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명서>
84번의 근로계약, 다시 말하면 83번의 계약 갱신!
갱신기대권이라는 것이 있다. 근로계약 기간을 초과하여 계약기간이 갱신될 거라는 정당한 기대권을 의미하는데, 다소 어려운 단어지만 의미만큼은 따뜻하다. 사용자와 노동자가 서로 신뢰하고 성실하게 각자의 의무를 다 한 결과 갱신기대권이 형성되기 때문이다.
롯데호텔에서 세달 간 84번의 근로계약을 체결한 노동자가 취업규칙 열람을 요구한 뒤 재계약되지 않자, 중앙노동위원회는 지난해 12월, 부당해고 판정 및 원직복직을 주문했다. 간접고용이자 초단기간 계약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판정이 가능했던 것은 롯데호텔과 해당 노동자 사이의 반복적인 근로계약이 형식적이었을 뿐, 실질은 계속고용관계에 있었다는 것을 드러냈다고 할 수 있다. 즉 갱신기대권이 인정된 것이다. 안타깝게도 롯데호텔은 해당 노동자에게 복직시키지 않을 것이라는 입장을 전달했고 중앙노동위원회 판정에 행정소송을 제기하기에 이르렀다. 그리고 서울행정법원은 중앙노동위원회의 부당해고 결정을 취소했다.
이 사건은 사용자의 입맛에 맞게 비정규직을 이용하는 현실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기간제법이 제정될 당시, 비정규직을 보호한다는 그럴듯한 명분을 내세웠지만, 사실은 2년 간 합법적으로 노동자를 복종시키는 반인권적 법에 불과했다. 롯데호텔 해고 노동자처럼 취업규칙 열람을 요구하는 상식적인 행동조차 해고 위험을 무릅써야 한다.
세달 간 84번이나 근로계약서를 작성했다는 것은 최초 계약 후 83번이나 계약을 갱신했다는 의미다. 짧은 기간 동안 무려 83번의 계약이 갱신됐다는 그 자체가 갱신기대권을 부인할 수 없게 한다. 매일매일 형식적으로 근로계약서를 쓰다 내일 갑자기 회사가 근로계약서를 내주지 않을 거라는 걸 누가 예상할 수 있겠는가. 계약의 실체가 있다면 계약 기간인 하루치 임금을 당일 지급했어야 하지만, 롯데호텔은 일당으로 임금을 지급하지도 않았다. 이리 저리 뜯어봐도 갱신기대권을 부인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롯데호텔은 이번 일을 교훈 삼아 비정규직 고용에 대해 재고해야 한다. 한 끼 식사가 10만원에 달하는 고급 뷔페의 우아한 분위기에 걸맞게 상식적이고 인권적으로 노동에 접근해야 한다. 최고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호텔에서 함께 일하는 노동자의 밝은 표정은 사용자의 정당한 대우에서 비롯된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이번 고등법원 공판에서는 명백한 갱신기대권의 증거를 샅샅이 모아 계약의 실질적 관계에 입각한 판결이 나오리라 기대한다. 이는 노사정위에서도 논의됐던 쪼개기 계약을 막아 기간제 노동자의 고용안정 및 노동조건 개선에 기여할 수 있는 중요한 계기가 될 것이다. 한국비정규노동센터는 고등법원이 초단기간 계약 관행으로 노동자의 고용을 위협하고 사용자에 대한 복종을 강요한 악용사례들을 바로잡을 수 있도록 현명하게 판결하길 간절하게 촉구한다.
2015.9.23
한국비정규노동센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