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 3년…다시 “초심”을 말하다
이보라/김희진/심윤지 기자 (경향신문 / 2019. 10. 29)
당시 시민사회 주역들의 ‘평가·고민’
2016년 10월 시민들은 ‘박근혜 정권 퇴진’을 외쳤다.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에 분노한 시민들은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 양극화·불평등 해소 등 각종 사회 현안을 들고 광장으로 나왔다.
촛불은 박근혜 정부 퇴진과 정권교체가 한국 사회 여러 문제를 해소할 것이라 기대했다.
3년 뒤인 2019년 10월, ‘박근혜정권퇴진 비상국민행동’(퇴진행동)에 참여한 시민단체들이 다시 모였다. 이들은 3년 전 ‘촛불 민의’가 한국 사회에 제대로 반영되지 못했다고 평가했다.
이들은 28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촛불 3주기’ 기자회견을 열었다.
퇴진행동의 주축 중 하나였던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의 김명환 위원장은 회견에서 이렇게 말했다.
“촛불 정부를 자임한 문재인 정부는 다수 서민들의 소득을 올리고, 불평등을 해소하고, 비정규직을 없애겠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소득주도성장, 최저임금 인상, 비정규직 정책 모두 하나둘 후퇴하거나 중단됐습니다. 3년 전 ‘이게 나라냐’고 토로했던 그 상황으로 되돌아가고 있습니다.”
경향신문은 당시 시민단체 활동가들에게 ‘촛불 이후’ 3년을 물었다. 이들의 평가는 ‘3년 동안 일부 개혁이 진행됐지만, 촛불 민의 실현이 지체되고 일부 영역에선 역주행 조짐까지 나타났다. 지금부터라도 사회개혁, 사회불평등 해소를 위해 노력하고, 촛불 정부의 초심으로 돌아가 촛불 민의 실현을 위해 나서야 한다’로 요약할 수 있다.
“조국 사태에서 실제로 범법 행위가 있었는지 여부를 떠나 엘리트들의 일상적인 특권 문제가 완화될 조짐이 보이지 않습니다.” 이태호 시민사회단체 연대회의 운영위원장의 말이다. 그는 “‘정의로운 사회를 향해 간다’는 신뢰가 무너지고 있다”고도 했다.
이남신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소장은 “촛불 정부라면 노동개혁을 중심에 뒀어야 한다. (노동이) 압도적인 다수 시민의 일상과 직결되는 문제”라고 했다.
당시 퇴진행동 대변인이었던 안진걸 민생경제연구소 소장은 정부가 민생 문제 해결에 손을 놓았다고 봤다. 안 소장은 “국민들이 부담을 느끼는 교육비와 주거비, 의료비, 통신비, 이자비, 교통비 등 6개 분야를 획기적으로 줄이기 위해 정부가 무슨 노력을 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청년단체는 삶이 변한 게 없다고 말한다. 김영민 청년유니온 사무처장은 “청년들이 겪는 구조 문제가 변화로 이어지진 못했다. 3년 전 청년들이 바랐던 건 소수자 등 삶의 다양성을 존중하고, 불평등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었다. 지금 아쉬움이 많다”고 했다.
■ “청년·여성·비정규직…소수자의 ‘민의’ 대변해야”
‘촛불 집회 3년’ 이들은 왜 다시 거리로 나왔나
정의로운 사회·신뢰 무너져
청년들 목소리는 반영 안돼
서초동·광화문 양쪽서 소외
갈라진 시민 사회 자성론도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진퇴, 검찰개혁을 둘러싼 서초동·광화문 집회에서 청년들은 더 소외됐다고 했다. 김 사무처장은 “청년들은 서초동과 광화문 그 어디에서도 대변되지 못하고 있다”며 “청년들이 현 사태에 냉소적인 이유는 사회가 청년들이 겪는 불평등을 해소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조국 사태’에서 목소리를 낸 청년들은 서울권의 일부 대학에 국한됐다. 시위 집행부에 지방 캠퍼스 학생이 참가할 수 있느냐를 두고 논란이 일기도 했다. 김 사무처장은 “이번 광장 집회 의제는 조국에 찬성하느냐 반대하느냐로 좁혀졌다”며 “청년들의 일상과 닿지 않아 공감을 주지 못했다”고 말했다.
여성·성소수자 등 소수자 문제에 대해 정부가 제 역할을 못했다는 지적이 나왔다. 한미경 전국여성연대 상임대표는 “정부가 여성·소수자 문제를 두고 많이 노력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문제가 터지면 그제서야 해결에 나서는 ‘사후약방문’ 식으로 이뤄진 게 많다”고 말했다. 이종걸 친구사이 사무국장은 “문재인 정부가 인권을 국정 기조로 내세웠는데도 차별금지법 의제나 성소수자 인권을 신경 쓰지 않는다. 이명박·박근혜 정부와 다를 게 없다”고 했다. 그는 “제3차 국가인권정책기본계획에서도 성소수자 단어가 빠져버렸을 정도로 성소수자 문제를 드러내는 것을 극도로 꺼린다”며 “당사자들이 계속 목소리를 내고 요구하는데 정부가 화답하고 있지 않다고 느낀다”고 말했다.
농민단체는 지난 3년간 정부의 농업 정책을 비판했다. 박행덕 전국농민회총연맹 의장은 “백남기 농민이 세상을 떠난 지 벌써 3년이다. 하지만 정부는 우리 농민을 마지막으로 지켜줄 수 있다고 하는 세계무역기구(WTO) 개발도상국 지위마저 내놓았다”고 했다. 박 의장은 “각종 자유무역협정(FTA) 폐기 등 정부가 농민들에게 약속했던 것이 하나도 지켜지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문재인 정부가 촛불을 계승한 정부라는 것을 증명하려면 좀 더 민의를 대변하려고 노력해야 한다고 이들은 말한다. 한 상임대표는 “총선을 앞두고 ‘보수세력을 척결해야 한다’는 의제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하다 보면 민생과 민의에 대한 부분은 묻힐 수밖에 없다”며 “정부는 민의를 대변하고, 시민사회 목소리를 정책의 방향으로 만들어가야 한다”고 했다.
이 소장은 시민사회단체도 이 문제에 책임이 있다고 봤다. 그는 “양대노총 정규직 노동조합들이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반대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런 상황에서 대통령 탓만 할 것은 아니다”라고 했다. 그는 “공약 이행을 하려면 상호 신뢰와 교집합이 형성돼야 하는데 그런 면에서 노동계도 책임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촛불 정신을 노동계 등 시민사회 내부에도 물어야 한다. 냉철한 자기 반성을 해야 한다. 이런 작업을 진정성 있게 해야 정부나 국회에 요구하는 목소리가 공허해지지 않는다”고 했다.
안 소장도 “이번 (서초동·광화문) 집회는 시민사회가 주도하지 못한 부분이 있었다. 그만큼 시민 기대에 부응하지 못했다. 시민사회는 무조건 문 대통령을 옹호하거나 또는 비판하는 쪽으로 좌우 편향을 보이기도 했다”고 했다. 그는 “시민사회 또한 얼마나 이 문제에 매진했는지 성찰이 필요하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