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관기④] 최저임금위원회 속 막장 드라마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정책부장 최혜인
최저임금위원회, 갈 길이 바쁘다. 내년도 최저임금을 심의·결정하는 법정 시한은 6월 25일로, 하루를 남겨두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지난 전원회의에서 논의를 마치지 못한 최저임금결정 단위, 사업의 종류 별 차등 적용 여부를 매듭짓고 최저임금 수준을 결정하는 데 집중해야 한다. 그리고 그렇게 되리라 예상했다. 결론부터 말하면 6시간 넘게 회의 했지만 아무 것도 결정하지 못했다.
최저임금 결정단위, 월급단위 병기 반대는 주휴수당 숨기기 위한 의도?
최저임금위원회 위원장은 지난 전원회의와 마찬가지로 최저임금 결정 단위와 사업의 종류 별 구분 여부를 논의·결정하자고 했다. 지난 회의와 비슷한 논의가 오갔다. 공익위원은 주휴수당이 미지급 되는 등 최저임금제도의 한계를 지적하며 시급과 월급을 병기하여 사용자에게는 주휴수당 지급 의무를 알리고, 노동자에게는 주휴수당의 존재를 알려야 한다고 했다. 노동계도 이에 찬성했다. 공익위원이 잘 설명 했듯이 시급과 월급을 병기하여 최저임금을 고시하면 잘 몰라서 주휴수당이 지급되지 않는 문제를 예방할 수 있다. 또한 근로기준법의 올바른 정착을 유도하는데 곧바로 효과를 발휘할 수 있다. 그러나 사용자위원은 강하게 반발했다.
사용자위원9 : 당혹스러운 주장이다. 최저임금 미만 노동자의 87%가 영세중소기업에 근무하고 있다. 영세중소기업은 40시간 풀타임보다 다양한 형태의 시간으로 일하고 있을 거다. 특히 월40시간이라고 하더라도 개별 기업의 노-사 합의에 따라 209시간이 안 나올 수도 있다. 때문에 월급을 병기해서 규율하는 건 어렵다. 그리고 지금까지 시급만 써왔기 때문에 월급을 병기했을 때 사업장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에 대한 데이터가 없다. 갑자기 바꾸면 굉장히 큰 파급효과가 올 거다.
사용자위원4 : 실제로 노동자를 고용하신 분은 여기에 많지 않다. 안 해본 사람은 모른다. 어떤 문구 하나만 노동자에게 유리한 쪽으로 가면 그쪽으로 끝나버리는 거다. 월급을 병기하면 다 월급으로 가자고 한다. 실제로 경영 해봤나. 여러 가지를 생각해서 중장이 대책으로 가면 모르겠지만, 오늘 할 건 아니다.
사용계의 반대논리에 동의할 수 없었다. 공익위원이 시급과 월급단위 병기를 제안한 건 근로기준법 상 유급주휴수당을 알리고 잘 지키자는 취지다. 단시간 노동자에게 209시간치 임금을 주자는 것도 아닌데, 사용자위원은 엉뚱한 얘기만 했다.
아이러니한 건 사용계의 최저임금수준 최초요구안에는 시급과 일급을 병기했다. 전일제와 단시간 노동자가 혼재되어 있는 노동시장에 혼란을 줄 수 있다는 이유로 시급 표기만을 주장했던 것과는 대비된다. 일급은 병기하면서 월급은 절대 병기할 수 없다는 사용자위원의 모습 속에, 그들이 우려하는 게 무엇인지 명확히 보였다. 주휴수당을 줘야한다는 걸 모른 척 하고 싶은 속내 말이다.
최저임금 사업 종류 별 차등 적용, 근거자료 여전히 빈약
지난 전원회의에서 사용자위원은 사업의 종류 별로 최저임금을 차등 적용해야 할 필요성을 피력했지만 공감할 만한 근거를 제시하지 못했다. 이번 회의에는 6쪽 짜리 근거 자료를 갖고 왔다.
사용자위원9 : 자료를 보면 도소매업, 운수업, 숙박음식업 등 다섯 개 업종은 최저임금 영향률이 높고 노동생산성이 낮고 경영지표가 나쁘다. 그리고 타 업종에 비해 임금 수준도 낮은 저임금 업종이다. 이러한 지표들이 해당 업종들의 지불능력이 떨어진다는 걸 보여준다. 때문에 최저임금 차등 적용이 필요하고 사용계가 구체적으로 안을 제시했기 때문에 이정도 수준에서 업종을 구분해야 한다.
