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관기 ②] 대의민주주의 축소판 최저임금위원회, 국민과 적극 호흡해야
무거운 분위기가 감돌았다. 언론에 3차 전원 회의 참관기를 작성한 것이 문제가 되었다. 4차 전원 회의가 있기 전 운영위원회에서, 사용자위원은
최저임금위원회 운영 규칙과 참관기를 비교하며 규칙 위반이라는 문제 제기를 했다. 그리고 공개 사과와 재발 방지를 요구했다. 동시에 한국노총에서
작성한 3차 전원 회의 결과 보도 자료도 문제 삼았다(관련 기사 : 최저임금위원회가 '밀실합의'라 불리는 이유).
최저임금위원회 운영규칙 제25조는
'의장 이외의 위원은 회의의 결과를 위원회의 동의 없이 발표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다. 25조 내용은 1988년도 최저임금위원회가 처음
구성되던 해에 만들어졌다. 운영규칙은 행정규칙으로 법령 체계 상 최저임금법과 공공기관의 정보공개에 관한 법률(아래 정보공개법)의 하위법이다.
법이란 것은 서로 충돌할 수 있기 때문에 '상위법 우선의 원칙'에 따라 상위법이 하위법에 우선해 적용하도록 돼 있다. 즉 최저임금위원회 운영
규칙은 두 법률에 위배돼서는 안 된다.
최저임금 제도의 철학, 어떻게 잡아나가야
할까
그렇다면 두 법은 최저임금위원회와 관련된 사항을 어떻게 규정하고 있을까. 우선 최저임금법의 적용 범위(3조)는
'모든 사업장'이다. 최저임금 제도의 수혜자는 대한민국 모든 노동자라는 거다. 최저임금을 결정하는 최저임금위원회의 회의 내용이 노동자 모두에게
공개되고 있지 않는 현실과 완전히 대비된다.
정보공개법은 국민의 알권리와 국민 참여, 국정 운영의 투명성 확보를 목적(1조)으로
한다. 그리고 최저임금위원회는 행정기관 소속 위원회의 설치·운영에 관한 법률에 따른 고용노동부 소속 위원회로, 정보공개법이 규율하는 공공기관에
포함(2조)된다. 공공기관은 정보의 보존과 신속한 검색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정보 관리 체계를 정비해야 하고 담당 인력을 배치할 의무(6조)를
갖는다. 심지어 최저임금위원회는 공개 대상으로 분류된 정보를 원문으로 공개해야 하는 대상 기관(동법 시행령 5조)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회의 내용의 10분의 1도 담겨있지 않은 참관기를 둘러싼 공방은 치열했다. 게다가 사용자 위원은 노동계 배석자 6명 중
2명이 퇴장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간 관행처럼 노-사 각 4명씩 배석해온 것이 근거였다. 노동계는 국민 알 권리를 침해한 운영 규칙과 회의
과정의 투명성에 대한 근본적인 논의가 필요하다고 했다. 그리고 최저임금노동자를 배제한 채 운영되는 최저임금위원회가 오히려 공개 사과해야 한다고
맞대응했다. 이렇게 두 시간이 흘렀다.
이날 의결 사항은 최저임금의 결정 단위(시급, 일급, 월급 등), 업종별 최저임금 구분
여부, 최저임금 수준 세 가지였다. 그러나 운영위에서 논의한 바, 최저임금 수준에 대한 노-사 최초 요구안을 다음 전원회의에 제출하기로 하고
의결 안건 심의는 금세 종료됐다.
아직 마무리 짓지 못한 회의 공개와 배석을 포함해 노-사가 제출한 제도 개선 사항이 남았다.
노-사는 최저임금위원회 운영에 대한 단기·중·장기개선과제를 제출했고 우선 단기 개선과제를 논의하기로 했다. 그리고 운영위원회에서 논의하지 못한,
최저임금 심의를 위해 현재 미혼 단신 노동자의 생계비를 조사하는 것에 더해 가구 생계비 조사를 추가할 것에 대한 여부를 논의하기로 했다.
노-사가 제출한 단기 개선 과제는 총 8개다. 이 중 이견의 여지가 없는 것과 차기 회의에서 다루는 것이 적절한 것 등을 빼고
회의의 투명한 운영과 가구 생계비 산입 여부에 대한 토론이 이어졌다.
