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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권 장관님, 약속을 지키세요
(이남신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소장)
▲ 이남신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소장 |
2016년 최저임금 시급 6천30원(월급 126만원). 입에 단내 나도록 되뇐 숫자다. 결국 내수 진작과 소득격차 해소를 강조하며 최저임금 인상을 주문한 최경환 경제부총리와 이기권 고용노동부 장관에게 속았다. 한 자릿수 인상에 그칠 거면서 무에 그리 최저임금을 앞장세웠나. 경제민주화를, 복지를 식언한 박근혜 대통령과 똑 닮았다. 자신을 대변할 조직이 없는, 정치적 무권리 상태에 놓인 저임금 노동자들을 정부가 묵살했다. 수많은 취약계층 저임금 노동자들이 그리 우습단 말인가.
노동자위원 전원이 퇴장한 상태에서 공익위원들과 사용자위원들이 일방적으로 결정해 버린 것도 문제가 크다. 시급-월급 병기에 반대하며 사용자위원들이 퇴장하고 다음 전원회의에 불참했을 때 의결을 할 수 있었음에도 노동자위원들은 다음 차수로 넘겨 처리했다. 그런데 가장 중요한 인상 수준을 결정하는 데 노동자 대표들의 의견을 반영할 기회를 주지 않았다. 형평성에도 맞지 않다. 더구나 올해는 최저임금 적용 당사자들을 대표한 노동자위원들도 있어 회의 진행을 책임진 위원장이 더욱 신중했어야 했다. 결정 시한이 7월15일까지라 여유도 있었다. 결국 최저임금위원회는 또 다시 밀실회의에 공익위원이 칼자루를 쥔 기형적 구조라는 비판에서 벗어나기 힘들게 됐다.
정부는 첫 6천원대 턱걸이 인상을 힘줘 홍보한다. 내수 진작을 통한 경제 선순환이 가능한지, 정규직 대비 절반 이하에 머무르고 있는 비정규직의 임금 격차를 줄일 수 있는지 따져 보기나 했는지 궁금하다. 남우세스럽게 영세 자영업자들을 걱정한다. 영세 자영업자와 중소기업 지불 능력 문제는 골목상권 보호와 카드수수료 및 고율의 가맹점 수수료 인하, 원하청 불공정거래 시정 등 대기업의 사회적 책임 노력 여하에 달려 있다. 낙수 효과가 사라지고 고용 창출 기여도가 현저히 낮은 대기업 때문에 이런 문제들이 구조화됐다. 경제민주화 문제로 별도 대책을 마련해야지, 최저임금 대폭 인상을 막는 빌미가 될 수 없다. 최저임금 인상을 통한 구매력 증가는 자영업자들의 수익률을 높이고 과당경쟁을 해소하는 중장기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8월5일 노동부 장관의 고시까지 20여일 남았다. 이기권 노동부 장관은 소득격차 해소를 위해 최저임금 인상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맞는 말이다. 1988년부터 지난해까지 최저임금 평균 인상률이 9.8%다. 노태우 정부와 노무현 정부 때만 두 자릿수 인상했고, 김대중-김영삼-이명박-박근혜 정부 아래선 한 자릿수 인상에 그쳤다. 지금 한국 사회 노동시장 양극화로 인한 임금격차는 역진불가 양상으로 증대돼 왔다. 통계상으로도 2000년 이후 단 한 해도 격차가 줄어들지 않고 점증해 왔다. 노동조합 바깥에 있어 아무런 임금 협상력도 갖지 못한 미조직 비정규직과 중소영세사업장 노동자들의 처지를 떠올리면 암담하다. 현재로서는 최저임금 대폭 인상만이 격차 해소를 해 낼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정책 수단이다.
최소한 두 자릿수 이상 인상률로 최저임금을 올려야 마땅하다. 저임금 노동자들의 삶의 질 제고는 물론이고, 내수 진작을 통한 경제 살리기와 소득격차 해소를 통한 사회통합 제고 효과까지 최저임금 대폭 인상의 사회적 의미는 대단히 크다. 비정규 노동자들과 영세 자영업자가 함께 사는 길이기도 하다. 최저임금위 공익위원들이 걷어차 버린 ‘공익’을 정부가 되살려야 할 때다. 1만원 최저임금 인상 요구가 사회적 반향을 불러일으킨 이유를 곱씹어 봐야 한다. 올해 최저임금위가 발주한 연구보고서에 따르면 단신 노동자 실태생계비가 155만원이다. 공공부문 최저임금격인 시중노임단가가 시급 8천19원이다. 지방정부가 주도하고 있는 생활임금 수준이 6천50원에서 7천184원이다. 어디를 둘러봐도 한 자릿수 인상률이 터 잡을 명분일랑 없다.
이 정도 찔끔 인상으로는 구매력을 높이기도 어렵고 소득격차 해소는 애당초 불가능하다. 내년에 더 악화된 양극화 구조 속에서 더 높은 인상이 불가피할 최저임금의 족쇄를 올해 풀어야 한다. 딸랑 450원 인상으로는 정부의 주문도 무산될 뿐만 아니라,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시름과 영세 자영업자의 고충도 깊어질 수밖에 없다. 7월16일 양대 노총과 노동자위원들이 이의제기 신청을 통해 마지막 시정 노력을 한다. 실낱같지만 희망을 버리진 않겠다. 아직 끝나지 않았다. 최저임금 대폭 인상 기대를 한껏 높인 정부가 다시 책임질 때가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