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저임금 수준이 돼 버린 최저임금위원회 위상
이남신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소장 (매일노동뉴스 / 2015. 6. 25)
▲ 이남신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소장 |
노동자위원 : 잘못한 게 있으면 사과하는 게 맞다. 노동자 폄훼하는 발언이었다.
사용자위원 : 훈계하냐. 내가 너한테 훈계하고 싶다.
노동자위원 : 공식적으로 사과해라.
사용자위원 : 못한다. 나이도 어린 놈이.
지난 23일 최저임금위원회 제6차 전원회의의 한 장면이다. 나이 지긋한 한 사용자위원의 지속적인 노동자 폄하와 왜곡에 대해 여성 노동자위원이 문제를 제기하자 사용자위원이 막무가내로 자신을 변호하며 막말을 하는 지경까지 이르렀다.
사용자위원이 격한 감정에 내뱉은 말일 수 있다고 넘어가야 하나. 이전 전원회의에서도 노동자들에 대해 함부로 표현해 여간 불편한 게 아니었다. 걸핏하면 나이를 앞세우거나 맥락 없는 비방으로 치닫기도 했다. 전체 노동자를 대표해 나온 노동자위원에게 이렇게 함부로 '놈'이라고 괄시한 사용자가 일터에서 어떤 모습일지 짐작이 간다. 공식적인 최저임금위 회의에서 오가는 발언 수위를 보면서 최저임금 인상하면 무엇하나 하는 자괴감이 들 정도다. 최저임금위 위상을 스스로 격하하는 사용자위원들은 노동인권 교육부터 제대로 받아야 한다.
다른 사용자위원은 최저임금이 고졸 남성 임금, 이주노동자가 받으면 되는 수준의 임금이라고 단정했다. 중앙정부가 결정하는 최저임금이 너무 낮아 지방정부가 발 벗고 나서 주도하고 있는 생활임금과 정부가 용역근로자 보호지침으로 권장한 시중노임단가(시급 8천19원)는 사용자위원들의 안중에도 없다. 대졸자가 80%를 넘는 현실 변화에 눈감은 사용자위원들의 뇌리에는 최저임금이 기아임금이 아니라 법정임금으로서 인간답게 먹고살 만한 수준의 생계비이자 사회임금이라는 인식이 발붙일 곳이 없다.
더구나 230만명에 이르는 최저임금 미달자를 떠올리면 위반과 불법을 개의치 않는 사용자 인식을 바로잡지 않고서는 최저임금 인상의 긍정적 효과는 가뭇없이 사라지기 십상이다. 노사가 최저임금 인상 수준을 다투는 일이야 당연한 절차겠지만, 인상된 최저임금 사각지대를 해소하는 일은 공동의 과제다. 사용자위원들이 최저임금으로 살아 보면 달라질까.
25일 제7차 전원회의는 내년 최저임금이 결정되는 최저임금위 마지막 회의다. 회기가 연장되더라도 법정 시한이 6월29일이니 불과 며칠 안 남은 셈이다. 정부가 초동대응을 엉망으로 하면서 일파만파 커진 메르스 사태로 최저임금 논의도 여론의 온당한 주목을 받지 못한 채 막바지에 이르렀다. 미달자와 적용 당사자를 포함해 최소 400만명이 넘는 저임금 노동자들의 기준임금이 결정되는 중차대한 사회적 교섭인데도 논의 내용과 쟁점이 국민에게 잘 알려지지 않고 있다. 얼마 남지 않은 기간이지만, 특히 최저임금 적용 당사자들이 자신의 임금 결정 과정과 내용을 알 수 있도록 최저임금위 사무국이 대국민 홍보에 각별한 신경을 써야 할 때다.
설마 했는데 사용자위원들은 올해도 변함없이 9년째 동결안을 냈다. 최저임금을 올려야 한다는 세계적 추세나 정부 의지와 맞짱 뜨는 모양새다. 거기에다 연례행사처럼 설득력 없는 업종별 최저임금 차등적용을 주장하고 나섰다. 그러면서 공익위원이 제출한 합리적인 시급-월급 병기안에 대해서는 논리적 근거 없이 지금까지 떼어먹은 주휴수당이 들킬까 봐 반대한다. 생계비 기준으로 1인 단신가구와 함께 가구생계비를 통계 기준으로 삼자는 노동계 제안은 치열한 논란을 거쳐 마지막 전원회의까지 넘어갔다. 결국 꽤 많은 쟁점을 매듭지은 후에나 최저임금 인상 수준을 둘러싼 논의에 들어갈 수 있어 갈 길이 멀다. 올해 최저임금은 정말 얼마나 오를 수 있을까.
물가가 꽤 높은 유럽 주요 도시와 서울의 최저임금 구매력을 장바구니 물가 기준으로 비교해도 우리나라 최저임금이 비정상적으로 낮다는 것이 확연하게 드러난다. 프랑스에서 구입한 최저임금 두 시간치(약 2만5천원) 먹을거리를 한국에서 구입해 보니 대략 최저임금 10시간치에 해당하는 5만8천원이 들었다. 프랑스는 빵과 고기를 먹고 한국은 밥과 국을 먹기 때문에 해당 먹을거리의 시장가격은 다를 수 있고 용량에서도 미세한 차이가 있지만 최저임금 2시간과 10시간 사이의 간극이 너무 크다. 우리나라 최저임금이 너무 낮다는 말이다. 선진국 그룹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국으로 노동시장 양극화가 극단적으로 심화돼 온 우리나라에서 최저임금 대폭 인상은 다 함께 사는 길이다. 영세 자영업자 지불능력에 대한 보완대책은 필요하겠지만, 최저임금 시급 1만원(월급 209만원)은 그리 높지 않은 요구다. 사용자위원들이 바닥까지 떨어뜨린 최저임금위 위상을 공익위원들이 전 국민적 공감대에 걸맞은 최저임금 인상을 통해 높여 주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