단기 개선 과제 |
노동계 : ① 회의의 투명한 운영, ② 최저임금 결정 시 결정 근거(생계비,
유사 노동자 임금, 노동 생산성, 소득 분배율 등)의 체제화 사용계 : ① 업종별 최저임금 차등 적용, ② 최저임금안 고시에 이의제기할 수 있는 사용자단체 범위 확대, ③ 회의 장소 변경, ④ 위원 교체 시기 변경, ⑤ 회의장 피케팅 금지, ⑥공익 위원 대상 피케팅 금지 |
가구 생계비 산입 여부는 생계비전문위원회에서 논의됐으나, 결정되지 않아
전원회의로 안건이 넘어왔다. 사용자 위원은 가구 생계비를 추가하는 것은 최저임금 제도의 역할과 철학까지 바꿔야 하는 쉽지 않은 문제라고 했다.
최저임금이 노동 시장에 갓 진입한 노동자와 외국인 노동자가 혼자 생활할 수 있도록 한 것을 목적으로 한다는 거다. 때문에 18세
고졸 남성 노동자의 생계비를 기준으로 조사하는 현재의 방식이 최저임금 제도의 역할과 철학에 부합한다고 했다.
반면 노동자위원은
현장 방문에서도 보았듯, 최저임금만 받고 2~3인 가구를 꾸려나가는 노동자가 많은 것을 감안하면 미혼 단신 노동자의 생계비와 가구 생계비를
병행해 조사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했다.
공익위원도 의견을 같이 했다. 사회적 변화에 따라 최저임금의 철학도 변화할 필요가 있고,
통계를 풍부하게 하자는 의미에서도 가구 생계비 조사를 병행하는 것에 찬성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사용자 위원은 이에 동의하지 않았다. 합의가
어려워진 거다. 표결도 불가능했다. 사용자위원 9명 중 4명밖에 남아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결국 운영위원회에서 다시 논의하는 것으로
마무리됐다.
최저임금위원회, 보다 투명하게 운영돼야
노동계가 회의의 투명한 공개를 요구할
때 사용자위원은 이미 충분한 정보가 공개되고 있다고 했다. 최저임금위원회 홈페이지에 회의록이 게시되고 있다는 거다. 그래서 최저임금위원회
홈페이지에 들어가 봤다. 회의록이라 분류된 자료가 없어, 회의록을 찾는 데 한참 걸렸다.
전원회의 게시판에 있는 '2014년
최저임금 심의의결 경위'라는 제목의 자료에 2013년 회의내용이 담겨 있었다. 회의의 맥락과 쟁점을 전혀 알 수 없을 만큼 축약한 것이
전부였다. 게다가 올해 최저임금을 심의했던 2014년 회의 내용은 다른 게시판에 올라와 있어 못 찾을 뻔했다.
노동자위원은 회의록
공개의 수준을 강화하고 시의성 있게 홈페이지에 공개할 것을 요구했다. 이에 최저임금위원회 위원장은 당일 회의 결과를 정리한 문서는 차기 회의에서
공식 문서로 접수한 후에 공개해야 한다고 했다. 또한 지금 공개되는 수준이 거의 녹취록 수준이 아니냐며 반문했다.
사용자위원은
임금 문제는 국민 입장에서 자극적이기 때문에 공개할 수 없고, 공개된다면 여론이 나빠질 거라며 반대했다. 이 사안 또한 합의에 이르지 못하고
운영위원회에서 다시 논의하는 것으로 정리됐다.
3차 전원회의 참관기가 문제 된 만큼 회의 내용 공개는 뜨거운 쟁점이었다. 4선
위원으로 활동하는 사용자위원이 이번 만큼 불편했던 적은 없었다며 불만을 토로한 것처럼, 최저임금위원회가 폐쇄적인 형태로 너무 오랫동안
방치돼왔다. 임금처럼 중요한 문제를 고작 27명의 위원들이 후다닥 결정하는 것은 그야말로 '졸속'이다.
최저임금위원회는
대의민주주의의 한 형태이다. 노사정이 대표성을 인정한 27명의 위원이 최저임금이라는 특화된 제도를 심의하고 결정하기 때문이다. 최저임금위원회가
투명하게 운영되는 것은 노-사위원의 대의를 강화하고 책무성을 제고한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최저임금당사자가 될 노동자 국민과 호흡하며 대의제가
갖는 대표성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해야 한다.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결정은 최대한 많은 이와 의견을 나눴을 때
가능하다. 운영 규칙을 들이 밀어도 소용없다. 최저임금위원회가 투명하게 운영돼야 하는 이유는 차고 넘친다.
덧붙이는 글 | 굴쓴이는 한국 비정규노동센터
정책부장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