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플랫폼법 심각한 문제 인정하고
온전한 보호입법 논의 시작하자!
더불어민주당 이수진 의원(환노위)이 지난 11일 ‘플랫폼종사자 보호 및 지원 등에 관한 법률’(이하 ‘이수진 법안’)을 대표 발의했다. 이번 법안은 사실상 정부 법안이라 할 수 있는 같은 당 장철민 의원(환노위)의 기존 발의 법안(이하 ‘장철민 법안’)에 대한 수정안 성격을 갖고 있다.
우리 '플랫폼노동 희망찾기’는 당사자조직인 대리운전기사노조•웹툰작가노조•라이더유니온•공공운수노조택시지부가 합심하여, 각계각층 시민단체를 망라한 연대체로서, 그동안 수차례 기자회견 등을 통해 장철민 법안은 멀쩡한 노동자까지도 플랫폼종사자법 적용대상인 프리랜서·자영업자로 둔갑시킬 것이라 경고해왔다. 그때마다 문재인 정부와 장철민 의원은 고장난 레코드처럼 “플랫폼종사자법 3조에 따라 노동법이 우선 적용되도록 했다”는 변명을 반복할 뿐이었다.
“노동계에서 플랫폼법으로 인한 노조 교섭 배제 등을 우려하지만, 노조는 플랫폼법 제3조에 따라 노조법이 우선 적용될 수 있도록 제도적 보호장치가 마련되어 있다” (10월 20일, 장철민 의원실 보도자료)
“입법안은 근로기준법 등 노동관계법 우선 적용을 규정하고 있으며, 유리한 경우 플랫폼 종사자 보호법을 추가적으로 적용하도록 하고 있음” (11월 8일, 고용노동부 보도해명자료)
그런데 이수진 법안이 담은 수정 내용의 핵심이 바로 장철민 법안의 제3조 내용을 “플랫폼 종사자가 노동관계법 상 근로자임을 주장하는 경우에는 이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점은 이를 주장하는 플랫폼 사업자가 증명하도록” 바꾼 것에 있다. 집권여당 내에서도 장철민 법안이 가진 심각한 문제점을 인정한 것이라 하지 않겠는가.
그동안 정부·여당 독단으로 플랫폼노동에 독이 될 법안을 강행하려 했던 상황에서, 그나마도 정부 법안의 심각한 문제점을 인식하고 플랫폼노동 당사자의 목소리를 반영하기 위한 노력이 시작되었다는 점은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지금부터라도 플랫폼 노동자와 머리를 맞대고 올바른 플랫폼노동 보호입법을 함께 만들어가야 한다.
하지만 그러기 위해서도 분명한 원칙과 기준을 세울 필요가 있다. 우선 플랫폼노동은 ‘디지털 특고’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로 특수고용과 유사점을 공유하고 있다. 그렇다면 증명책임 관련 입법내용은 디지털 플랫폼 사용 여부와 무관하게 특수고용을 비롯한 종속적 노동 전반에 적용되는 것이 옳다. 따라서 증명책임을 사용자에게 전환하는 조항은 이 법이 아니라 근로기준법·노동조합법 등 노동관계법에 명시하는 것이 옳다.
다음으로 이수진 법안의 제3조는 ‘증명책임 전환’과 닮긴 했으나 똑같지는 않다. 엄밀한 의미의 증명책임 전환의 내용을 담으려면 미국 캘리포니아주의 AB5 법안, 최근 유럽연합의회 결의안처럼 먼저 노동자성(근로자성)을 추정하고 노동자가 아니라는 점을 입증하는 책임을 사용자에게 부담시키는 것이 옳다.
마지막으로 정부 법안은 증명책임 문제만이 아니라 플랫폼 기업의 사용자책임을 면제해주고 있다는 심각한 문제를 여전히 안고 있다. 이수진 법안은 증명책임 문제를 조금 건드리긴 했지만 사용자책임 면제에 대해서는 플랫폼노동 당사자의 의견을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부족함의 정도나 내용과 무관하게 이수진 법안의 발의는, 누차 강조하지만 기존 정부 법안(장철민 법안)이 심각한 문제점을 안고 있었다는 사실, 플랫폼노동 당사자의 절규에 가까운 목소리를 “플랫폼종사자법 3조가 있으니 안심하라”는 거짓부렁으로 정부가 무시하고 외면해 왔다는 사실만큼은 확실히 보여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작금의 이 사태는 노동계 모두의 반대를 무시하고 지난해 12월 일자리위원회에서 정부 단독으로 플랫폼종사자 보호방안을 표결로 강행처리한 때부터 예고된 것이었다 할 수 있다. 지금이라도 문재인 정부와 더불어민주당은 기존 정부 법안의 심각한 문제점을 인정하고 플랫폼노동 당사자에게 올바른 보호입법을 위한 대화의 손을 내밀어야 한다.
당사자와 단 한번도 제대로 대화하지 않은 채 정부 입맛대로 입법부터 서두르다 벌어진 사달을 바로잡으려면 우선 폭주열차부터 세워야 한다. 증명책임 전환을 그저 흉내만 낼 것이 아니라면 간이역에라도 당사자들을 불러모아 조항을 다듬어야 하고, 플랫폼기업의 사용자책임을 명시하고 특수고용과 종속적 노동 전반의 권리를 높이기 위해서는 기본법이라 할 근로기준법·노동조합법 개정으로 열차를 갈아타야 한다.
플랫폼노동 당사자들은 필요하다면 정부·국회와 밤샘토론·끝장토론이라도 마다 않겠다. 대선을 앞두고 벌어지는 상호비방과 네거티브에 지친 노동자·시민들에게 다시 미래지향적인 활력을 불어넣기 위해 올바른 플랫폼노동 보호입법의 방향을 놓고 벌이는 TV토론도 좋겠다. 지금도 늦지 않았다. 불통(不通)을 소통(疏通)으로 바꾸고 비상식을 상식으로 바꾸자.
2021년 11월 16일
플랫폼노동희망찾기(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