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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에 내앉은 룸메이드 “하루를 살아도 정규직으로”
입력: 2006년 09월 21일 14:30:14
서울 강남 테헤란로 한복판. 오늘도 무궁화 다섯 개짜리 특급호텔로 출근한다. 속사정 모르는 사람들이야 ‘걱정거리가 없겠다’고 부러워한다. 하지만 아직 찾아오지도 않은 겨울 걱정에 한숨부터 나온다. ‘단결 투쟁’이라고 쓰인 붉은색 조끼 대신 두툼한 점퍼를 입는 일은 없기를 바랄 뿐이다. ‘원직복직’을 요구하며 거리에서 260여일을 보낸 르네상스서울호텔 룸메이드 해고자들의 이야기다.
-“18년 고생하니 ‘비정규직’ 딱지 붙여주더라”-
“열심히 일한 죄밖에 없어요. 호텔-집, 집-호텔 밖에 몰랐던 게 죄예요? 여기 있는 사람들 서러움 많이 받고, 고생만 한 사람들이에요.”
올해로 경력 18년차인 이정숙씨는 “호텔에서 룸메이드는 가정의 엄마같은 존재”라고 강조했다. ⓒ미디어칸
올해로 18년차 룸메이드 이정숙(60)씨는 첫 마디부터 울음을 토했다. 1988년 르네상스서울호텔이 세워질 때부터 일했지만 돌아온 것은 얄팍해진 월급봉투와 신경성 위경련뿐. 제대로 근무했다면 10월 정년퇴직할 나이. “억울하게 당하니까 악만 남았다”며 그는 또 한번 눈물을 훔쳤다.
처음부터 비정규직은 아니었다. 2001년까지 룸메이드는 엄연한 정규직이었다. 일은 고됐지만 3천만 원이 넘는 연봉과 자녀 학자금 지원 등을 위안삼아 견뎠다. ‘창립 멤버’라는 자부심 때문에 웃으면서 일할 수 있었다.
그러나 2001년 12월부터 상황이 돌변했다. 호텔 측이 ‘경영악화로 8차에 걸쳐 구조조정을 실시한다’며 1차로 룸메이드를 지목, 명예퇴직을 종용했다. 호텔 측이 만든 용역회사인 ‘르네상스서비스팀’에 소속됐고 비정규직으로 몰렸다. 이후 더 이상의 구조조정은 없었다. 오히려 정규직의 임금인상이 있었다.
“그때야 알았어요. ‘속았구나.’ 그 땐 비정규직이 뭔지 몰랐으니까 속앓이가 덜했지.”
비정규직이 되자 임금은 1/3로 줄었다. 상여금과 각종 수당, 학자금 지원 등이 소리 소문 없이 없어졌다. 삼 남매 뒷바라지를 하는 여성가장인 그에겐 청천벽력 같은 일이었다. 그런데 업무강도와 관리·감시는 심해졌다. 세탁실로 갈 침대시트를 반듯이 접으라는 지시부터 정기적으로 하던 천장청소가 일상 업무로 바뀌었다. ‘창립멤버’라는 자부심은 고사하고 ‘노예’라는 생각에 잠을 이룰 수 없었다.
“사람을 콩 볶듯 볶더라고요. 객실 13개를 청소했는데, 정규직일 때는 9시 출근해서 5시30분 퇴근 전까지 마칠 수 있었던 일이 2시간 일찍 출근해도 끝나질 않아요. 또 며칠에 한번씩 객실관리에서 공용공간관리로, 또 기물관리로, 그 다음엔 다시 객실관리로 부서를 막 바꿔버려요. 제 집 가정부도 이렇게는 안 부리겠다, 싶더라고요.”
평소 어깨통증에 시달리던 룸메이드들이 과도한 스
입력: 2006년 09월 21일 14:30:14
서울 강남 테헤란로 한복판. 오늘도 무궁화 다섯 개짜리 특급호텔로 출근한다. 속사정 모르는 사람들이야 ‘걱정거리가 없겠다’고 부러워한다. 하지만 아직 찾아오지도 않은 겨울 걱정에 한숨부터 나온다. ‘단결 투쟁’이라고 쓰인 붉은색 조끼 대신 두툼한 점퍼를 입는 일은 없기를 바랄 뿐이다. ‘원직복직’을 요구하며 거리에서 260여일을 보낸 르네상스서울호텔 룸메이드 해고자들의 이야기다.
-“18년 고생하니 ‘비정규직’ 딱지 붙여주더라”-
“열심히 일한 죄밖에 없어요. 호텔-집, 집-호텔 밖에 몰랐던 게 죄예요? 여기 있는 사람들 서러움 많이 받고, 고생만 한 사람들이에요.”
올해로 경력 18년차인 이정숙씨는 “호텔에서 룸메이드는 가정의 엄마같은 존재”라고 강조했다. ⓒ미디어칸
올해로 18년차 룸메이드 이정숙(60)씨는 첫 마디부터 울음을 토했다. 1988년 르네상스서울호텔이 세워질 때부터 일했지만 돌아온 것은 얄팍해진 월급봉투와 신경성 위경련뿐. 제대로 근무했다면 10월 정년퇴직할 나이. “억울하게 당하니까 악만 남았다”며 그는 또 한번 눈물을 훔쳤다.
처음부터 비정규직은 아니었다. 2001년까지 룸메이드는 엄연한 정규직이었다. 일은 고됐지만 3천만 원이 넘는 연봉과 자녀 학자금 지원 등을 위안삼아 견뎠다. ‘창립 멤버’라는 자부심 때문에 웃으면서 일할 수 있었다.
그러나 2001년 12월부터 상황이 돌변했다. 호텔 측이 ‘경영악화로 8차에 걸쳐 구조조정을 실시한다’며 1차로 룸메이드를 지목, 명예퇴직을 종용했다. 호텔 측이 만든 용역회사인 ‘르네상스서비스팀’에 소속됐고 비정규직으로 몰렸다. 이후 더 이상의 구조조정은 없었다. 오히려 정규직의 임금인상이 있었다.
“그때야 알았어요. ‘속았구나.’ 그 땐 비정규직이 뭔지 몰랐으니까 속앓이가 덜했지.”
비정규직이 되자 임금은 1/3로 줄었다. 상여금과 각종 수당, 학자금 지원 등이 소리 소문 없이 없어졌다. 삼 남매 뒷바라지를 하는 여성가장인 그에겐 청천벽력 같은 일이었다. 그런데 업무강도와 관리·감시는 심해졌다. 세탁실로 갈 침대시트를 반듯이 접으라는 지시부터 정기적으로 하던 천장청소가 일상 업무로 바뀌었다. ‘창립멤버’라는 자부심은 고사하고 ‘노예’라는 생각에 잠을 이룰 수 없었다.
“사람을 콩 볶듯 볶더라고요. 객실 13개를 청소했는데, 정규직일 때는 9시 출근해서 5시30분 퇴근 전까지 마칠 수 있었던 일이 2시간 일찍 출근해도 끝나질 않아요. 또 며칠에 한번씩 객실관리에서 공용공간관리로, 또 기물관리로, 그 다음엔 다시 객실관리로 부서를 막 바꿔버려요. 제 집 가정부도 이렇게는 안 부리겠다, 싶더라고요.”
평소 어깨통증에 시달리던 룸메이드들이 과도한 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