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을 해도 성희롱적 발언을 해도 ‘죄송합니다’라고 해야 돼요”
노동권 보장 못 받는, 100% 우울 증상 겪고 있는 콜센터 상담원들
[민중의소리 2012-05-28]
“여자 상담원 목소리 같다고 생각하면 ‘여보세요’만 해도 욕을 하고 죽여 버린다고 하는 사람도 있었어요. 그런데 결국엔 그냥 끊어요. 함께 화낼 수도 없고...노골적인 성희롱 전화는 끊을 수도 있는데, 욕은 못 끊게 하거든요. 그리고 ‘죄송합니다’라고 무조건 사과를 해요. 우리가 잘했든 잘못했든 무조건 사과를 해요.” - 보험회사 콜센터 상담원
“직업이 이렇다보니까 예전엔 친구들과 통화할 때 무뚝뚝하게 하고 그랬는데 콜센터 일 하고나서는 괜히 상냥하게 되고 그런 게 있어요. 상냥한 목소리가 자동적으로 나가게 돼요. 전화만 잡으면 긴장된 목소리...상냥한 목소리...끝날 땐 항상 감사합니다(웃음) 제 자신이 없는 듯한... 제 감정을 보일 수가 없잖아요? 그냥 마냥 좋아야하고, 웃으면서 이야기하죠. 눈물 나도...기분 굉장히 안 좋은데도 전화 오면 딱 바뀌는 거죠. 앵무새처럼 상냥하게...” - 신용카드회사 콜센터 상담원
많을 때는 하루에도 한두 번씩 걸려오는 전화. “고객님, ○○○입니다. 새로운 상품이 나왔는데 한 번 들어보시겠어요?” 괜히 짜증이 밀려오면서 나도 모르게 무뚝뚝하게 전화를 받는다. “저, 바빠요.” 그리고는 끊는다. 누구에게나 일상적으로 일어나는 일이다.
통신기술의 발달과 함께 기업 간 경쟁이 치열해지는 환경 속에서 이제는 고객을 앉아서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찾아나서는 시대가 되었다. 고객밀착형 상담기능을 갖춘 콜센터의 운영은 모든 업종, 모든 기업에게 이미 필수가 된 것이다. 주로 여성으로 구성된 콜센터는 고객에 상품정보를 전달하거나, 고객의 문의사항을 처리하는 업무를 주로 하고 있으며, 기업유지에 필수적인 기능을 담보하고 있다. 20~30만 명 정도로 추산되는 콜센터 노동자들은 상담기능이 요구하는 친절성이라는 감정노동을 수행하는 대표적인 직업이다.
왜 콜센터 상담원은 ‘노동자’로 인정받지 못 하는가?
콜센터 기능이 기업운영에 있어서 필수적인 것이 된 것에 비해 콜센터 상담원들의 노동은 아직 공식적 노동으로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기업운영에서 요구되는 서비스의 필수성에 비해 해당 노동자들의 고용조건은 매우 열악한데, 기업이 직접 콜센터를 운영하는 경우도 있지만, 사내도급, 파견, 아웃소싱 등 간접고용 형태로 운영되는 곳이 대부분이다. 운영구조의 문제 외에도 성과와 연동된 급여체계로 인해 성과관리가 매우 큰 스트레스로 작용하고 있다. 이뿐만 아니라 고객들의 거친 응대, 성희롱적인 발언 등도 주요한 업무부담중의 하나이다.
간접고용으로 인한 저임금, 성과관리에 대한 압박감, 재취업의 용이함 등 콜센터 노동자들은 업무만족도가 매우 낮고, 직장 소속감이 거의 없으며, 이로 인해 근속기간이 매우 짧다. 열악한 노동조건과 짧은 근속기간은 콜센터 일자리를 더욱 악화시키는 악순환 구조를 형성하고 있다.
콜센터 상담원들의 고충 중에서 가장 큰 것은 감정노동에 따른 감정소진의 문제이다. 고객들은 상담원과 직접 대면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즉 반 익명성이라는 방패 뒤에서 온갖 폭언과 욕설을 쏟아내는 경우가 자주 있다. 콜센터 상담원들이 겪는 감정소진의 문제는 이러한 고객들의 행태에서만 비롯되는 것은 아니다. 고객이 상식 이하의 발언을 하더라도 이에 항의하지 못하고, 전화도 먼저 끊을 수 없도록 하는 회사 방침이 또 다른 감정소진의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100% 우울 증상 겪고 있는 콜센터 ‘노동자’…제도적 보호장치 시급
고객으로부터 상담원을 보호할 수 있는 아무런 제도나 장치가 없는 가운데, 고객의 일방적 행위를 상담원이 개인적으로 감수할 수밖에 없도록 방치하고 있는 것이다. 올해 초 사무금융연맹이 주도해서 시행된 콜센터 상담원 실태조사에서 조사 대상자 중 우울증 설문조사에 스스로 응한 노동자들 100%가 우울 증상을 가지고 있었으며, 그 중 치료가 필요한 고도우울증을 보인 응답자는 80%에 달했다. 감정노동으로 인한 상담원들의 정신적 피해가 얼마나 심각한지를 보여주는 지표라고 할 수 있다.
감정노동 이외에도 콜센터 상담원들이 겪는 어려움 중의 하나가 노동자로 인정받지 못하는 점이다. 통상 보험설계사의 노동자성이 법원에 의해 부정되다보니, 이와 무관한 보험텔레마케터의 노동자성뿐만 아니라 보험이 아닌 상품을 취급하는 콜센터 노동자들의 노동자성까지 인정하지 않는 것이 업계의 관행처럼 돼어 버렸다. 직접 운영하거나 규모가 큰 콜센터의 경우는 노동자성을 인정해서 사회보험을 적용하고 있고, 근로기준법상의 법정 수당을 지급하고 있지만, 간접고용화 돼어 있거나 소규모 콜센터의 경우는 당연하다는 듯이 사회보험을 적용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근로기준법도 제대로 지키지 않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감정노동과 노동자성 문제 외에도 전자감시의 문제, 근로기준법 미준수의 문제 등 콜센터 노동자들을 힘들게 하는 여러 문제들이 존재하고 있다. 종사자 수가 상당한 규모이고, 이미 필수적인 서비스임을 고려할 때 콜센터 상담노동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시급히 바뀌어야 한다. 고객들의 성숙한 소비자로서의 태도도 필요하고, 이에 못지 않게 제도적인 보호장치도 시급하다. 대인서비스로 인한 고도의 직무스트레스에도 불구하고 소비자본주의 사회에서 콜센터 산업이 향후 더욱 증가할 거라 전망되는 만큼, 여성노동자의 건강권 측면에서도 콜센터 감정노동 서비스 노동자의 처우개선이 시급하다고 할 수 있다.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정책위원 남우근