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병길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상임활동가
통계청 발표에 따르면 올해 4월 취업자 중 초단시간 노동자(4주 동안을 평균해 1주 소정근로시간이 15시간 미만인 근로자)는 154만명이었다. 10년 전인 2012년 4월(80만8천명)과 비교하면 90%가량 증가했다. 초단시간 노동의 급속한 증가 배경에는 코로나19가 있다. 2020년 4월 초단시간 노동자는 109만3천명이었다. 그런데 1년 뒤인 지난해 4월에 그 수는 151만명으로, 무려 40만명이 넘게 늘었다. 코로나19라는 사회적 재난의 파고가 밑으로 흘러, 가장 취약한 노동자들을 덮친 것이다.
초단시간 노동자는 법의 테두리 밖에 놓여 있다. 퇴직금·주휴수당·연차휴가·4대 보험(산재보험을 제외하고는 의무가입 대상이 아님)이 적용되지 않는다. 기간제 및 단시간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기간제법)상 무기계약 전환 규정 역시 마찬가지다. 법의 사각지대를 노린 각종 편법도 횡행한다. 이른바 점오(0.5)·십분 계약 같은 방식으로 노동법 적용을 회피하는 것이다. 게다가 초단시간 노동자는 대부분 30명 미만인 중소·영세 사업장에서 일한다. 안 그래도 법의 보호를 제대로 받지 못하는데, 노동조건마저 열악해 이중 삼중의 고통에 노출된 셈이다.
이러한 문제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국가인권위원회는 2017년 11월에 ‘초단시간 근로자 인권상황 개선을 위한 권고’를 한 바 있다. 당시 권고안에는 위에 언급한 문제가 대부분 담겨 있었다. 그러나 인권위가 제안한 개선 방안은 여전히 이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초단시간 노동은 청년·노인·여성 같은 취약계층 노동문제다. 2016년 10월에 인권위가 발표한 ‘초단시간 근로자 인권상황 실태조사’에 따르면, 2015년 초단시간 노동자의 70%가량이 여성이었다. 그리고 청년층(15~34세)과 고령층(60세 이상)이 차지하는 비율이 80%를 넘었다. 그간 정치권에서는 청년과 노인·여성을 수없이 호명해 왔다. 지난 대선과 이번 지방선거만 봐도 그렇다. 그러나 정작 취약계층의 삶을 지탱하는 노동은 철저하게 외면하고 있다. 초단시간 노동을 누군가 잠시 스쳐 가는 노동, 경영상의 빈틈을 메우는 도구쯤으로 바라보는 건 아닌지 의심된다.
초단시간 노동자를 통상근로자와 구별해 차별할 합리적인 이유는 없다. 짧게 일한다고 노동법상 보호의 필요성이 줄어드는 것도, 회사에 대한 기여가 사라지는 것도 아니다. 사용자는 초단시간 노동을 통해 비용을 절감하고 인력 운용상 편의를 얻는다. 정부는 단기 일자리를 양산하면서 치적으로 홍보한다. 이렇게 누릴 건 다 누리면서, 책임과 의무를 방기해서는 안 된다. 초단시간 노동자에게 불안정 노동에 대한 대가를 지급해도 모자랄 판에 말이다.
특히 초단시간 노동을 한다는 이유로 건강권마저 침해받는 현실을 시급히 바로잡아야 한다. 노동법상 병가제도가 부재한 상황에서, 대부분 노동자는 쉬거나 치료를 받기 위해 연차·무급휴가를 사용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초단시간 노동자에게는 연차가 주어지지 않는다. 무급으로 쉬기도 어렵다. 안 그래도 저임금에 허덕이며 대체인력이 부족하다. 고용이 불안정해 사용자의 눈치를 보기도 한다. 지치고 아픈 몸을 이끌고 억지로 일터에 나올 수밖에 없는 이유다. 게다가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고, 일하다 다쳐도 사용자가 산재 처리를 회피하는 사례가 빈번하다.
상병수당은 초단시간 노동자의 건강권을 보호할 방안 중 하나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8개 회원국 중 한국과 미국을 제외한 모든 국가에서 운영 중이다. 우리는 이제 막 제도 도입 초읽기에 들어갔다. 보건복지부는 7월부터 6개 시·군·구에서 상병수당 시범사업을 추진한다고 밝혔다. 시범사업과 사회적 논의를 거쳐 2025년에 도입할 계획이라고 한다. 코로나19 상황에서 노동자의 건강권 문제가 대두되자, 뒤늦게 준비를 시작한 것이다. 늦어도 너무 늦었다. 코로나19가 유행한 지 2년이 넘게 지났다. 노동자의 건강권 문제와 상병수당 도입 필요성은 코로나19 유행 전부터 있었다. 우리 사회가 하루라도 더 빨리 노동자들의 아픔을 함께 나누면 좋겠다.
사무금융우분투재단에서 준비 중인 ‘초단시간 노동자 쉼과 회복 지원 사업’을 소개하면서 글을 마무리하고자 한다. 이번 사업의 목표는 초단시간 노동 이슈를 알리고, 사업에 참여하는 노동자에게 건강권 문제를 환기하며, 정책활동을 위한 조사를 하는 것이다. 6월 중에 사업을 홍보하고, 7월1일부터 10월31일까지 신청받을 예정이다(홍보가 시작된 6월의 병원 영수증 첨부 가능). 접수 시 연령·성비·산업업종을 고려해 쿼터를 둔다. 병원 영수증을 첨부하면 사무처의 간이 심사를 거쳐 10만원을 지급한다. 우분투재단의 이번 사업이 쉼과 회복이 필요한 초단시간 노동자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