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브란스병원의 노조파괴 공작, 부당노동행위를 규탄하는 시민사회단체 입장]
“ 연세대학교와 세브란스병원은 청소노동자 탄압과 인권침해를 중단하고 대화에 나서야 합니다. "
지난 2016년 7월 신촌 세브란스병원에서 일하는 청소노동자들이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에 가입하여 분회를 결성했습니다.
가입과정은 순탄하지 않았습니다. 노조가입 움직임이 있자 직원들이 무리지어 휴게실 앞을 가로막고 노조간부의 출입을 제지했고 보안요원들이 병원 내부와 주변을 계속 따라다니며 노골적으로 감시하고 방해했습니다. 이러는 동안 노동자들에게는 재계약으로 협박하고 수당 인상으로 회유하며 노조 탈퇴를 종용했다는 것이 조합원들의 증언입니다. 탈퇴한 노동자들을 한국노총에 가입시켜 교섭권을 박탈하려고 했다는 것입니다.
청소노동자들은 용역업체인 (주)태가비엠 소속이고 병원과는 아무 관련이 없다는 것이 세브란스병원의 입장입니다. 문제는 노조파괴 공작에 병원이 직접 개입하였음을 보여주는 명백한 증거가 드러난 것입니다. 세브란스병원의 업무일지에는 “민노, 한노, 비노 인원현황 상세 데이터로 주세요.”, “주말, 휴일 민노 서경 및 민노 조합원 동향파악 집중 부탁드립니다.”, “사무부장님도 지시하신 ”민노불법행위 조치 방안“ 신속히 보고바람.” 등 노조파괴 공모의 기록들이 빼곡합니다. 작성한 병원 파트장의 이름도 선명합니다.
예컨대 9월8일 세브란스병원 청소노동자와 공공노조 상근자들은 한국노총 신촌연세노동조합에 방문하여 “회사가 준용하고 있다는 단체협약 열람 및 제공”을 요청했습니다. 그러나 신촌연세노조 위원장과 부위원장은 이유없이 열람을 거부했고 태가비엠 직원, 병원 사무팀과 보안요원이 와서 퇴거를 요구했습니다. 이 일을 두고 업무일지에는 “한노 집행부 방문 소란 등은 철산노 위원장에게 실시간 전달하여 노노대응 유도바랍니다.”라고 적혀있고 “명심하겠습니다”라는 용역업체 현장소장의 답변도 있습니다. 바로 현장에는 철도사회산업노조의 유인물이 나붙었습니다.
자필 업무일지를 작성하며 노조파괴에 개입한 사실이 밝혀진 후 세브란스병원과 연세대가 보인 반응은 가관입니다. ‘학교법인 연세대학교’ 명의로 업무방해 가처분신청을 내고 다시 8명의 청소노동자를 고소하는 등 사과는커녕 법적조치를 남발하고 있습니다. 지난 4월8일 개교기념식에서 대화를 요청하는 청소노동자들을 보안직원들을 시켜 가로막았고 이 사태를 빌미로 또 9명을 무더기 고소했다고 합니다. 적반하장에 후안무치라고 밖에는 표현할 수가 없습니다. 이제 4월말까지로 예정된 재계약을 빌미로 협박하고 사소한 일에도 경고장, 시말서를 강요한다는 증언이 쏟아집니다. 사람을 치료한다는 병원이 오로지 노조에 가입했다는 이유로 사람들을 핍박하고 병들게 하고 있습니다.
세브란스병원은 청소노동자들에게 사과하고 대화에 나서야 합니다.
이제 증거와 증언이 다 드러난 이상 세브란스병원이 청소노동자들과 아무런 관련도 책임도 없다는 말은 아무도 믿지 않을 거짓말이 되었습니다. 연세대와 세브란스병원의 명예는 스스로 훼손한 것이고, 사회적 이미지도 스스로 실추시킨 것입니다. 고소고발을 남발하고 보안직원들을 동원한다고 가릴 수 없습니다.
노동자의 단결권, 단체교섭권, 단체행동권은 우리 헌법에 명시된 기본권입니다. 최근 우리 국민은 길고 고통스런 과정을 통해 설사 대통령이라도 헌법에 위배되는 행위를 저지르면 그 직을 유지할 수 없다는 교훈을 만들어냈습니다. 이 와중에 세브란스병원이 헌법가치를 정면으로 위배하며 노조파괴 공작을 계속한다면 사회구성원들에게 계속 용인되기는 어렵습니다. 제대로 된 나라에서라면 이 범죄행위의 책임자들은 이미 병원 사무실이 아니라 피고인석에 서있어야 합니다.
세브란스병원은 지금이라도 청소노동자들에게 그간의 인권침해와 노조파괴 공작에 대해 진심으로 사과해야 합니다. 노동조합을 인정하고 청소노동자들과 대화에 나서야 합니다. 그것이 병원도 살고 노동자들도 사는 길입니다.
고용노동부의 직무유기가 노동자들을 병들게 하고 헌법가치를 파괴하고 있습니다.
노동조합및노동관계조정법은 사용자가 노동조합에 지배개입하는 부당노동행위에 대해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2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규정하고 있습니다. 노조 가입시부터 부당노동행위가 상시적으로 저질러졌고 자필 업무일지까지 나온지 7개월이 지났지만 아무도 처벌받지 않았습니다. 고용노동부는 1월말에야 ‘무혐의’로 검찰에 송치했으며 이후 검찰에서 ‘보완조사’를 지시했지만 아직도 제대로 된 조사가 진행되고 있지 않습니다.
고용노동부의 이러한 태도는 일관된 것입니다. 삼성의 노조와해 문건인 이른바 ‘S그룹 노사전략’에 대해서도 지난 2월 대법원이 ‘삼성이 작성한 것 맞다’고 인정하고 3월에 국제노동기구(ILO)가 수사결과를 지체없이 통보하라고 권고했지만 아직까지도 미적대고 있습니다. 노조파괴 시나리오가 돌아간 유성기업에 이어 갑을오토텍에서도 지난 18일 한 노동자가 목숨을 끊었습니다. 사업장에 만연한 부당노동행위와 노조파괴공작에도 불구하고 노동부가 ‘눈뜬 장님’ 행세를 계속하는 한 ‘노동부’가 아니라 ‘노무부’라는 탄식도 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
시민사회단체들은 세브란스병원의 노조파괴공작을 묵과하지 않겠습니다.
연세의료원 윤리강령은 ‘구성원 개개인의 인격을 존중하고’, ‘모든 이해관계자와 상호 협력하는 공동체적인 관계를 구축’한다고 표방하고 있습니다. 세브란스병원 사측에게 청소노동자들은 업무일지로 노조파괴 지시를 내릴 때는 ‘구성원’이고 사용자로 법적책임을 져야할 때는 ‘이해관계자’였던 모양입니다. 어떻든 간에 현재 병원 측이 스스로 만든 윤리강령조차 배반하고 있음을 부인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우리는 세브란스병원이 지금이라도 과오를 인정하고 윤리강령에서 표방한 기독교정신으로 돌아오길 바랍니다. 이를 거부한다면 더 큰 사회적 분노와 압력에 직면하게 될 것입니다. 성경에는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내게 한 것”이라고 쓰여 있습니다. 세브란스병원이 청소노동자들에게 행한 것이 곧 우리에게 한 것입니다. 그동안 환자로 보호자로 시민으로 세브란스병원과 함께 해온 사회공동체의 성원인 우리가 다시 묻습니다.
“세브란스병원은 이제 무엇을 행하겠습니까?”
2017. 4.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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