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정규 노동자의 글쓰기
우리 센터에는 매년 자원활동가들이 찾아온다. 대학 인권센터를 통해 시민·사회단체에서 반 년 동안 활동하는 학생들이다. 지난해 주요 자원활동 프로그램은 일자리 불평등 인식조사와 비정규 노동자 인터뷰였다. 올해는 인터뷰만 하기로 했다. 지난에 비해 인원이 적어 선택과 집중이 필요한 데다가, 조금은 특별한 인터뷰를 준비했기 때문이다.
이번에 인터뷰하고자 하는 이들은 자신의 노동을 글로 풀어낸 비정규 노동자들이다. 우리 센터는 2011년부터 매년 ‘비정규노동 수기 공모전’을 개최하고 있다. 지난해에 11회 차를 맞이했고, 올해 9월 즈음해서 12회 수기공모전 공모를 시작할 참이다. 자원활동 프로그램을 고민하다가, 문득 과거 수기를 쓴 이들의 노동과 삶이 지금은 어떠할지 궁금해졌다. 한번 만나 보기로 했다.
너무 오래된 수기와 근래의 수기는 인터뷰 대상에서 일단 제외했다. 전자는 섭외가 쉽지 않을 거라고 봤고, 후자는 과거와 현재를 비교하는 인터뷰 취지를 살리기 힘들지 않을까 했다. 수기 속에 등장하는 노동은 다종다양했다. 방송작가, 퀵서비스 기사, 방과후 강사, 도서관 사서, 요양보호사, 청소노동자, 케이블 설치·수리 기사, 마트노동자, 자동차 영업사원, 상담원 등 우리 사회를 떠받치며 유지하는 온갖 노동을 망라했다.
인터뷰를 염두에 두다 보니 수기를 적극적으로 읽게 됐다. 인터뷰 질문뿐만 아니라, 비정규 노동자가 수기를 쓴다는 것의 의미도 함께 고민해 봤다.
인터뷰를 준비하며 읽은 수기는 한편으론 지극히 개인적인 이야기였다. 하루하루의 지난한 노동을 그려 냈다. 무심코 지나쳤으나, 언제나 주위에 존재하는 노동이었다. 집에서 편하게 받는 음식과 물건, 청결하게 관리되는 학교·병원·길거리·지하철·공항…, 매일같이 수집·운반돼 처리되는 쓰레기, 어린아이부터 노인까지 누리는 돌봄·보건·교육 서비스 등은 비정규 노동자의 구체적인 노동에 빚지고 있다는 걸 확인했다.
수기 속 노동 곁에는 부조리가 상존했다. 대다수 수기 주인공은 저임금을 받으며, 장시간·고강도 노동을 하고, 각종 차별과 멸시에 시달렸다. 그래서인지 울분·분노·절망·좌절·체념 등 부정적인 감정을 자주 토로했다. 그들의 노동은 그저 아름답지도, 숭고하지도 않았다. 처절했다. 마지막 남은 힘까지 짜내지 않고는 일과를 마무리하기 힘들었다. 그리고 불확실했다. 내일 계속 일을 할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었다. 또한 무미건조하기도 했다. 단순 반복하는 작업이 이어졌고, 역량을 쌓으며 진로를 개발할 길이 묘연했다.
그러나 수기에 개인적인 이야기만 있는 건 아니었다. 수기 주인공들은 노동하며 겪은 부조리에 질문을 던졌다. 왜 삶을 위한 노동이 비참하고 고통스러운지 물었다. 자본의 탐욕과 그것을 바로잡지 못하는 현실을 비판했다. 노동조합에서 활동하며 동료들과 손을 맞잡고 한목소리를 내기도 했다. 노동기본권을 되찾고 인간답게 살기 위해 싸웠다. 누군가의 수기는 승리한 투쟁을 기록했고, 누군가의 수기는 투쟁의 한복판에서 끝났다. 그러나 두 수기 모두 저항과 희망을 읊었다. 이렇듯 개인의 수기는 나와 동료의 이야기로, 우리 사회의 이야기로 나아갔다.
비정규노동 수기를 쓴다는 건 고통스러운 행위다. 글쓰기 자체만 해도 벅찬 데다가, 노동하며 겪어야 했던 각종 부조리와 그로 인한 아픔까지 똑똑히 마주해야 한다. 수기 주인공들은 이를 용기 있게 해냈다. 그건 스스로를 바로 세우고, 부조리에 저항하는 일이었다. 비록 수기에는 마침표가 찍혔으나, 수기 주인공들의 노동과 삶은 끝나지 않았다.
오는 12월까지 자원활동가들과 함께 그들을 만나보고자 한다. 수기의 주인공이듯 노동과 삶의 주인공이기도 한 그들을 말이다.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상임활동가 (ilecdw@naver.com)
출처 : 매일노동뉴스(http://www.labortoda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