거부하는 힘도 만만치 않다. 정부·여당은 공공기관 성과연봉제·퇴출제를 밀어붙이고 있고, 또 한 손에는 기업 구조조정 칼자루를 쥐고 휘두르고 있다. 경제위기는 노동자 책임으로 역치됐다.
노동운동진영의 정책 개입력은 여전히 미미하다. 투쟁동력은 해마다 약화되고 있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유노조와 무노조 사업장의 격차는 나날이 벌어지고 있다.
한국노총과 김영주 국회 환경노동위원장이 10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 제2소회의실에서 '총선 이후 정세 전망과 노동조합운동의 과제'를 주제로 개최한 기획토론회에서도 이 같은 문제의식이 공유됐다. 이날 토론회는 16년 만에 여소야대 정국을 연출한 20대 국회를 맞이해 정치·경제·노동·사회 등 전 분야에 걸쳐 정세를 전망하고 이를 바탕으로 노동조합운동 과제를 모색하기 위해 마련됐다. 토론회 참석자들 모두 "혁명적 수준의 노동조합운동 변화"를 주문했다.
◇"87년 체제 붕괴, 노조도 발상 전환해야"=20대 총선 이후 정치정세와 노동조합운동의 과제'를 발제한 고원 전 서울과학기술대 교수(정치학)는 이번 총선 결과를 '87년 체제'의 붕괴로 봤다. '87년 체제'는 1987년 6·29 선언으로 대통령 직선제가 도입되면서 형성된 정치체제로, 대통령 5년 단임제·소선거구제·지역주의에 기댄 양당제를 기둥으로 한다.
고원 전 교수는 "국가가 2~3년 내에 망하는 것 아니냐는 절박한 경제위기 의식과 불평등·양극화·저성장·일자리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87년 체제에 대한 공격·분노가 이번 총선 결과로 나타났다"고 진단했다. 고 전 교수는 "대중이 87년 체제를 정면으로 문제제기한 만큼 87년 체제를 대체할 새로운 비전과 전략을 제시하기 위해선 노동조합운동도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그는 "사회구조적 흐름을 바꾸기 위한 사회적 합의를 도출해 내기 위해서는 노동조합운동이 선제적으로 기득권을 내려놓는 게 필요하다"며 "자기 문제만 해결하기 급급한 이익집단의 모습을 넘어 한국 사회·경제 전반과 정치개혁 문제까지 능동적 해결자로서 나서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노동조합운동이 당장 눈앞에 닥친 경제 구조조정에서부터 전향적인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며 "고용유지에만 집착해 구조조정을 회피하거나 사내하도급·비정규직 노동자부터 잘라 내려고 시도하는 것은 결국 노동조합운동의 입지를 축소시키는 결과를 가져오기 때문에 스스로 기득권을 내려놓는 자구노력과 함께 비정규직이나 파견근로자를 끌어안는 모습을 보이면서, 정부와 사회의 참여·협력을 요구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그는 또 "정부·여당이 추진해 온 친재벌·반노동 정책에 대한 최선의 대응은 포용과 나눔과 참여 전략"이라며 "사회구조개혁을 둘러싼 사회 전반의 논의와 의사결정 과정에 폭넓게 개입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미조직 노동자·자영업자 대변자 역할 필요"=이병훈 중앙대 교수(사회학)는 지난 2014년 8월부터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는 노동시장 구조개혁 국면에서 보여 준 양대 노총의 대응을 비판적으로 평가했다. 이병훈 교수는 "한국노총은 9·15 노사정 합의를 하면서 정부가 문제 법안 입법화와 행정조치를 추진하는 데 명분을 제공했고, 민주노총은 파괴력을 상실한 총파업과 집회투쟁을 남발했다"고 주장했다. 이 교수는 그러면서 "정부주도의 노동시장 유연화정책을 저지하고, 노조운동이 제안하는 노동보호 강화라는 개혁정책을 추진하기 위해서는 기존의 식상한 운동방식과 전통적인 투쟁 레퍼토리에서 벗어나 대중적 공명과 교감을 만들어 줄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노동개혁과 산업구조조정의 정책적 개입력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조직된 조합원의 이익보호를 넘어 미조직의 비정규·영세기업 노동자와 자영업자·미취업 청년을 적극적으로 대변하려는 사회운동적 실천기조를 분명히 표방해야 한다"며 "노동소득 확대나 좋은 일자리 창출, 일·가족 양립 등의 친노동적 의제를 적극 공론화해 노동개혁의 큰 흐름을 재구성하는 것도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양대 노총, 최저임금 1만원 내걸자"=토론자로 나선 이남신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소장과 박성국 매일노동뉴스 대표는 "양대 노총이 최저임금 인상 문제를 제기해야 한다"고 한목소리를 냈다. 박성국 대표는 "총선 후 구조조정 담론이 지배적인 상황에서 그간 정부·여당이 제기해 온 정규직 책임론이 재부상할 가능성이 높다"며 "양대 노총이 이를 극복하려면 최저임금 인상 문제를 적극 제기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최저임금 이슈로 정규직과 비정규직·저임금 노동자가 연대하는 구도를 형성하고, 이를 통해 '묻지마 구조조정' 프레임에서 벗어나자는 것이다.
이남신 소장은 '최저임금 1만원을 위한 양대 노총 공동총파업'을 제안했다. 이 소장은 "최저임금 인상은 대선을 앞두고 양대 노총 공조를 실현할 최적의 사회적 이슈이자 양대 노총이 투쟁과 교섭을 병행할 수 있는 임금 이슈"라며 "최저임금 대폭 인상이 사회적 노동이슈로 부각된 상황에서 양대 노총 공동총파업이 성사되면 엄청난 파장을 일으킬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 소장은 "모든 노동자에게 노조를"이라는 캐치프레이즈로 노조 조직화 캠페인을 진행하자고 주장했다. 그는 "노동 3권이 사문화되다시피 한 비정규직과 중소 영세사업장 노동자 조직화를 위한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다"며 "노조가 가장 필요한 당사자에게 노조가 가장 멀리 있는 아이러니한 현실을 바꾸자"고 강조했다. 그는 "기존 진보대통합 수준을 뛰어넘어 노동자와 '을'들의 연대가 실현되는 참신하고 담대한 노동정치를 기획하고 실행할 때"라고 덧붙였다.
◇김동만 위원장 "정부, 국정운영 큰 그림이 없다"=김동만 한국노총 위원장은 이날 토론회 인사말에서 "박근혜 정권은 국정의 그랜드 디자인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위원장은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 3년은 탄압에 맞서 노동운동의 조직적 사활을 건 힘겨운 투쟁의 연속이었다"며 "지금도 노정관계는 불통과 불신으로 최악의 상태에 도달해 있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김 위원장은 "정부는 위법한 2대 행정지침과 노사관계 개입을 통해 해고를 더욱 쉽게 하고 공공부문에 성과연봉제·퇴출제 도입을 밀어붙이려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는 "최근 조선·해운업종에 구조조정 쓰나미가 예고되는데도, 정부는 사회안전망을 어떻게 강화할지, 실업은 어떻게 최소화할지 신경도 쓰지 않고 있다"며 "정부가 그랜드 디자인을 해 국정운영을 하라"고 촉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