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유신독재 시대의 어둠을 넘어
이남신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소장 (매일노동뉴스 / 2015. 11. 19)
11월14일 광화문 현장 시위대오 안에 있었다. 집회 시위의 자유가 차벽에 가로막힌 채 웅성거렸다. 살수차가 물을 내뿜을 때마다 매캐한 화학독성 물질이 코를 자극했다. 뒤돌아서 연신 쿨럭거리며 눈물 콧물을 닦았다. 살수차에서 한꺼번에 몰려나온 합성수가 아스팔트에 맹렬하게 부딪쳐 기이한 하얀 포말을 생성하며 물줄기가 돼 흘렀다. 맨 앞에 나갈 엄두는 못 내고 물대포를 쏘아보기만 했다.
직접 목격하진 못했지만 그 와중에 한 사람이 쓰러졌다. 아니 셀 수 없는 사람들이 직사 물대포를 온몸으로 맞으며 고통스러워했다. 인체에 치명적이라는 유해성 논란에 휩싸인 ‘파바’라는 독성 최루액을 앞쪽 집회 대오는 대다수가 수십 차례 흡입했다. 물대포를 맞아 다친 시민이 탄 앰뷸런스 안까지 무차별로 공격해 댄 경찰의 행태를 보면 미친 공권력이란 표현이 과하지 않다. 경찰이 역대 가장 많은 분량의 최루액을 시위대에 물대포로 쏟아부은 11월14일은 이 정부가 의견이 다른 국민을 어떻게 적대하는지 극명하게 자인한 날이었다.
무지막지한 조준 직사 물대포 공격에 쓰러진 농민 백남기 어르신 상태가 위중하다. 젊은 날 유신독재에 맞서 결기 있게 싸운 분이 그 독재자 딸이 대통령이 된 하수상한 시대를 맞아 경찰의 살인적 폭력 만행으로 생사 기로에 놓여 있다. 기막힌 역사 퇴행에 분통이 터진다. 친일과 독재를 미화할 속셈으로 국정교과서를 막무가내로 강행하는 그 독재자 딸을 떠올리니 더욱 어처구니없다. 권력기관이 개입된 대통령 부정선거 논란이 여전한 가운데 폭력적으로 국민의 절대 다수인 노동자와 농민을 홀대하고 배제하는 정부가 어떤 정통성을 보장받을 수 있단 말인가. 그 자체로 위헌이고 불법이다.
위기를 직감한 집권세력의 혀들이 경찰의 폭력과잉진압을 감싸느라 바쁘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는 시위대의 난폭하고 무자비한 폭력을 눈뜨고 볼 수 없다고 했다. 이완영 새누리당 의원은 “미국에서 경찰들이 총을 쏴서 시민들이 죽는데 80~90%는 정당하다고 나온다”며 “이런 게 선진국의 공권력이 아닌가”라고 막말했다. 막가파가 따로 없다. 갈등을 조율하고 타협을 통해 문제를 매듭지어야 할 정치인들이 앞장서서 논란을 증폭하고 있으니 한심하기 짝이 없다. 더구나 물대포 폭력사태를 책임져야 할 강신명 경찰청장은 새누리당 원내대책회의에 참석해 폭력시위에 대한 엄정한 사법처리만을 강변했다. 국민 생명과 안전에 대한 배려는 안중에도 없다.
이번 경찰의 폭력만행을 보니 기시감이 든다. 세월호 참사 와중에 꿈쩍 않고 무책임한 태도로 일관하던 대통령과 관료들의 모습과 판박이다. 노동개악을 노동시장 구조개선이란 미명 아래 노사정 대야합을 강제하고 일방적으로 밀어붙여 온 정부 행태와 똑 닮았다. 주무부처 장관들이 나서 영덕 원전 건설 반대 주민투표 결과를 무시하는 행태와도 흡사하다. 민의가 묵살되고 권력의 오만과 탐욕이 민주주의를 질직시키고 있다. 지상에서 숨 쉴 틈마저 없어져 문제 해결이 난망해진 노동자들은 하늘로 줄지어 오르고, 내려올 사다리를 찾지 못한 채 기약 없는 고공농성을 이어 가고 있다.
사람의 목숨이 경각에 걸린 마당에 폭력시위 논란은 소모적이고 악의적이다. 정치적 계산은 접어 두고 우선 대통령이 사죄해야 마땅하다. 집권세력은 반대의견을 내치지 말고 공론의 장에서 합리적으로 논쟁해야 한다. 정부 스스로가 강조해 온 민생과 민주주의를 살리는 전화위복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 지금처럼 불통과 폭력으로 일관한다면 파시스트 정권에 다름아니다.
시민 목숨보다 경찰 차량이 더 중요한가. 집회의 자유보다 억압으로 만든 거짓 평화가 더 가치 있나. 우리 사회가 진정한 민주주의 공동체라면 생명과 자유야말로 지고의 가치가 돼야 한다. 지금 이런 근본 가치가 비정규직 양산과 손쉬운 해고 따위를 얻기 위해 경찰 폭력에 의해 무차별 훼손되고 있다. 억압은 더 강한 저항을 불러올 뿐이다. 때아닌 신유신독재 시대의 어둠을 넘어 여명의 새벽을 맞기 위한 대장정이 다시 시작됐다. 무엇보다 백남기 어르신께서 다시 일어나시길 간절하게 소망하며 기도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