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비정규노동센터는 간접고용 비정규직 노동자의 노동 실태와 함께 정책 대안을 모색하는 국가인권위원회 프로젝트를 수행해 지난 11월 <간접고용 노동자 인권상황 실태조사> 보고서를 제출했다. 여기에서는 이 보고서의 내용을 간략하게 정리•소개하고 간단한 소회를 나누고자 한다.
▒ 간접고용 비정규직 실태 : 사용자 책임 회피와 고용불안정성 ▒
비정규직 유형 가운데 가장 급격하게 팽창하고 있는 간접고용 비정규직은 사용업체가 노무제공자를 고용하지 않고 제3자가 고용한 노동자를 사용한다는 점에서 사용업체가 사용자로서의 책임과 의무를 회피하기 위한 목적으로 악용되는 경우가 많다. 간접고용 비정규직은 직접고용 비정규직 노동자에 비해 효과적인 법적 규제 장치를 결여하고 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노동관계법에 의해 보호받기 어렵고 오•남용과 불법 사용의 폐해가 심각하다.
간접고용 비정규직은 사용업체가 고용업체와의 근로자 파견 계약 혹은 도급•위탁 계약을 일방적으로 해지하는 경우가 많아 고용불안정성의 정도가 여타 비정규직 유형에 비해 더 심각하다. 그뿐만 아니라 사용업체가 간접고용 비정규직의 노동 조건을 실질적으로 결정하지만 사용자로서의 책임을 기피하고 노동기본권을 인정하지 않음으로써 간접고용 비정규직은 노동조합 조직화 수준이 낮고 노동3권을 실질적으로 보장받는 경우가 거의 없다. 따라서 간접고용 비정규직 노동자의 1/3이 최저임금 수준에 미달하는 임금을 받을 정도로 노동 조건이 열악한 것은 필연적인 귀결이라 할 수 있다.
간접고용 비정규직은 사용업체가 노무제공자를 직접 고용하지 않음으로써 고용업체가 노동의 대가를 편취할 수 있는 가능성이 상존한다. 또한 영리 목적의 노동시장 중개기구들이 노무제공자에게 3개월 임금의 4% 이내로 제한되어 있는 법정 수수료를 초과하는 수수료를 부과하거나 수수료 이외의 형태로 비용을 부담케 하고 있어 중간 착취 현상이 만연해 있다. 특히 입법화의 지연으로 아직 노동자성을 인정받지 못하는 특수고용 노동자의 경우 이러한 문제점이 더욱 심각한데, 대리운전 노동자와 퀵서비스 노동자의 경우 콜당 20% 이상의 수수료를 지불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 간접고용 비정규직 문제의 해법 : 직접고용 정규직 고용 원칙 수립 ▒
비정규직이 전체 피고용자의 절반을 차지하는 노동시장의 현실을 고려하면 정규직 고용을 원칙으로 하되 특정 사유가 발생할 경우에 한해 비정규직 사용을 허용하는 직접고용 정규직 채용 및 비정규직 사용 사유제한 원칙을 수립하는 것이 시급하다. 이렇게 비정규직 전반의 사용을 규제하며 규모를 축소해가는 가운데 직접고용 비정규직에 비해 사용자의 의무•책임 기피 의도가 강하고 노동 조건이 열악한 간접고용 비정규직의 사용을 직접고용 비정규직에 비해 훨씬 더 강력하게 규제함으로써 직접고용 비정규직을 중심으로 노동시장의 유연성을 확보하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를 위한 노동시장 정책의 출발점은 생산 현장의 업무를 상시적 업무와 비상시적 업무로 구분해 상시적 업무는 사용업체가 정규직 노동자를 직접 고용해 사용하고, 비상시적 업무는 사용 사유가 인정되는 경우 예외적으로 비정규직을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따라서 개별 기업은 정규직 노동자에 대해 고용안정성과 소득안정성의 책임을 지고 비정규직을 이용해 노동력 사용의 유연성을 확보할 수 있도록 하되, 정부가 적극적 노동시장 정책을 통해 비상시적 업무의 총 수요량과 비정규직 노동자의 총 공급량을 관리하며 개별 수요와 공급의 조합을 통해 효율적으로 배분함으로써 비정규직 노동자에게 고용안정성과 소득안정성을 보장하도록 해야 한다.
간접고용 비정규직 노동자를 보호하고 사용을 규제하기 위해서는 차별처우 금지와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 원칙을 수립하고, 도급-파견의 구분 기준을 법제화하고 불법파견에 대해 고용의제와 강도 높은 징벌적 제재를 부과하고, 근로기준법과 노조법상의 노동자 개념과 사용자 개념을 확대해 사용업체가 사용자로서의 책임을 분담하고 간접고용 비정규직의 노동기본권을 실질적으로 보장하도록 하는 것이 필요하며, 이와 관련해서는 19대 국회 개원 직후 다양한 법안이 발의된 바 있다.
또한 고용업체가 노무제공자를 정규직으로 고용하고 대기 기간에도 평균 임금의 85~90%를 보장하는 스웨덴 사례는 간접고용 비정규직의 고용안정성과 소득안정성을 실질적으로 보장하는 제도적 장치로서 도입을 적극 검토할 필요가 있다. 한편 고용서비스와 관련해서는, ILO 협약에 따라 직업소개업체의 구직자에 대한 수수료 수취를 금지하고, 공적 고용서비스 기능을 확대해 영리 목적의 노동력 중개기구들을 대체하는 한편 노동력 중개 기능과 교육훈련 기능을 실질적으로 통합 운영하는 등 적극적 노동시장 정책을 강화하는 것이 필요하다.
▒ ‘노동이 아름다운’ 사회로 가는 길 ▒
본 연구에서 검토한 외국 사례들 가운데 많은 생각을 떠오르게 한 것은 스웨덴이었다. 스웨덴 파견업체들은 단체교섭을 기피하는 생산직노총에 대해 꾸준히 단체교섭을 제안했고, 마침내 노무제공자들을 모두 정규직으로 고용하고 비파견 대기 기간에도 평균 임금의 90%를 보장하는 단체협약에 서명했고, 더 나아가서 노동관계법과 단체협약을 위반하는 업체들을 제명하는 등 자기 규제를 실시하고 있다.
스웨덴 파견노동자들의 직무만족도가 81%에 달하는 것은 간접고용 비정규직 노동자에게도 ‘노동이 아름다운’ 사회가 가능함을 보여준다. 반면, 국가인권위의 협조 요청에도 불구하고 인터뷰조차 거절하는 한국의 대형 파견업체들, 불법파견 판정을 받았음에도 정규직 전환을 거부하는 재벌그룹을 보면, 자본이 일방적•억압적 지배를 포기하고 공존•공생의 질서를 수용하며 노동기본권을 존중하는 패러다임 전환을 실천하지 않는 한 1조 달러 GDP(국내총생산) 대국의 명성은 “사람이 사람다움을 포기하게 하는” 오명에 불과한 것이다.
★ 조돈문 님은 가톨릭대 사회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며, 한국비정규노동센터 대표로 일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