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속기고-비정규직·청년 대표의 최저임금위원회 참석기 ②] 환골탈태해야 할 최저임금위원회
이남신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소장(최저임금위원회 노동자위원)
2016년 최저임금을 결정하는 올해 최저임금위원회에는 특별한 인사들이 근로자위원으로 참여하고 있다. 바로 청년과 비정규직 당사자다. 최저임금 협상을 ‘국민 임단투’로 부르는 이들은 최저임금위가 매우 중요한 결정을 하면서도 투명하지 않다고 비판한다. 회의록 공개를 요구하는 이유다. 최저임금위는 이들의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공개한 전례가 없다는 설명을 곁들였다. <매일노동뉴스>가 알권리 충족을 위해 최저임금위 회의에 참석한 청년·비정규직 근로자위원이 보고 들은 내용을 지면에 싣는다.<편집자>
지난 11일 제4차 전원회의 시작부터 정보공개를 둘러싼 논란이 뜨거웠다. 위원장이 이미 의결 안건을 상정하며 방망이를 두들긴 후인데도 사용자위원들이 계속 회의 결과 언론 공개를 문제 삼으며 정상적인 회의 진행을 가로막았다. 3차 전원회의 표결에서 져서 위기의식을 느낀 탓인지 작심한 듯 공세를 펼쳤다. 최장기간 4선 위원인 사용자위원은 이런 일로 불편해 본 적이 없다며 규칙 위반을 성토했다. 사용자위원들이 문제 삼은 건 한국노총 보도자료와 최혜인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정책부장이 오마이뉴스에 기고한 글이었다. 특히 밀실회의란 표현에 발끈했다. 기자 한 명도 들어오지 못하는 최저임금위원회의 폐쇄적인 회의구조가 밀실 아니면 뭔가. 그간 제대로 쟁점화하지 못했던 최저임금위의 치부가 드러나자마자 사용자위원들이 심각하게 느낀 불편함의 실체는 뭘까 회의 내내 흥미로웠다.
사용자위원이 내게 공개사과를 요구했다. 단박에 거절했다. 지금까지 회의 과정과 결과를 투명하게 공개하지 못한 최저임금위가 문제이지 사회적 임금인 최저임금을 국민, 특히 최저임금이 자신의 최고임금이 되는 노동자들에게 알리려 애쓴 이들이 사과할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결국 운영규칙 위반 여부가 쟁점이 됐다. 최저임금위 운영규칙 제25조는 의장만 전원회의 동의를 얻어 회의 결과를 대외적으로 발표할 수 있도록 정하고 있고, 위원은 회의 결과를 위원회의 동의 없이 발표할 수 없도록 정하고 있다. 그럼 당장 제도개선이 불가능한 조건에서 의장이 회의 결과 대외 공표를 꺼린다면 어떡해야 하나. 위원들이라도 나서서 알려야 하는가, 아니면 잘못된 규칙에 얽매여 가만히 있어야 하는가. 안식일 병자를 치료했다는 이유로 지탄받았던 예수를 떠올리게 된다. 최저임금위의 비정상이 도를 넘어섰다.
최저임금위의 정보공개 감수성이 얼마나 심각한지는 당장 홈페이지를 들어가 보면 안다. 가장 중요한 올해 전원회의와 전문회의 결과를 아직도 볼 수 없다. 언론 보도는 2013년 7월8일 연합뉴스 기사가 마지막이다. 올해 최저임금(5천580원) 기사조차 올라와 있지 않다. 납득하기 어려운 직무유기다. 이런 지경이니 예산 때문에 속기록조차 남기기 어렵다는 변명이 나오는 것이다. 올해는 정부까지 나서는 바람에 최저임금이 사회적 화두로 부각돼 조금 달라졌지만 이전까지 최저임금위의 실질적 위상은 민망한 수준이었다. 이렇게 낮은 위상과 닫힌 구조 속에서 뭘 할 수 있을지 답답하기 그지없다.
이번 회의에서도 사용자위원들은 시간이 길어진다고 불평이 많았다. 작은 사업장 임금교섭도 본교섭과 실무교섭을 합치면 최소한 십수 차례 진행한다. 시간으로 따지면 50시간은 족히 넘을 것이다. 노동조합 바깥의 수백만 취약계층 노동자들의 임금인 최저임금을 결정하는 최저임금위의 올해 공식회의가 전원회의 4번뿐이다. 마지막 전원회의(6월25일)를 앞두고 3일 연속 회의를 하기로 한 건 바람직하지만 여전히 시간이 태부족하다. 사용자위원들도 자기 사업장 노사교섭이었다면 이렇게 형식적으로 하진 않았을 게다. 시간을 물쓰듯 하며 노사 쌍방의 입장을 좁히려 안간힘을 썼을 것이다.
그나마 다행스럽게 이번 회의에서 최저임금 인상 근거 통계가 보강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됐다. 생계비와 관련해 1988년부터 지금까지 18세 고졸 남자 단신 실태생계비가 유일한 기준 통계였는데, 내년부터는 가구생계비를 병행하자는 노동자위원들의 요구가 공익위원들의 호응을 얻은 것이다. 이미 고졸보다 대졸이 압도적으로 많고 중고령 최저임금 계층이 급증하는 시대적 추세를 반영하려면, 내년에는 미혼 단신과 가구생계비를 병행해 연구용역을 발주해야 한다. 기술적으로도 어려운 문제가 아니므로 즉각 시행할 수 있다. 차기 전원회의에서 합리적인 결정이 나오리라 기대한다.
사용자위원들은 정보공개가 충분하다고 주장한다. 현재 최저임금위 구조에선 심의기간 중에 실제 회의 과정과 결과를 공유하는 사람들은 27명 위원들과 극소수 배석자들, 그리고 노동부와 각 이해당사자 조직의 상층 지도부뿐이다. 최저임금 적용 미조직 노동자들은 말할 것도 없고 관심 있는 국민 누구도 정보에 접근하기 어렵다. 대단히 심각한 문제다. 공공기관의 정보공개에 관한 법률(정보공개법)이 정한 대로 국민의 알 권리 보장을 위해 적극적으로 공개해야 한다. 특히 공공기관 중 대통령령으로 정한 기관(최저임금위도 해당한다)은 공개대상 정보의 원문을 공개하게 돼 있다. 지난 27년 동안 쌓여 온 최저임금위의 적폐는 더 많은 민주주의로부터 해소 가능하다.
차기 전원회의에서 뜨거운 관심을 받게 될 최저임금 인상률 최초 요구안이 국민에게 제대로 알려지고, 노사 간 쟁점이 풍부하게 전달될 수 있도록 철저하게 회의 결과가 공개돼야 마땅하다. 언로가 막힌 곳에서 합리적 공론의 장이 형성되기란 불가능하다. 임금을 둘러싼 사회적 교섭은 두말할 나위 없다. 최저임금위는 정보공개부터 환골탈태로 거듭나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