노동자위원4 : 영세자영업자가 어렵고 최저임금 노동자가 어려운 건 사회적 약자들이 갖고 있는 공통된 문제다. 최저임금을 갖고 사회적 약자끼리 대립하는 건 옳은 방향이 아니다. 최저임금 차등 적용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최저임금은 사람의 기본권이고 생존권이고 인권이다. 현장의 조합원에게 차등적용에 대한 의견을 물어보니, 새로운 신분제가 아니냐고 했다. 부모의 직업에 따라 아이들의 먹을거리, 교육 수준도 달라지고 있다. 최저임금 당사자라는 것만으로도 박탈감이 큰데, 그것마저 차등한다는 건 국가에서 해서는 안돼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약자들 간의 싸움으로 붙이는 건 최저임금위원회에서 하지 말았으면 한다.
사용자위원5 : 최저임금만 올리는 게 능사는 아니다. 최저임금 결정보다 중요한 게 사업 별 차등 적용이다. 차등적용은 학습, 자격증, 무자격증으로 구분해야 한다. 4년제 대학을 졸업한 노동자와 기술 없는 주유원, 편의점 알바, 패스트푸드점 배달 등의 노동자와 최저임금을 똑같이 주는 건 말이 안된다. 결혼해서 가족을 부양하는 사람과 나이가 어린 사람을 같이해서 최저임금을 주는 것도 안된다. 수도권, 서울, 지방은 물가가 다르니 지역별로도 차등적용 해야 한다.
노동자위원2 : 자격이나 대학졸업이라고 표현할 수 없어도 모든 일에는 숙련이 쌓인다. 또 사용계가 준비한 자료를 보면 최저임금을 차등 적용해야 한다는 근거를 찾아보기 어렵다.
공익위원7 : 산업 대분류로는 업종 별로 차등 적용해야 하는 산업을 구분하기 어렵다. 운수업은 항공, 육상, 수상 등 다양한 업종이 있다. 숙박음식업에도 대형 프렌차이즈와 영세 사업장이 있다. 업종 별로 구분하는 자체가 굉장히 어렵다.
사용자위원의 노동자 폄하 발언, 반말과 욕설까지
사용계의 근거가 빈약하고 노동계는 차등적용 안을 받아들일 수 없지만, 나름대로 진지한 논의가 오갔다. 그런데 이런 분위기가 반전되는 상황이 벌어졌다. 사용자위원이 노동자를 폄하하는 발언을 한 거다.
사용자위원4 : 노동의 대가는 노동시간을 갖고 측정해야 하는데, 택시의 경우 측정이 어렵다. 그냥 (택시를)끌고 나가버려. 밖에 나가서 잠을 잤는지 어디 갔는지 (사용자는)몰라. 노동시간 통제가 어려워. (노동자들이)당구 치러 가고 놀러 가고 그런다. 그래서 시간을 측정하기 어려운데 수익금 외 초과근로수당은 다 갖고 가고 있다. 억울한 사람(사용자)은 구해야지.
노동자위원4 : 공적 회의에 맞는 발언을 해라. 노동자를 폄하하는 식의 발언은 불쾌하다.
사용자위원4 : 나이도 나보다...
노동자위원6 : 잘못한 게 있으면 사과해야 한다. 방금 발언은 노동자를 폄하하는 발언이었다.
사용자위원4 : 지금 나한테 훈계하는 거냐. 나이도 어린놈이.
노동자위원1 : 위원장은 인권 침해적 발언을 제지해야 한다.
위원장 : 좋은 뜻으로 이해를 돕기 위해 구체적 사례를 제시한 걸로 이해할 수 있지만 노동자위원이 지적한 것 같은 측면도 있다. 표현을 다듬어주길 부탁드린다.
사용자위원6 : 서로 반론하는 건 괜찮은데 지금 사용자위원은 아무도 안 거들고 있다. 근데 노동자위원은 한꺼번에 막 거들고 있다. 그건 아니라고 본다.
공익위원1 : 두 분만 하는 회의가 아니니 끼어들지 말라는 건 아니라고 본다. 회의 진행을 방해하는 것에 대해 저는 더 이상 회의 진행은 감정상하고 불편하다고 생각한다. 표결을 요청한다.
막장이었다. 대한민국 사용자 중 한명으로써 그 대표성을 인정받아 최저임금위원회에 위원으로 위촉된 사용자위원이 서슴없이 노동자를 폄하하고, 이에 문제제기하는 노동자위원에게 반말과 욕설까지 했다. 최저임금위원회 회의가 생중계되거나 속기록으로 작성되어 공개된다면 이런 식의 막장 발언은 애초에 불가능했을 거다. 회의공개 문제를 차치하고라도 노동자 폄하발언과 욕설은 스스로의 품위와 위원회의 위상을 무너트리는 짓이다. 이런 식의 회의는 위원회를 바라보는 400만 최저임금노동자와 중소영세사용자에 대한 모욕이기도 하다.
민주적 표결조차 반대하는 사용자위원
공익위원은 더 이상의 논의가 불가능하다고 판단했고 표결을 제안했다. 지난 회의에서도 두 안건에 대해 많은 시간 논의했기 때문에 노동계에서도 표결이 불가피하다는 데 동의했다. 사용계는 반대했다.
운영위원회를 열어 안건을 어떻게 처리할 건지 논의했다. 운영위원회에서는 최저임금 결정 단위는 시급으로, 사업의 종류 별 차등 적용은 하지 않는 걸로 마무리하자는 제안이 있었다. 그러나 최저임금위원회가 합리적 근거도 없이 노-사가 하나씩 양보하는 거래의 형태로 안건을 마무리 지을 수는 없는 일이다. 노동계는 ‘거래’를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노동자위원8 : 장시간 논의한 안건의 합의가 어렵고 처리 방법도 난망한 상황에서 공익위원이 표결처리를 요청했다. 표결만 남겨 둔 상황이었다. 그리고 오늘 안건들을 어떻게 처리할 건지 논의하기 위해 정회를 요청한 건데, 표결 준비가 덜 됐다는 이유로 표결이 어렵다며 ‘거래’를 제안한 건 유감이다. 합의도 어렵고 표결도 어렵다면 회의를 어떻게 끌고 가야 하는 거냐. 방법이 없는 거 아닌가. 수년 동안 남겨진 제도개선 과제들에 대해 많이 논의했지만 제대로 해결하지 못하고 계속 넘어왔다. 그래서 이제는 그렇게 하지 말자고 장시간 논의하고 가닥이 잡혀가는 과정이었다. 그런데 이렇게 되면 앞으로 회의를 어떻게 진행하겠는가.
공익위원1 : 제가 표결을 제안했었는데, 최저임금 결정단위만 표결하자는 게 아니었다. 결정단위와 사업의 종류 별 차등 적용 여부 모두 표결하자는 거다.
사용자위원8 : 노-사가 하나씩 양보하자는 안을 존중해야 한다.
공익위원8 : 표결에 찬성하지만 지금은 사용계가 완강하게 반대하고 있기 때문에, 이 상태에서 표결은 어렵다. 내일 모레 회의니 그때 표결하는 건 어떤가.
사용자위원1 : 표결은 절대 반대한다.
위원장 : 결정을 계속 미룰 수는 없다. 추진할 건 추진해야 한다. 그런 취지로 공익위원들이 제시한 안을 말씀드린다. 25일 전원회의 전에 운영위원회를 열어 합의하기 위해 노력하고, 합의되지 않을 경우 전원회의에서 표결한다.
가장 중요한 최저임금 수준에 대한 논의는 시작도 못한 채 회의를 마쳤다. 물론 폄하발언과 욕설을 한 사용자위원은 사과를 거부했다. 사용계 간사가 재발방지를 약속하는 걸로 일단락 됐다.
문제를 일으킨 사용자위원은 2선 위원이다. 노동자를 폄하하고 노동자위원에게 욕설을 한 사용자위원은 위원으로서 자격이 없다. 회의장에서 퇴장시켰어야 마땅하다. 그런 면에서 위원장의 회의 진행 방식에도 문제가 있다. 원만한 진행을 위해 문제 발언을 제지하여 갈등을 피했어야 함에도 방관했다. 잘못된 행위에 대해 사과하는 건 초등학생도 아는 상식이다. 위원장은 회의 진행을 위해 사용자위원에게 사과를 요청했어야 하지만, 자율적으로 해야 한다며 문제 해결을 회피했다.
최저임금위원회는 타성에 젖어 있다. 안건에 대한 노-사 간 거래를 유도하고 회의 진행을 방해하는 행위를 방치하고 있다. 형식적인 안건 처리와 문제 상황에 대한 유야무야는 바람직하지 않다. 최저임금 수준을 결정하는 것만큼이나 최저임금제를 잘 운영하는 건 중요하다. ‘민주적 의사결정’과 ‘예절’에 대한 특강이 필요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